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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선생님을 통해 위로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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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훈고 ‘울보선생’ 최관하 선생님의 교육현장 이야기

기독교사대회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아산 호서대학교에서 기독교사대회가 있었다. 약 1,700여명의 교사들이 이 대회에 참여하였고 나는 다섯 번의 특강을 맡게 되었다. 이분들을 만나면 교육계가 황폐화되었다든가 학교 현장이 무너졌다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 같을 때가 있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며 교육에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나아가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 보충수업 관계로 처음부터 이 대회에 다 참여하지는 못했다. 오전에는 고3들 보충수업을 하고 마치자마자 아산으로 내려가 강의를 했다. 저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분명히 있을 텐데, 나에게는 눈물을 주신 듯싶다.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울보선생’이라는 별명을 주셨다. 그뿐 아니라 함께 강의를 듣는 선생님들에게도 동일한 눈물을 허락하셨다.

울 수 있다는 것은 행복

세번째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강의 시작 때부터 흘러내리는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고 강의가 모두 끝날 때는 얼굴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강의를 듣는 선생님들도 그러했다. 성령께서 우리들 가운데 계셨고 한 마음으로 묶어주고 계셨다. 준비된 영상까지 보고 난 후 마지막 말을 하였다.

“선생님들, 우리가 울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울어서 아이들이 살아난다면 왜 우리가 눈물을 마다하겠습니까? 우리는 눈물로, 무릎으로 기도할 줄 압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해도 왜 응답이 없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한 가지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에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거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나를 사용하시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치지 말고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눈물로 무릎으로 목숨 걸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함께 합심기도를 하였고 강의실은 떠나갈 듯 했다. 이렇게 전국을 다니며 간증과 강의를 하고 선생님들과 만날 때 나는 새로운 힘을 얻곤 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였다. 분주한 시간과 일정 가운데서도 새로운 만남과 활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을 잡아드리고 싶어서요

강의를 모두 마치고 의자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때였다. 웬 소녀같은 여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왔다. 강의를 마친 후에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은 꽤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어쩔 줄을 몰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눈물은 걷잡을 수없이 흐르고 있었고 울먹이고 있었다. 그 여선생님은 두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 선생님의 표정만 보고도 은혜가 되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선생님은 여전히 눈물을 쏟으며 대답했다.

“아뇨, 선생님. 손을 그냥 한 번 잡아드리고 싶어서요.”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한동안 더욱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었다. 나 역시 성령님이 주시는 눈물의 감동을 맛보고 있었다.

하나님의 위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선생님들과의 만남 가운데 부어주신 은혜를 힘입어 기쁜 마음으로 상경하던 중 그 여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손을 그냥 한 번 잡아드리고 싶어서요.”하는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신데 3년차가 되었다고 했다. 이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던 중 불현듯 왈칵 눈물이 치솟았다. 이 선생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 보충과 오후 강의 그리고 저녁 때의 사역 등으로 분주한 일정 속에 하나님께서는 그 여선생님의 입술을 통하여서 나를 위로하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너를 위로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는 항상 있는 법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따금 사람들의 위로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위로는 한시적이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새로운 힘과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감사한 것이다. 운전을 하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하나님의 그 세밀한 간섭에 감사함이 터져나왔다. 하나님의 그 위로에 새로운 힘이 났다. 여선생님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무척 감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숨을 다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운전을 하는 내 입술에서는 기도와 함께 찬양이 터져 나왔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 조용히 다가와 손 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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