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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삶의 정도(正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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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제을리」라는 사람이 휘튼대학의 동료들과 시카고의 서쪽에 있는 빈민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였다. 길을 가고 있는 어떤 사람을 발견하고 달려가서 요한복음 3장16절을 펴들고 전도를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멈춰서더니 이렇게 물었다.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아뇨 모릅니다” 그는 다소 화가 난 듯이 큰 목소리로 “당신 「이와 짐머리」라는 유명인사를 몰라? 내가 바로 수리바키산을 정복하고 자랑스럽게 성조기를 그 정상에 꽃은 사람이야 그땐 우리는 여섯명이었지 지금 워싱턴에서는 우리를 위해 수 백만불을 들여 기념물을 세우고 있단 말야! 나는 알아듣지 못할 성경구절이나 당신이 들고 있는 성경책과 그리고 당신이 전하는 예수라는 사람. 나에게는 필요 없단 말이야!”라며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 후 석달 뒤 「빌리제을리」는 신문에서 그렇게 거만하게 전도를 거부했던 「이와 짐머리」의 사망기사를 보았다. 그는 알콜중독과 폐결핵으로 「에리죠나주」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는 기사였다.

인생은 누구나 한번 낳으면 죽는 법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인생이 산다는 말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말과 같겠다. 이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 있어서 죽음은 허무와 끝을 말한다. 특히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며 사는 존재인 인생에게 있어서 죽음은 절망이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역사속에서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사는 길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한결같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누가 인생의 한계상황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영웅호걸이라고 하더라도 죽음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러기에 수리바퀴산을 정복한 훌륭한 등산가라고 하더라도  1년간의 생명도 연장할 수 없었던 것을 깨닫지 못하고 연약한 자신을 의지하고 교만했던 「이와 짐머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인가 헤아려 볼 수 있다. 인생의 지혜는 성서속의 지혜자들의 가르침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생명나무와 같다」는 말을 우리는 귀담아 듣고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 옳은 일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물리치지만 겸손한 사람에게는 은헤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는 것이 지혜 있는 삶의 정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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