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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셀무스와 아퀴나스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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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대표, 강변교회 담임)

중세의 특징들을 열거하면 교황권의 확대, 수도원 제도의 발전, 십자군 운동, 스콜라 신학의 형성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스콜라 신학의 형성에 대해서 살펴본다. 스콜라 신학은 도시에서 떨어진 ‘수도원 학교’(Monastic School)와 도시 중심에서 일어난 ‘교구 학교’(Cathedral School) 그리고 대학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계시적 진리’를 ‘철학적 방법’으로 이해하려는 신학이다. 이런 신학 운동이 학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학교 신학’ 즉 ‘스콜라 신학’(Scholasticism)이라고 부른다.

스콜라 신학은 우주의 본질을 논하는 데서부터, 즉 보편적 실재(the reality of universals)와 개체의 실재(the reality of individuals)와의 관계를 논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관계에 대한 입장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되었다. (1) “참으로 실재하는 것은 보편적 실재이고, 개체는 참으로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실재론자들(Extreme Realists)(안셀무스 등) (2) “보편적 실재와 개체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온건한 실재론자들’(Moderate Realists)(토마스 아퀴나스 등) (3)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체(Individuals) 뿐이며 보편적 실재는 참이 아니다. 보편적 개념은 이름 뿐이다”고 주장하는 ‘유명론자들’(Nominalists)(윌리암 옥캄 등)이 있었다.

“안셀무스(Anselm,1033-1109)의 스콜라 신학”

스콜라 신학은 이태리 출신으로 캔터베리의 주교로 활동하던 안셀무스에서 발달되었는데, 안셀무스의 신학의 특징은 어거스틴과 같이 믿음의 우위(Priority of Faith)를 강조했다. “믿으려고 하지 않는 자는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믿으려고 하지 않는 자는 체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셀무스는 믿음의 우위를 강조하지만 믿음 그 자체로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보았다. 즉 이성의 작용을 통한 이해의 추구를 주장하였다. 그는 신학사적으로 유명한 말인 Credo ut intelligam (I believe that I may understand)이란 말을 했다.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 것이지 믿기 위해서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셀무스가 추구하는 완전한 앎이 있기 전에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있어야 하며 신비적 열정으로 하나님을 보기를 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비지오 데이(visio dei) 즉 ‘하나님 봄’을 주장했다. 한편 그는 믿음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이성의 한계성을 느끼고 이성 자체를 비판하기도 했다(어거스틴과 같은 입장). 안셀무스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믿음에서 모든 것을 시작했고 그리고 믿음의 이해를 추구했다.

안셀무스의 유명한 신학적인 공헌의 저서 중에 하나는 그의 속죄론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나」(Cur Deus Homo)이다. 이 저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1)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이다. (2) 인간에 대한 처벌이 가해지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만족이 채워지지 않고 죄가 사해진다는 것도 합당치 않은 일이다. (3)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 수 없다. 그 대가는 하나님만 치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다. 피조물을 사랑하는 사랑의 동기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완전히 일치하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죄에 빠져 있는 인간을 대신해서 대가를 치르셨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 의 스콜라 신학”

중세 카톨릭 신학의 가장 유능한 대변자요, 13세기에 스콜라 신학을 가장 크게 발전시킨 신학자는 이태리 출신 도미니칸 수도승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그의 신학적 과업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철학과 가톨릭 교회의 신학을 통일 종합한 것이었다. 프란시스칸(Franciscan)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를 회의적으로 보았고 도미니칸(Dominican)은 긍정적으로 보았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존경하며 그를 ‘그 철학자’로 불렀다.

그의 모든 신학의 연구의 목적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을 알고 인간의 기원을 아는 것이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그의 신학을 정립시켰다. 그는 자연계를 분석하는 단순한 ‘논리적 작업’에 의해 우주의 제일 원인(The First Cause of the Universe)인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성의 유추’로부터 하나님의 공의, 자비, 합리성, 도덕성 등을 서술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자연적 이성’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성’과 ‘계시’로서 얻는데 이성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계시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계시는 성서에 있고 성서는 유일한 궁극적인 권위이다. 이성으로서는 계시의 진리를 다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성과 계시가 반대되지 않는다. 철학과 신학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아퀴나스 신학의 특징들을 지적해본다. (1) 신론에 대해서: 신은 우주의 제일 원인이며 완전한 존재자이시다. 만물의 근원이며 끝이며 ‘완전한 선’(Good)이시다. (폴 틸리히와 비슷). (2) 인간론에 대해서: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연적인 힘’을 주시고 그 외에 기독교의 3대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은사’를 첨가해 주셨다. 아담은 이 은사를 죄로서 상실했고 자연적인 능력마저 부패시켰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아직도 극기, 용기, 정의, 지혜 또는 신중 등 4대 자연적인 미덕을 실천할 능력은 있으나 하나님을 볼 수는 없게 되었다. (3) 구원론에 대해서: 인간의 회복은 은혜에서만 가능한데 여기서 인간의 본성이 변화되고 죄가 용서되고 기독교의 삼대 미덕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업적은 인간의 죄에 대한 만족을 베풀었고, 상받을 만한 여유까지 생겼다. 그리고 그의 업적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도록 감동시키기도 한다. (4) 성례에 대해서: 그는 은혜는 성례전을 통해서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례를 받는 자는 새로 탄생되어 원죄와 과거의 죄는 용서받지만 죄의 소질은 없어지지 않고 인간이 죄를 극복할 은혜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성만찬의 화체설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회의에서 완전한 교리로 인정되었는데 토마스는 이것을 더 명확히 설명하였다. 주례자가 기도하면 성만찬의 모양과 맛은 변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질은 변하여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세례를 받은 이후에 지은 죄를 위하여서는 반드시 참회(Penance)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참회의 4가지 요소를 지적하였다. 뉘우침, 자복, 고행을 통한 만족 그리고 사죄 선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5) 교회론에 대해서: 제도적인 교회를 강조하며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제도적 교회에 들어와야 한다고 하였다. 가시적인 교회의 중요성과 교황의 무오설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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