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범죄의 고리는 교회에서부터 끊어야

첨부 1


편견없는 교회가 범죄를 줄인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 때문에 집사람이 고생하며 예쁜 내 아기는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내 행동을 절제했다면 지금 이런 이별은 없었을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죄인입니다.
밤마다 아내의 얼굴이 보여 저에 마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을 없습니까?

교도소의 백야를 낮으로 알고 지내는 한 수용자의 사연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기 위해 자영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아 금융법에 의해 영어(감옥에 갇힌 상태)의 몸이 상태였습니다. 그는 너무나 괴로워하다가 교도소에서 난동을 부리고, 교도관을 폭행하며 자해를 하다가 결국에는 징벌까지 받게 된 형제입니다.

한 교도관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문제수를 만드는 것은 제소자가 40%이라면 교도관 때문에는 60%가 된다는 것입니다.

재소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관찰시키기 위해 자해를 하거나 자살 시도, 또는 난동을 부리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 많다는 합니다.

이럴 때, 교도관들이 사랑을 가지고 진솔하게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문제를 해결 한다면 문제 수는 그 만큼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교도관들이 일단, 재소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접근하기 보다 법의 잣대로 다가가기 때문에 문제가 더 발생하게 됩니다.

이 교도관의 말을 빌리면 교회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교도소에서 와서 '예수 사랑, 예수 사랑'하고 큰 소리로 외치지만, 정작 수용자들이 출소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귀찮아하고, 문전 박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수용자들이 교회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보기 위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은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교회를 찾아가지만, 정작 교회에서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더욱 범죄의 늪으로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일부의 수용자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는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죄를 정죄한 것이 아니라, 용서하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한 수용자의 아내는 남편이 교도소에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 어렵다고 호소도 해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교회가 정죄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교회는 누구나 들어 올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 앞에 나온 사람들의 사회적인 격상을 보고 안식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심장으로 모든 영혼들에게 주의 사랑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편견이 없는 교회가 될 때, 범죄는 줄어 들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 앞에서 내 이웃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특히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나, 영어의 몸이 된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이웃이 누구인지 알아,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주어야 할 것이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삶의 내용을 돌아보도록 교회가 그리스도의 빛을 발해야 할 것입니다.

범죄의 고리는 교회에서부터 끊어야 합니다. 교회가 죄를 외면한다면 사회가 혼탁해 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지적하면서 시작 됩니다. 성도의 은혜는 죄를 회개하면서 시작 됩니다. 그리고 오늘 교도소를 바라보는 우리들 또한, 죄의 잣대로 교도소를 보기 보다는 주님의 사랑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기학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졸업
기독교청소년선교회 자문위원
법무부 교정위원
청송제2교도소 신우회 지도목사
포항극동방송국 교정프로그램 '아름다운 고백' 진행
아름다운고백교회 담임목사

- 촐처 : 크리그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