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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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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즐거움을 누리자

본문: 잠10:28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린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는 전성기 때 무대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부와 명예와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시대의 영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기의 달콤함을 경험한 린드가 곧 무대에 복귀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대를 떠난 이후 완전히 소식이 끊겼습니다.
몇 년 후 한 친구가 린드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무릎 위에 성경을 올려놓고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은 기쁨과 감격이 충만한 표정이었습니다. 친구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전성기 때 무대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 그 격정의 무대가 그립지 않나" 그녀는 아름답게 물든 저녁노을과 성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무대 위의 기쁨은 순간의 환희일 뿐이야. 이 성경과 아름다운 자연은 내게 영원한 기쁨을 선물하고 있어"
행복은 열쇠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은 안식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이란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고, 물질이 많으면 행복도 이에 비례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위와 권세와 물질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정작 있어야 할 행복감이 거기에 없을 때 커다란 실망을 안고 좌절해 버립니다. 또 미래에 행복이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녀들을 대학, 대학원까지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를 보내면 행복이 다가오겠지"라고 생각하다가 막상 그때가 되면 허무와 공허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좀더 많은 재산을 모아 마음에 드는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치장을 하면 행복이 다가오겠지"라고 믿다가 그것이 실상 이루어지면 얼마 되지 않아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결코 그 집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자기가 입은 옷의 호주머니 안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행복은 절대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사람에게만 얻어지는 것이며 예수님 안에서 얻은 행복만이 참 행복이요, 영원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죄악에도 쾌락이 있고, 하찮은 일에도 재미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귀함은 죄악의 낙이나 재미를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고귀함은 고상한 즐거움을 목표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돈버는 것도 재미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성공과 성취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고 싶은 욕망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정작 원하는 것을 소유했을 때는 더 깊은 세계를 추구합니다. 조금 더 고귀하고, 고상한 삶을 추구합니다. 단순한 물질적 부유가 아니라 차원 높은 부유를 추구합니다. 내적인 부유와 존재의 넉넉함을 추구합니다.
코코 샤넬은 “세상에는 돈을 가진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참된 부유함의 정의를 물질의 부유함이 아니라 존재의 넉넉함으로 본 것입니다. 부유함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따라 측정됩니다.
소유했지만 나누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얼마를 가졌든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부유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눔에 있습니다. 세네카의 말처럼 우리가 찬양하는 것은 가난이 아닙니다. 가난해도 천해지지 않고 비굴해지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고상함의 척도는 소유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즐거워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고상한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을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즐기는 사람은 고상한 사람입니다.
둘째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해, 그분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사 11:3)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의 즐거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었습니다.
셋째는 환경을 초월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비록 생활이 어렵고, 환경이 고통스러워도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런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옛날에 어떤 부자가 돈은 많이 있었으나 자식도 없고 별로 웃어볼 만한 일이 없어 하루는 말을 타고 여행을 가는 도중에 앞을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옷은 남루하여 용문산에 안개 두른듯 했는데 즐거운 듯이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그대는 무엇이 그렇게 기뻐서 춤을 추는가?"한즉 이 거지가 대답하기를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 하등동물로 짓지 않고 사람으로 지은 것이요, 둘째 내가 다행히 한 다리만 절므로 동서남북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기 때문이요, 셋째 지금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 없으나 내가 죽으면 하나님 품에 안기 울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좋아서 춤을 춘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우리의 소망은 하늘 보좌에 있는 것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12:12)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범사에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범사에 감사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시64:10)
한태완/ 태릉고등학교 교사(하나 교회목사)
http://allcome.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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