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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무가지 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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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신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는 많은 과목들을 한꺼번에 소화하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구약신학, 신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그리고 선교신학 등등에 따라 세부 과목들을 보노라면 필수과목을 들어야지, 적절한 선택과목을 들어야지, 또는 학과모임에 참여해야지 등등 따라가기에 힘이 부족할 때가 흔하다.

더욱이 학기 초는 적응하는데 긴장을 가지다가도 중간고사 즈음에 이르면 긴장이 풀려 여유를 부린다. 하지만 곧 닥치는 것은 학기말과 함께 밀린 수많은 과제물들이다. 한 과목당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책을 한두 권 읽는 것이고, 에세이를 쓰는 것이고, 발표하는 것이고, 또는 시험을 치러야만 한다. 그러다보면, 이런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6월 하순이나 12월 하순이 되면 긴장을 풀 시간도 없이 곧장 여름학교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는 일들을 처리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1학년 때는 적응하는 시간이지만 졸업반 3학년이 되면 이제 멍에를 벗는구나하면서 해방감을 들 수도 있겠지만 아울러 동시에 드는 생각은 과연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며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무슨 과목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지 서성이거나 신학생들끼리 여러 가지를 논의하고 상의하고 담소를 밤늦도록 나눈다.

어떤 이들은 선교사로 가는 길로, 어떤 이들은 유학으로, 어떤 이들은 목회지로, 아니면 단독 목회로 아니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는지 걱정하며 염려하는 동역자들을 주위에서 흔하게 본다.

교회에서는 요구하는 것이 많고 진작 가진 재능은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들을 조금 변형시켜 나타내지만 끝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려고 하지만 소화된 것이 아니기에, 다시 말하면, 아직 나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고, 더욱이 교수님들이 말하는 것으로만 그대로 목회에 적용하기에는 목회현장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목회를 위해서는 신학교에서 배운 것에 덧붙여 무엇인가를 더 배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모임에 참여하여 더 채우려고 노력한다.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임을 자각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경우에 이른다. 그러면 더 배우려고 시간과 물질을 투자한다. 그것에서 배운 것을 다써버리거나 효과가 없으면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선다. 이런 일들을 목회연장에서 반복하게 된다.

어떤 때는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보니 이런 생각도 들기도 한다. 지금 주님의 일들을 해야만 하는데 공부만 하고 있는 자신이 안타깝기만 하다. 공부하는 것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목회연장을 보거나 사회를 보면서 마음이 매우 아프기도 하다. 그러다가 제대로 신학을 정립하지 못하면 목회연장에서 일에만 치여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면 이것도 하다가 저것도 하다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무엇을 위해 행하고 있는지 모른 채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과연 헤쳐 나가는 방도는 없는 것인가?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목사 후보생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목회적 소명, 가르치는 소명, 기독교 기관에서 활동하는 소명, 선교적 소명, 또는 봉사적 소명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신학생시절이든지,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든지, 아니면 언제든지 간에 반드시 주님께로부터 받은 분명한 소명(calling)이 없으면 시간을 허비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마냥 돌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위해 나를 신학을 하게 하셨는지 늘 확신하지 못하고 사색에 빠지게 된다. 재정적 걱정과 염려, 자녀의 교육적 걱정과 염려, 가정적 책임 완수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즉 자녀로서 효도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어떤 때는 비관할 수도 있다. 이러할 때 분명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을 확신해야만 한다.

이러한 소명을 갖기 위해서는 간절한 기도가 요구된다.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하고 눈물과 콧물과 하나님께 매달려야만 한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늘 인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있는 자신을 철저하게 점검해야만 한다. 그리고 말씀을 상고하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한다. 추천하고 싶은 것은 말씀과 함께 교회사에 나오는 위인전이다. 신앙의 선배들의 소명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들의 고민과 헌신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고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은은히 흘러나오는 찬송으로 인해 하나님의 소명을 확신하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소명을 확신한 후 가져야하는 것은 그 소명을 위한 헌신이다. 그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신학교에서 일반적인 신학들을 배워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했으면 이제 구체적인 공부를 해내려가야만 한다. 신학적 바탕을 두고 적용을 위해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나뭇가지를 치는 것이나 더 크고 맛있는 과일을 위한 노력과 같은 것이다.

미국에 있는 집 뒤뜰에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열매가 맺힌다. 과일을 먹음직스럽게 하려면 다른 나무들을 눈물을 머금고 따버려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보니 작은 열매만 남고 말았다. 사과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신학교 생활이라면 이제 맺히는 과일을 위해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 것은 소명을 구체적으로 이뤄가는 작업이라고 여긴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성취할 수 없다. 그것들 중 하나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다. 그것을 위한 노력은 마치 아까운 가지를 치고, 열매들을 버리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노력을 하나의 온전한 열매를 위해 헌신해야만 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물질이 함께 동반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헌신이 더욱 요구된다. 친구를 만나는 시간, 자신의 여유시간, 가족적 단란한 시간 등등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구체적으로 소명을 이뤄 가는데 힘이 벅찰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킬 수 없다. 그것은 욕심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우리들에게 주신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소명을 이루는데 최선을 다해 달린다. 그리고 마치면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 영광을 돌린다.

신학생의 시기는 나뭇가지를 치듯이 자신의 모습을 말씀, 신학, 인간관계 등등을 통해 형성시켜 나가고 성장시키는 시기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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