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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때가 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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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갈4:4)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역사관이 있다. 영웅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영웅사관이 있고, 경제가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경제사관이 있고, 환경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환경사관이 있고, 정치가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정치사관이 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므로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신인-동역’의 역사관이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 영원과 시간과의 만남을 인정하고 지적하는 것이 기독교 역사관의 특징이다. 구약의 역사가 그렇고 신약의 역사가 그렇고 교회의 역사가 그렇다.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희랍의 세계관에 비추어볼 때 신이 인간이 되고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왔다는 ‘성육’(incarnation)의 사건은 어리석고 모순된 사건으로 보인다. 신적 이적과 표적을 구하는 히브리 세계관에 비추어볼 때에도 그것은 거리끼는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모순되는’ 기독교 역사관의 특징이다. 결국 기독교 역사관의 특징은 1) 성육의 사건을 역사의 중점과 정점으로 보고 (그래서 세계의 역사를 주전 주후로 나누고), 2)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신적인 사건을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적 사건으로 보며, 3) 성육의 사건과 연관되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나 인간들의 활동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때가 차매” (갈4:4,5)

기독교 역사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때’를 강조하는 것이다. 시간의 분량이 차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 기독교 역사관의 특징이다.

시간의 분량이 차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이 기독교 역사관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을 때 기독교 발생을 위한 ‘역사적 준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정치적 준비와 문화적 준비와 종교적 준비가 이루어졌다.

첫째, 정치적 준비로는 로마 제국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27-A.D.14) 황제가 즉위했던 당시의 로마 제국의 판도는 서쪽의 스페인에서 동쪽으로 소아시아와 팔레스틴에 이르는, 그리고 남쪽의 북아프리카 연안 지역에서부터 북쪽으로 라인강 및 도나우강 이남의 가울, 이태리 및 마케도니아 지역을 포함하는 지중해 세계 전역에 뻗치고 있었다.

이 광대한 로마 제국은 25개의 군단(각 군단은 6,000여명의 장교와 보병으로 구성)과 수개의 함대가 지키는 역사상 유래 없는 강대국을 형성하였고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이루어 놓았던 것이다.

로마로부터 시작하는 포장 도로들은 제국의 각지로 뻗치고 있어 안전하고 신속한 교통과 통신이 가능하게 되었다. 팔레스틴에서 발생한 “하나의 새로운 종교”가 시리아와 로마를 비롯하여 소아시아, 애굽, 북아프리카 그리고 스페인과 가울(Gaul) 지방에까지 널리 그리고 신속히 퍼질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을 로마제국이 이루어 놓았던 평화 및 교통 수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둘째, 문화적 준비로는 헬레니즘 문화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기원 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문화정책으로 인하여 희랍문화와 희랍어가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로마 제국은 희랍어를 상용어와 학문적 언어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희랍어를 아는 사람은 로마제국 어느 곳에서든 가서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고 친구를 삼을 수 있었다. 기독교의 복음이 로마제국 각처에 신속히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구약이 기원 전 2세기경 희랍어로 번역되었고(LXX 칠십인경), 신약이 희랍어로 기록되어 당시 누구에게나 쉽게 전달될 수 있었던 사실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종교적 준비로는 유대교와 희랍, 로마 종교가 기독교 복음전파의 가교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유대교는 기독교 복음과 상치되는 적대적인 요소로 등장했지만 기독교 전파에 공헌한 “준비적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각 처에 흩어져 살면서 남자 10명 이상만 모이면 회당을 세우고 유대교의 신앙을 전승해 나갔는데 제국의 주요 도시치고 유대교의 회당이 없는 곳이 거의 없었다.

이들 “흩어진 유대인들”(Diaspora)은 그들의 이방인 이웃에게 종교적 감화를 주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God-fearers)이 되게 했는데 바로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기독교 복음에 접할 때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기독교가 발생하던 때 로마세계에 유행했던 민중의 종교는 희랍, 로마의 신화적 종교와 아울러 점성술 및 마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신비 종교였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신화적 종교와 신비 종교를 마귀적 소치로 보아 배격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이교적 및 신비적 민중 종교를 따르던 사람들 속에 남아 있던 영원과 구원을 갈망하는 종교성이 “복음을 위한 하나의 준비적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한국의 고유한 토속적 미신 종교가 본래 기독교 복음과 상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복음이 급속히 전래되고 널리 전파되는데 공헌한 종교적 “밭”의 역할을 했던 것과도 같았다고 하겠다. 한 마디로 기독교가 발생하던 당시 로마세계는 기독교 확장에 불리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발전과 확장에 유리한 역할을 했던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여건들이 형성되어 왔던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때가 차매”(갈4:4)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구속의 경륜을 이루기 시작하신 것이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갈4:5)

기독교 역사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께서 율법 아래 즉 저주 아래 있는 죄인들을 속량하고 구속하는 구원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것을 학문적인 말로는 구속사 (Salvation History, Heilsgeschichte) 라고 표현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주요한 사역은 인간과 자연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시고 그리고 ‘적용’하시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뿐 아니라 피조물들이 모두 탄식하며 바라는 것은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라고 지적했고(롬8:21-23), 사도 요한은 온 우주가 구속함을 받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본다고 고백했다(계21:1).

이레니우스와 어거스틴은 인간의 역사를 한 마디로 구속의 역사(redemptive history) 라고 정의했는데, 어거스틴은 구원 받을 자들의 숫자가 채워지기까지 인간의 역사는 계속된다고 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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