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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앙은 산수가 아닌 수학적 차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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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은 산수가 아닌 수학식이어야 한다.

산수와 수학의 다른 점은 산수는 문제가 간단한 것이고 수학은 문제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산수는 말 그대로 단순히 숫자나 분량 등을 어떤 공식에 의해 계산해 내는 공부이고 수학은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계산이 되어질 수 있는 원리와 이치까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수는 2× 2=4 라는 것을 외워서 시험을 보거나 계산을 할 때 외워놓은 그 공식대로 정답을 맞추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학은 정답을 맞추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2× 2=4가 되기 위해서는 사과가 두 개씩 두 묶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원리적으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단지 산수적으로만 알고 있게 되면 그 산수를 응용해서 계산을 해야 하는 문제가 나올 때는 제대로 정답을 맞출 수가 없게 되지만 수학적으로 알게 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수학적 원리를 응용해 비슷하거나 다른 유형의 문제들도 얼마든지 맞출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깨달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깨달음을 산수적으로만 알게 되면(산수적으로나마 옳게 깨달은 것을 전제로 합니다) 성경의 그 어떤 구절이나 교리 등에 대해 산수적으로만 안 것에 대해 혹시 목숨을 걸고 사수하며 그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방금 말한 산수적으로 깨달은 그것과 같은 맥락의 문제임에도 수학적인(신앙원리와 신앙이치적인) 개념으로는 알지를 못해서 정 반대로 이해를 하거나 해석을 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중생한 영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할 때 그 말은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물론 이 사실 조차도 모르고 거듭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중생한 영이라도 다시 죽는다거나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의 말이야 여기에서 논외로 하고 말씀을 드리자면 한 번 거듭난 영은 절대로 타락하거나 죽거나 지옥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증언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생명을 걸고 믿으며 외치는 사람이라면 그냥 인간 자기의 생각이나 사고에 의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맞는 것이고, 옳은 것입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성경구절에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아직은 산수적 깨달음에 머물러 있는 상태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 이런 정도의 깨달음으로는 거듭나지 못한다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는 말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로만 알고 있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하니 그 누군가가 중생한 영도 그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하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역시도 자기 생각으로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성경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그릇된 주장을 하는 사람의 말에 산수적으로만 깨달은 자신의 신념이(신앙이 아닌)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 그런 이설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산수적인 그런 깨달음에 의한 신앙이라면 방금 말씀드린 그런 요소의 신앙에 속해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중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깨달아야 하겠습니까? 
물론 중생한 영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성경구절을 근거로 분명히 믿고 알아야 하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 중생한 영의 그 성분과 성질과 성격이 어떤 것이기에 한 번 중생을 하고 나면 절대로 타락을 할 수가 없는 것인지를 원리적 이치적으로 아는 것이 수학적인 깨달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야만 그 어떤 이설에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에 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예를 들어 2× 2=4 라는 것에 대해 수학적으로 이해를 한 사람이라면 그 어떤 사람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2× 2=4가 아닌 다른 답을 얘기해 줘도 절대로 2× 2=4라는 것에 대해 절대로 의문을 품지 않게 되듯이 중생한 영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학적으로, 즉 타락을 할 수가 없는 원리와 이치를 알게 되면 성경구절을 근거로 알고 믿는 것보다도 더 굳건하고 확신에 선 믿음을 갖게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 ‘그렇다면 성경을 성경이 아닌 인간의 이론이나 논리로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냐’ 라고 하지는 마십시오.  성경 전체적인 사상과 목적을 전제로 깔아 놓고 그 정신과 사상 하에서 성경의 각 부분이나 교리 등을 깨달아 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알게 되면 단순히 그 문제 하나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서로 통하는 것이므로 다른 성경구절의 해석이나 교리 등에 대해서도 연결적으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은 물론이며, 그 모든 것들을 서로 모순되거나 상반되지 않게 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를 중생한 영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중생한 영은 절대로 타락하거나 죄에 물들거나 죽거나 지옥에 가지 않는 이유는, 다시 말해 성경에 중생한 영은 절대로 타락하거나 죄에 물들거나 죽거나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은 중생의 영의 성격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영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인성의 구성요소 전체를 다루지 않고 영만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을 할 것이며, 거듭난 영에 대해 말할 때도 구원의 서정을 중심으로 말하지 않고 그 영의 상태를 중심으로 말을 할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전의 영은 가범성적이요 가사성적이지만 완전 멸절성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영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이전의 이 영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지 못한 영이요,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지 못했기 때문에 진리와 영감이 내주해서 결합적 상태로 있지 못한 것입니다.  다만 이 영은 진리와 영감의 접선상태에 있었던 것뿐입니다.  즉 접선상태에 있었던 이 영은 단절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영은 절대 자유성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진리(하나님의 은밀계시)를 버릴 가능성이 상존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영이 진리를 버린다면 그와 동시에 영감을 버리는 것이니 진리와 영감을 버리는 이것이 곧 하나님과의 단절상태(타락)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영(타락 이전의 영)이 타락을 함으로써 하나님과 단절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인간은 무능해진 것이고, 무능해짐으로써 인간 속에는 부패성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떤 생물체가 그 자연생명이 끊어지면 외계에서 부패성이 들어오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내적 자체적으로 부패해지는 것처럼 인간 속에는 부패성이라는 성분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이 진리와 영감에서 단절되는 찰나가 영의 타락이요 죄의 기원이요 인간 타락의 시초인 것입니다. 

이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그 때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자신들을 에덴동산에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과 같아져 보려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자신들을 에덴동산에 살게 하신 궁극적인 그 뜻을 놓친 데서부터 죄가 구성이 돼 나오는 것이니 이것이 죄의 시초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과 접선되어 유기적 피동적으로 활동했는데 영이 진리와 영감을 버림으로 하나님과 능력적 생명적 연결이 단절이 되어 타락 이전의 영은 죽게 되었고, 단절됨으로 말미암아 인간 속에는 부패성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된 영은 죄와 사망에게 완전히 포로가 되어 무활동상태로 인간 개체 속에 존재해 있게 되었으니 이를 영이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영은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못하는 한 악령이나 마귀에게 피동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타락 후의 영은 영행이 중단이 되었는고로(죽었기 때문에) 마귀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영은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하나님과 끊어진(죽은) 영은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과 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타락을 함으로 이런 상태의 영이었는데 이 영이 그리스도의 대형과 대행을 입어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법에서 해방이 되고, 즉 그리스도의 대형으로 허물과 죄로 포장되어 있던 것이 완전히 벗겨지고, 그리스도의 대행으로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성대로 성분적으로 의로워져서 진리와 성령이 그 영 속에 들어와서 결합하여 내주해 계시게 된 것입니다.

과거 타락 이전의 영은 하나님과 언제고 끊어질, 단절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중생된 이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양성 일위의 중보적 결합으로 되어진 것이요,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고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 되어진 것이니 이 영 자체가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끊어지고자 하는 성질이 없고, 또 그 누구도 이 결합성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 결합을 그 누군가가 끊는다고 하면 그 자는 하나님보다도 더 능력이 큰 자가 되니 그 자가 바로 진짜 하나님이라는 이론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된 이 영의 성분은 양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에 비하면 미달이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성분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영의 성분에는 물질적 육신적 세상적인 성분은 티끌만큼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중생된 영이 죄를 짓는다거나 죽는다고 한다면 같은 성분이신 하나님 역시도 죄를 짓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죄를 지을 수 없다거나 죽을 수 없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과 똑같은 성분인 중생된 영 역시도 절대로 죄를 짓거나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된 이 영은 단독적 활동기관이 아니고 성령과 결합된 상태로써 유기적 피동적 활동의 기관이기 때문에 이 영의 영행은 전부가 의이지 죄행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중생된 이 영행에 죄행이 있다고 하면 이 영 속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고 악령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이상 성령이 주격이 되어 영행이 나오는데 이 영행이 어떻게 죄행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이 영행으로 사는 것을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라 하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의행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영행으로 살지 않는 것을 옛사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인데, 옛사람으로 사는 것은 전부가 죄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생된 영은 이제는 성장을 해야 하는데 육의 성장은 가식적이요 가견적인 반면에 영의 성장은 하나님의 지혜지식적 성장, 도덕적 성장, 능력적 성장으로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진리이치의 말씀을 먹고 자란다는 말입니다.

중생을 한 영은 그 영의 성장에 따라 이 땅에서만이 아니고 천국에서까지 활동이 다르고 모든 감성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감성이 다르다는 말은 쾌락성 향락성이 다르다는 말입니다.(차등성)

따라서 우리 인간이 이 물질세상에 있는 동안에 영적 자기를 성장시켜 나가는 양에 따라 자기의 영원한 행복한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재세기간 동안에 영적 자기를 부절히 성장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생된 영은 절대로 타락할 수도,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을 먼저는 성경을 근거로 확신을 하면서 아울러 중생된 영의 성질과 성분을 분석해서 바로 안다면 더욱 더 확고한 신앙에 설 수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울러 이렇게 알게 되면 모든 성경은 다 진리로써 통하게 되는 것이므로 성경의 다른 문제들도 이와 연관해서 옳게 알 수가 있음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진리이치를 연결적으로 터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관한 예를 다시 들겠습니다.
구원문제에 있어서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없어서 그렇지 만일 다 지킨다고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앞에서의 중생한 영의 성분을 제대로 이해를 한다면 그런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성경구절을 근거로 하기 전에 익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중생한 영의 성분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과 똑같은 성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영교가 가능한 것이며, 천국에 갈 수가 있는 것인데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면 그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 되어진다는 말과 다름이 없으니,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이 없이도 천국에 갈 수가 있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구약시대에건 신약시대이건 인간의 구원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가능한 것임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어서 중생한 영과 타락 이전의 영은 그 상태에 있어서 하나는 하나님과 천국과 단일성이요, 하나는 비록 무죄상태이지만 질적 성분적으로 하나님과 천국과는 이질적인 성분인데 이질적인 그 성분이 어떻게 중생된 영과 같을 수가 있으며, 천국에 갈 수가 있겠습니까?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영은 죄가 없는 타락 이전의 영과 같은 성분이라는 말일 텐데 만일 그렇다면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전에 그들이 천국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지 못했는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기 전의 그 영이 중생한 영과 다른 성분이라면 천국에 들락날락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천국에 들락날락 할 수가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면 그 모순은 뭔가 하니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도 천국에 갈 수가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의 또 다른 모순은 순서적으로 보면 인간이 타락을 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을 중생시켜 구원을 해 천국에 데려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계획이 원래는 이것이 아니고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게 하려고 했는데 인간이 그만 타락을 해 할 수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다시 짜서 시행한 하나님이라는 논리가 되니 결국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지도 예측하지 못하는 무지무능의 하나님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중생한 영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믿고 있더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리와 이치(이것을 구원도리라 함)를 분명히 알고서 그렇게 믿는 것이라면 이 글 후반부에서 말한 바 있는 아무리 율법을 다 지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이치는 자동적으로 알게 되지만, 단순히 성경구절을 근거로만 중생한 영의 불법성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면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와, ‘중생한 영의 성분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되어지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교리를 서로 상이하게 이해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중생한 영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같은 원리로 일관성 있게 해석이 되어야 할 문제인 율법과 구원의 관계에 대해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산수적 차원의 신앙이 아닌 수학적 차원의 신앙을 가지려면 성경 전체를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하고 궁극적인 뜻과 목적을 깨달아 그것을 대 전제로 하고 그 정신과 사상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지계시적인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궁극교회 홈페이지: http://909.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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