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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강절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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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은 주후 8세기이래 11월 27일을 지난 후부터 시작하여 성탄절까지의 기간으로 정하여 교회력의 신년으로 지켜 나왔다. 중세기 이후 대강절은 참회를 통한 경건한 삶에 중점을 두었고 영국의 경우는 대강절 기간동안 수요일과 금요일은 금식을 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대강절은 인류 구원을 위해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는 한편 성탄하신 주님과의 거룩한 만남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하다. 그런가 하면 대강절의 현대적 의미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망의 기간이라는데 있다.

기독교는 기다리는 종교이다.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메시아의 강림과 그의 왕국을 기다렸다. 그들의 소망은 오직 메시아의 강림과 그의 왕국에 있었으며 그 소망 때문에 그들은 민족적 시련과 고난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오셨을 때 선민 이스라엘은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했고 배척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까지도 영원한 왕국의 건설을 기대했고 요구했다. 그러니까 그들의 메시아 대망은 빗나간 셈이었다.

우리는 역사의 파란과 격동, 그리고 사회악의 만연과 팽배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접하면서 대강절을 맞게 되었다.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강림만이 소름끼치는 역사와 사회의 한파를 진정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교회의 고백이다.

유대인의 대망은 지상왕국이었으나 우리의 대망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이며, 그가 세우실 영원한 왕국에 있다. 정의와 사랑과 신령한 질서가 다스리는 영원한 왕국에 대한 우리의 대망은 그리 먼 장래의 것은 아닐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성급한 재림론이나 종말론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시한부 종말론이나 재림 임박설은 대망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동기와 목적에서 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사를 조명해 보면 가끔 예수 재림의 시한을 정하고 그 사실을 공포했던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작위는 1992년의 휴거소동과 같이 무위로 막을 내리곤 했다. 우리는 주님의 강림을 대망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를 논하는 것은 성경의 예언을 깨뜨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담하는 대강절의 문턱에 서서 우리자신들의 신앙의 현 주소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땅에 정의와 사랑과 구원을 베풀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과 그리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고 준비하는 교회의 자세는 철저한 자아성찰과 회개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의 정신을 역사 속에 구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의 빛을 온 세상에 밝히 전하고 증거 하는 일에 전력해야 할 것이다.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교회는 불행한 교회이다. 그러나 사회를 외면하는 교회는 그 존재 가치가 없다. 어둡고 침울한 사회를 향하여 밝고 시원한 빛을 비추는 대강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지금 2003년 1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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