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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래글 123번 복과 축복의 차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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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어원적 의미와 현재 쓰이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공시성과 통시성의 차이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나이스(nice)'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무식한(nescius)'이라는 단어로부터 왔습니다. 즉 어원의 의미와 현재 쓰이는 의미를 전혀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말을 예로 들면, 개화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정(人情)'은 '뇌물(賂物)'을 의미했었습니다. 그리고 '방송(放送)'은 '석방(釋放)'을 의미했었습니다.
이처럼 어휘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합니다. 그 의미 영역이 확장되기도 하고 반대로 축소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의미로 변화하기도 합니다.
'다리[脚]'는 처음에는 사람이나 짐승의 다리만을 가리키던 것이었는데 '책상'이나 '지게'의 다리 같은 무생물에까지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영감(令監)'같은 말도 옛날에는 당상관(當上官)에 해당하는 벼슬을 지낸 지체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남자 노인을 두루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놈, 계집'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들은 원래 일반적인 '남자,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던 것인데, 그 의미 영역이 축소되어 지금은 비속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리다'는 중세 국어에서 '어리석다'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적다'라는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싁싁하다'는 원래 '엄하다'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씩씩하다'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어엿브다'는 단어가 있습니다. 중세 국어에서 '어엿브다'는 현대 국어처럼 '아름답다'는 뜻이 아닌 '불쌍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원리를 이해하면 '축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써야 하는 가에 대한 논의에 바른 이해를 갖게 됩니다.

교회에서 축복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할 때, 이 단어를 '하나님께서 복을 빌어주세요' 라는 의미로 쓰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단어를 하나님에 대하여 쓰는 모든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빌어주세요' 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복을 내려 주세요'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즉 복을 빌어달라는 문작 그대로의 축복의 의미가 아니라, 복을 내려달라는 강복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의미가 변형되어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냐는 점은 살피지 않고, 어원적인 의미만을 따지고서 그것의 의미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어학적인 소견이 짧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단어들의 의미는 사람들 사이의 함묵적인 동의를 전제로 하여 사용되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냐는 기준은 그 단어의 어원이 무엇이냐는 점보다는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함묵적인 동의를 담고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시대에 따라 어휘의 의미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원의 의미에 맞게 어휘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는 있습니다만, 언어 사용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되어지지 않는 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대하여 '축복'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논쟁 제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현재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축복'을 '강복'의 의미로 쓰고 있고, 또 듣는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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