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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원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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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시 55:3)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인간은 약속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의 약점은 바로 이 약속을 지키는 존재로는 불완전할 때가 너무 많다는 점이 아닐까?

‘약속’이란 그것이 진실을 의미할 때만 가치가 있는 법이다. 수만 가지 약속이나 아무리 좋고 엄청난 일을 약속한다고 해도 그 모든 약속이 허위요 거짓이라면 한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약속이란 또한 책임이 동반될 때 그 내용이 믿음직하고 또 보장이 되는 것이다.

약속은 또한 신뢰의 의미가 담긴 계약이어야 한다. 진실도 없고 책임감도 없고 신뢰도 없는 약속은 공약(空約)이며 위약이며 배신과 악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하고 사업가들은 법률적 효력이 있는 공증된 계약문서를 만들기도 하고 정치인들은 정치 구호로써 국민에게 공약(公約)을 하지만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는 청춘남녀는 서로 결혼의 약속으로 반지를 끼워준다. 그러나 죽도록 사랑하겠다는 사랑의 기쁨으로 맺은 약속도 한번 토라지면 그만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만다든지 파혼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또 그렇게 되고 나면 비할 바 없이 다정했던 한몸 같은 부부도 남남으로 헤어져 일생을 원수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니체는 “인간은 행동은 약속할 수 있으나 그 감정은 약속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인간 감정의 미묘한 변화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그러므로 인격 수양의 척도는 자기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자제하는데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서는 약속할 줄 아는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인간의 모순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인간이 타락한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타락성은 그 부조화와 불일치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고 표리부동하게 살고 이중 삼중의 위장된 인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타락된 인간의 실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진정한 약속은 진실성과 함께 책임성을 가지며 그 약속에 대한 완전한 신뢰성을 가질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고 약속의 실현이란 열매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풍성한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이며 또한 그 신앙은 약속의 신앙인 것이다. 성서를 신?구약성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성서에는 사랑의 약속과 영원한 생명의 약속과 소망의 약속이 있고 또한 축복의 약속,불변하는 성취의 약속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 생활이 가장 복된 삶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생명 있는 씨앗이며 잉태된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성서의 약속은 어느 한 시점,한 세대에만 지켜지는 짧은 약속이 아니라는 데 그 영원성이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중까지, 아니 세상 모든 것이 없어져도 약속의 말씀은 남는다. 그러므로 영원한 약속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진리인 것이다.

- 최건호(충무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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