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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난주간] 종말과 재림의 신앙갖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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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승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고난주간 화요일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다. 이 날은 유대인들과 여러 주제에 관하여 논쟁하셨다. 바리새인들과는 가이사(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사두개인들과는 부활 문제에 관하여,그리고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과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말씀하셨다(막 12:12∼34).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를 묻는 한 서기관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러고 나서 성전 헌금함에 헌금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셨다. 예수께서는 그들 중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은 헌금을 했다고 칭찬하셨다. 렙돈은 한 데나리온(장정의 하루 품삯)의 64분의 1에 해당된다. 하루 품삯을 5만원으로 계산하면 두 렙돈은 1500원 정도의 금액이다. 헌금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액수가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정성이었다. 다른 사람의 헌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일부였지만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생활비 전부였다.

칭찬을 받은 이유는 또 있었다. 그것은 구제를 위한 헌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성전 안에 헌금함을 마련했던 것은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기록에 따르면 성전 여인들의 구역에 나팔모양을 한 13개의 헌금함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모아진 헌금은 모두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에서 고아나 과부는 경제력이 없는 가난한 계층으로 보호하는 1순위였다. 살아가기도 어려웠던 그 과부는 도움을 받을 우선 대상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과부의 아름다운 이웃 사랑은 고난주간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예수께서 성전을 나설 때 제자 중 하나가 성전 건물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언급하였다. 당시 성전은 주전 20년 헤롯 왕에 의하여 새로 증축된 것이었다. 헤롯 왕은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산 사방으로 20m 높이의 축대를 쌓아 대지를 전보다 배나 더 넓은 4만평 규모로 확장시켰다. 그리고 그 위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였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헤롯성전을 보기 전에는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큰 건물이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헤롯성전은 주후 70년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예언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을 모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 성전이 마주 보이는 곳에서 성전 파괴를 비롯하여 세상 끝날에 있게 될 여러 징조들을 가르쳐주셨다(막 13:3∼37).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교훈이었다. 그 자리에 4세기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하여 첫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그후 십자군 시대에 무너진 옛 교회를 새로 지으면서 그곳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장소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그후 이곳은 ‘주기도문교회’라고 알려졌고 각국 언어로 쓰인 60여개의 주기도문이 교회 벽에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말로 된 주기도문도 들어 있다.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가르침처럼 우리는 종말과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을 준비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기다리기만 하는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여 보람찬 삶을 살아가는 적극적 차원의 기다림이다.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인데도 남을 도우며 살았던 가난한 과부는 그런 기다림의 좋은 귀감이 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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