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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삼위일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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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에 대해 여러 이견이 있는 것은 성경에 문자적으로라도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지를 않기 때문일 것이며, 또한 성경 어느 곳에는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 같은 구절도 있고, 어느 곳에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구절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삼위일체를 나름대로 설명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설명을 보면 완벽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설명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이 삼위일체는 인간의 머리로는 100% 완전하게 깨달을 수가 없는 하나님의 오묘에 속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저 역시 그런 정도의 답밖에 드릴 것은 없겠으나 저는 그 외에도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삼위일체의 지식을 하나의 교리수호 차원이 아닌 실제 신앙생활에 적용하여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온전히 덧입을 수 있는데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삼위일체에 대해 본격적인 설명을 하기 전에 일반적인 예를 들어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늘 말썽만 피우는 자식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너 같은 놈이 내 자식이냐?  이제부터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라’ 했다고 할 때 물론 아버지가 진심으로 이제부터는 부자지간의 연을 끊자고 한 말일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자식이 너무나도 속을 썩이니까 자식에게 자극을 줘서 속 좀 그만 썩이고 사람 노릇을 하라는 의미에서 ‘이제부터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 ‘아, 우리 아버지가 이제부터는 나를 아들로 여기지 않는구나.  그러니 이제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나도 모르는 생각이지요.  즉 분명히 자기 자식임에도 아버지가 자식에게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진실로 자식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고 자식이 깨닫기를 원해서 ‘너는 내 아들이다, 그러니 아들 노릇 좀 하라’고 하는 말이지요.  이 말의 뜻을 좀 더 엄밀히 분석해 보면 ‘나는 네 아버지가 아니다’ 라고 하는 말은 ‘나는 네 아버지다’ 라는 것을 더욱 더 강조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삼위일체를 이해하려고 할 때(삼위일체만이 아니고 다른 모든 성경을 깨닫는데도 같은 이치임) 성경은 절대로 오류가 없는 것임을 전제로 하고 성경 어느 곳에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면 일단은 삼위일체가 분명히 맞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그럼에도 왜 다른 곳에는 삼위일체가 아닌 것 같은 말씀들이 있는지, 왜 그런 말씀들을 기록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아버지이면서 아들에게 ‘나는 네 아버지가 아니다’ 라고 할 때 ‘나는 네 아버지다’ 라는 것을 더욱 더 강조하는 말이듯이 말입니다. 
성경이 절대 오류가 없는 한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말이 한 곳에라도 있다면 삼위일체는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 다른 곳에 삼위일체가 아닌 것 같은 구절이 있다면 이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말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는 전제로 하고 무언가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용어로 말한다면 ‘상위권위 우선개념’이라고 할까요? 
무슨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 뜻은 깨달으려고 하지 않고 성경을 문자적 표면적으로만 보고서 ‘삼위일체가 맞느니, 안 맞느니’ 하고 있다면 자기 자신의 신앙에는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삼위일체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을 한다고 하다 보면 간혹 양태론적인 설명을 하거나 다른 이단적인 설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설명을 하는 사람이 이단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자신들의 교리주장을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 나름대로 옳게 믿고 옳게 깨닫게 하기 위해 유한한 인간의 두뇌와 용어를 가지고 신의 영역을 설명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임에도 그런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이단이라고 정죄를 한다면 이 역시 자신의 신앙에는 아무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정죄를 하는 사람에게 삼위일체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그 사람 역시 완벽한 설명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정도에서 서론적인 말은 줄이고 삼위일체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50회 이상 하나님은 오직 한 분밖에 안 계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세 위의 격체로 이루어진 사실을 가리켜서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엡1:2,3 -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히1:8 -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행5:3,4 - 성령님을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마3:16,17, 28:19, 요14:16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기록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예수님도 되시고 성령님도 되신다고 하심으로 삼위일체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눅22:70, 요5:18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기록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했고, 하나님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등한 특성의 분으로 말씀하심으로 당신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밝히셨습니다.(눅7:14, 15.  요2:24, 25.  요17:5)
또한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바 다른 두 위의 신으로서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마28:20.  요5:21)  성자도 성령도 성부되시는 하나님과 같은 속성, 또는 성질을 소유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란 하나의 개념인가, 하나의 영향력인가, 그렇지 않으면 격체인가?(요16:13, 14절)  성령을 하나님으로서의 여러 특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하나님만이 가지시는 특성을 가진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 행1:8.  고전2:10, 11.  시139:7-10)

이상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독특한 성질, 특성인 전지, 전능, 편재성을 성자와 성령님도 소유하고 계시다고 함으로 삼위일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면 성자와 성령님이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만이 가지실 수 있는 신의 성질, 특성을 가지셨으니 결국 성자도 성령도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말이 돼 이원론, 삼원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삼위의 상호관계에 있어서는 요1:18, 15:26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 세 위의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각기 상이한 역사를 하십니다.  엡1:3-14에는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의 각기 다른 역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딛3:5에는 성령의 역사를 한층 더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성구를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님이 본질과 본체적으로 한 분이시면서 각기 주관하시는 역사를 알 수가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성부는 예정 계획 설계 및 그 뜻을 보여주시고, 성자는 구속을 효과 있게 하시고, 성령은 중생을 시키고 성화를 시킵니다.  즉 성부 되시는 하나님은 나에게 선하신 뜻을 품으시고, 성자 되시는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나의 죄를 속하셨고, 성령이신 하나님은 은혜로써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는 사실, 이것이 삼위일체인 것입니다.

성경엔 삼위일체라는 말은 없으나 예수께서는 유일하신 한 분이시며 당신 자신을 참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습니다.(요10:30)  그리고 제자들에게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심으로 이것을 증명하셨습니다.  또한 고후13:13에서 삼위의 하나님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삼위의 하나님이심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분명히 구약시대에도 삼위의 하나님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엘로힘’ 이라고 할 때 흔히 복수형으로 쓰여졌습니다.(창1:26)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많은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 사이에 섞여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하나님의 유일성이 강조되었음에도 이처럼 복수형의 명사를 사용한 것을 볼 때 삼위의 하나님이심을 계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신6:4)

서기 325년에 교회지도자들의 모임에서 삼위일체의 교리가 만들어졌는데 그 회의에서 결정함으로써 삼위일체의 교리가 창조된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이 그 때서야 이 삼위일체의 진리를 깨닫고 드러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면서도 세 위의 격체, 즉 주권자이신 하나님, 탄생한 아들, 나오는 성령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보다 더 쉽게 해명하려고 애써 왔지만 어느 것 하나라도 삼위의 셋으로 나누인 각 부분이 각각의 참 통일체시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한한 인간의 지식과 용어로 무한한 하나님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 데서 오는 현상입니다.

이상의 설명을 통해서 삼위일체의 진리를 보다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교리적으로 이와 같은 삼위일체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겠으나 문제는 이 삼위일체의 지식을 가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신앙사상과 정신 면에서 삼위일체의 정신과 사상을 가지고 믿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이 그런 삶을 통해서 믿는 사람이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덧입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삼위일체를 분명히 믿고 있고, 이 삼위일체의 교리를 많은 사람에게 이해시켰고,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들을 잠재웠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 삼위일체의 정신과 사상으로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닮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런 식의 신앙생활은 궁극적 결과인 천국에 가서 보면 자신의 영광은 없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사상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의 한 예를 든다면 기독교인 치고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택자의 구원(기본구원, 성화구원 포함)에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실제 신앙생활하는 면에 가서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천국에 보내시기로 예정 계획 설계하신 분으로 알고 있고, 예수님은 육신의 병자를 고치고 세상 복 주고 하는 분으로 알고 있고, 성령님은 방언 예언 등을 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면 이는 말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삼위의 하나님께서 각 위가 각기 다른 소원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니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신앙사상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보지 않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신앙사상들이 오늘날 교계에 팽배해 있음에도 이점은 보지 못하고 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정하는 이단집단이나 개인들에게 삼위일체의 교리를 옹호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그 말에 힘이 없는 것이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면 존재적으로만이 아니라 소원 목적적인 면에서도 일체의 분이시어야 하는 것이며, 그런 삼위의 하나님의 소원 목적이 성도의 구원에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사역들 역시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성도들의 구원을 위한 깨달음으로 그런 역사를 하신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기록을 보고 그런 깨달음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고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었으니 나도 병 고침을 받자고 하거나, 나도 병 고치는 능력을 받자고 한다면 이는 삼위 하나님의 소원 목적과는 다른 것이니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신앙성분적인 면에서는 믿지 않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 역시도 어떤 역사를 하시건 성도의 구원을 위한 역사를 하시는 건데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는 내가 성령님께 자신의 어떤 세상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한다면 이 역시 신앙성분적인 면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나 성령님이 병을 못 고친다거나 어떤 역사를 안 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역사를 하시고 안 하시고는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고 오로지 이룰구원을 위한 깨달음을 받고 그 깨달음을 좇아 살면 된다는 것이지요.  믿는 우리가 이런 삶을 살지 않고 어떤 교리나 신학이나 성경 지식을 알고 주장하고 선포하는 그것에 머문다면 헛 믿음이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요즈음 학교 내에 단군상 설치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운데 이 문제 역시 단군상이 학교 내에 건립되는 것도 문제이겠으나 예수 믿는 내 속에, 그리고 교회 안에 그런 세상적이요, 물질적이요, 육신적이요, 우상적인 신앙정신과 사상들이 자리 잡고 있는게 더 큰 문제인데 나와 한국교회의 그 점을 심각하게 보고 그 우상적인 신앙정신을 타파하는 일은 등한시하고 보이는 우상만을 없애겠다고 목숨을 내대고 뛰어다니고 있으니 그런 분들은 아마도 육의 목숨이 여러 개인 모양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힘 있는 오른손에 붙들려 사는 자가 있고, 왼손에 붙들려 사는 자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종교적인 업적을 아무리 크게 이루었다고 해도 내 속이 주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만들어지지 못했다면 이는 예외없이 하나님의 왼손에 붙들려 산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심판의 대상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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