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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 1기 성령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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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교목실장) 

제2과 제1기 성령운동

*성경 말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1. 기도와 회개가 강조되었습니다

한국교회 제1기 성령운동은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이 일어나던 1900년대 초부터 해방 이전까지의 시기입니다. 한국 초대교회 영적 거목인 길선주 목사는 1907년 대부흥운동의 주역이었으며, 그가 인도하는 부흥회 때에는 회개하던 자가 병이 낫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는 감시하던 순경이 회개하며, 선교사가 죄를 통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의 일생을 통한 성령운동의 특색은 말씀에 기초한 기도와 회개운동을 전개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말씀 읽기를 강조하여 구약 30독, 신약 100독, 계시록 1만독을 하였다고 전해지며, 새벽기도회는 그가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장로로서 주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갱신의 필요성과 교회가 영적으로 변화되어져야 할 것을 통감(痛感)하고, 다른 한 장로와 함께 정해진 새벽 시간에 날마다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부흥운동과 함께 전국교회로 퍼져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전통으로 흘러오게 된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이 시기에는 기도와 회개를 강조하는 목회자와 부흥강사들이 많이 활동하였는데, 그 중에는 임종순 목사도 있습니다. 그의 집회에서는 회개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고, 그의 설교는 큰 감화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집회의 특색은 깊은 기도를 통해 얻은 확신을 근거로 한 회개의 역사와 능력 있는 설교로써, 언제나 은혜를 받기 위해 모여든 성도들로 그의 집회는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습니다.

2. 기사와 이적이 강조되었습니다

기사(奇事)와 이적(異蹟)의 목적은 하나님의 현존(現存)을 불신 세계에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이 당시에 ‘기사와 이적의 종’으로서 유명했던 사람으로서 우선 김익두 목사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평양신학교 출신으로서 1919년부터 성령의 은사 중 신유(神癒)의 은사를 강하게 일으키는 목사가 되었고, 그 당시 기독신보는 김 목사의 이적을 대서특필하여 예수 당시에 있었던 이적이 이천년 후에 나타났다고 보도했을 정도였습니다.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했던 인물 중에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인물은 이성봉 목사입니다. 그는 한때 타락한 생활 가운데 골막염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철저한 회개의 기도를 통해 3년 만에 완쾌되었습니다. 그의 성령운동은 성결교회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인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토대로 하여 기도와 성령을 의지하며 전개되었으며, 신유의 체험 운동과 재림의 복음을 특히 강조하였습니다.

3. 거짓 계시와 종교혼합주의의 극단적 영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아직 우리나라에 신학이 제대로 형성되어지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신학 부재(不在)의 상태에서 그리고 아직껏 성령운동의 여러 급진적인 양상에 대한 분별력도 키우지 못하던 상태에서 몰아닥친 성령운동은 수많은 문제점들을 발생케 했습니다. 그것은 곧 신비주의와 이단이라는 별명을 따라붙게 했으며, 타종교(他宗敎) 특히 우리나라의 샤머니즘(Shamanism)과 불교, 도교, 신선술 등지에서 행해지던 영능력(靈能力) 행사와 거의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행해지는 극단적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내에서도 많은 지도자들이 혼합주의적인 영성운동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영성운동에 대한 지나친 경계 현상으로 나타나고, 이에 대한 여파로서 교리와 교단성 강조 운동이 해방 전후의 교계를 휩싸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이에 대한 가속화(加速化)가 해방 이후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신진(新進) 신학자들에 의해서 진행되었고, 이는 곧 한국 전 교계를 교리 싸움으로 물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시기를 거쳐 오면서 교계 지도자들은 ‘기독교의 성령론을 타종교의 영성으로부터 구별해 내야 할 사명’을 갖게 되었던 것이고, 이 작업은 결국 일제시대 이후 신학자들의 손에 의해서 정리되어졌습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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