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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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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장 31절)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표면적 액면적 문자적으로만 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본래의 뜻과는 전혀 반대되는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대할 때 ‘표면적 액면적인 말씀 이면(裏面)의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의사-意思)과 목적으로 이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말씀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는데 ‘왜 이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그 의사성을 모른 채 표면적 액면적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을 이기주의자요 착취자로 만들게 됩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오늘도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실상은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아닌 욕이 되는 일들을 하고 있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해 인간 자기의 영광을 취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빙자해 자신의 영광을 취한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며 그런다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이 잘못돼서 자기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본 목적과는 무관한 인간 자기의 의만 드러나거나, 오히려 하나님께 욕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성도 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할 때 이 말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라는 말에 대해 해석을 붙여 보라고 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영광을 받고 싶어서 만능의 능력으로 인간들을 억압 내지는 강요를 해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고, 그러면 피조물이요 약자 입장인 인간은 그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어서 순종을 하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영광을 돌려 드리는 그 인간에게 그에 대한 대가로 축복도 주고 천국도 주는 하나님이라는 식의 해석을 하기가 쉽습니다.  실질적으로 많은 교회의 메시지 내용이 노골적으로 이와 같이 하지는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런 내용일 수밖에 없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게 삶의 본 목적이라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짓기 전에는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을까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짓기 전 천국에서 독존(獨尊)하고 계실 때의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그 기간 동안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지를 않았을 터인데 그러면 그 기간 중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이런 정도의 분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처럼 그 어떤 존재가 당신을 위해 주고 숭배해야만 더 기뻐지고 영광스러워지는 분이라면 우리가 성경공부 시간에 배운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모든 영광이나 존영이나 쾌락 등이 자체적 발생적이며, 그 면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철철 넘쳐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고도 남는 분이라고 하는 그 말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만일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처럼 그런 분이라면 어쩌면 하나님은 인간만도 못한 존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광스러워지고 아니고는 인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성경을 표면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인간들로부터 제물을 받으시고 예배 또는 기도 등을 받기 원하셔서 지으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근 4천년간 히브리 민족이 많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된 이 제사는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로 이어져 번제제 속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 거제 등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한 번의 제사에 수십 수백 수천 마리의 제물을 죽여 제사를 드리기도 했었고, 육적인 이스라엘 종교말년(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매 절기 때는(유월절 초막절 수전절 속죄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토록 권장을 하고, 가능한 한 더 많은 제물을 바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많은 선민들이 찬란히, 성대히 예배를 드리고, 제물(헌금)을 바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성(聖) 절기의 하나님 앞에 영광의 표준을 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  ② 의식 순서와 찬양대의 찬양과 질서 정연하게 예배 드리는 것.  ③ 보다 많은 제물이 희생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그 전통이 이어져 예수님 당시 때도 유대인의 절기(유월절)에는 예루살렘 거리가 메워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고, 많은 제물이 희생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신과 사상은 더 올라가 히스기야 왕 때나 여호람 시대에도 있었고, 이런 사상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서 지금도 ① 한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고.  ② 질서 정연한 순서진행에 의한 예배의식.  ③ 보다 더 많은 제물(헌금)이 나오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수 천 마리의 양이나 수양의 기름을 원치 않고 네 상한 심령을 원한다’고 했고, ‘수양의 기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원한다’고 하기도 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 무엇을 바치는 것을 원치 않는 것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로 영광스러워지는 분이라면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하나님께 제사나 제물을 드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인간 외에 다른 그 어떤 동물도 하나님께 제사나 제물을 드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만일 인간을 지으신 것이 제사나 예물이나 기도를 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시고 그것을 받으실 목적이시라면 우리 인간을 죽지 않고 영원히 세상에 살도록 했을 것이며, 그 인간은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면서 하나님께 영원히 예배와 찬송과 기도를 제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기로는 이 세상은(물질계) 언젠가 없어지고, 인간도 없어지고, 천국에 갈 자는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갈 자는 지옥에 가게 되는데 그 후에는 누구를 통해서 제사와 제물과 예배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무엇을 받으시려고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당신이 누리시던 그 신령계를 우리들에게 주어 누리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즉 인간창조의 목적은 제물 기도 예배를 받기 위함이 아니고 그런 방편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과 능력을 입혀서 그 신령계를 보다 더 효력적 효과적으로 누리며 주님과 함께 영원히 동거동락 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렇게 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내가 이런 존재로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사건 환경 존재 마찰 충돌 대립 등을 통해 그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는 것이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는 방법에 대해서는 본 교회 발행의 전도지 9호 ‘성도가 덧입을 하나님의 성품’ 참조요) 
단순히 교회건물을 짓고 전도를 해서 교인숫자가 늘어나고, 헌금이 많이 나오고, 가정이 평안하고, 사업이 잘 되고, 물질적으로 부요해지고, 세상의 어떤 바람들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이것이 감사해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되고 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면 이건 하나님을 착취자로 만드는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가견적 물질적 사건적 세상적인 그런 것들이 이루어져야만 하나님께 영광이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안 되고의 관건은 바로 이런 것들이 성취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이 되니 결국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능력 면에서 그런 세상의 것들보다도 부족한 분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각자가 먼저는 옳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 바른 신앙지식을 기준으로 삼고, 그 다음에 앞에서 말한 그런 것들을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덧입는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고,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것들 자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이니, 아니니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세상의 물질이나 인간만도 못한 존재로 비하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해(?) 드리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시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속기 쉬운 것은 먹고 사는 것들이 잘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 제 삼자가 그 말을 듣는 입장에서 ‘저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면서 저 말을 하는가’ 하고 무언가 잘 분별해 들으려고 하는데 교회적인 어떤 일들이 잘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 무조건 다 옳은 말로 듣기가 쉽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누가 목사가 되고, 큰 예배당을 짓고, 어떤 직분을 받고 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것 역시 그 자체는 천국이 아닌 세상 것입니다.  성도에게 이런 것이 없다고 해서 주님을 닮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의 무용론을 말하는게 아니고 이런 것들은 다만 내가 주님을 잘 닮을 수 있는 방편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그런 것들은 나름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가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덧입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고 주님을 닮을 수 있는 방편인 유형적이고 가견적이고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나가며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외식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식자들에게 화를 선언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당시의 상황이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역시 그 당시의 그 주님은 지금도 그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화 있을진저!’  오늘 나는 주님의 이 말씀에서 예외라고 생각되십니까? 
본문을 헬라어 원문에 보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할 때 ‘위해’ 라는 말은 도달되거나 지점을 나타내며, 목적이나 결과에 대하여 사용하는 말인 기본전치사 ‘εἰЅ’를 썼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또는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품 안으로 들어가는(덧입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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