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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기하면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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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출발이 소유와 누림에 있다면 신앙생활의 완성은 포기와 거절함에 있다.
우리의 갈등과 상처, 목마름과 속상함의 원인도 포기하지 못함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루도 기대와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수많은 것들을 요구하며 기대한다.
그 요구와 기대에 대하여 거절 당할 때 우리는 쉽게 모래성과 같이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를 깊이 믿다 보면 인생은 나의 기대와 요구대로만 되어지지 않음을 배우게 된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듯 우리가 요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요구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살고 싶은데, 성경은 죽으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소유하고 싶은데, 성경은 버리라고 명령한다.
우리는 누리고 싶은데, 성경은 누림조차도 포기하라고 가르친다.

예수는 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죽으라고 믿는 것이다.
죽어야 제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더 많이 소유하고 가지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버리고 포기하려고 믿는 것이다.
포기하고 버린 만큼 내 것으로 하늘에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나의 욕심과 소원을 채우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비우려고 믿는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비워야 신령한 것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식은 세상식과 많이 다르다. 세상은 강한 자가 큰 자이다.
그러나, 성경은 약한 자가 강한 자라고 말한다.
세상은 많이 소유한자를 부자라 부르지만
성경은 많이 비우고 포기한 자를 부자라 말한다.

주님의 영성은, 포기의 영성이셨다. 하늘을 포기하고 이 땅에 오셨고, 예루살렘을 포기하시고 변방으로 가셨고 호텔을 포기하시고 말구유에 나셨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포기에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모세는 애굽의 영광을 포기하고 광야를 택하였다.
바울은 요즈음 말로 '잘 나가던 분'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전부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한 분을 소유했다.
바울의 통장에는 예수그리스도 한 분뿐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주와 복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의 전부였고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소유함의 size가 영성의 size가 아니라, 버림의 흔적이 영성의 size일것이다.

예수 믿고 난 후에 받은 복이 많은가? 아니면 버리고 포기한 흔적이 많은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쉽고 넓은 길인지 모른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은 그리 쉽은 것이 아니다.
내가 포기되지 않으면 십자가를 질 수도, 십자가에 매달릴 수도
더군다나 십자가에서 죽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 하셨다.
우리는 언제나 갈등한다.
예수는 잘 믿고 싶은데, 십자가는 벗어버리고 싶은 갈등이다.
우리에게 응답과 역사가 일어나지 않음과 더딤은
십자가를 벗으려 하기 때문이지 모른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 예수를 믿기는 쉽다.
그러나 나를 포기하고 예수를 믿는 일은 죽을 만큼 힘이 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포기의 영성이었다.

독자를 바치라 하심은, 포기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가를 물으심이었다.
포기의 test에 합격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셨다.

포기하는 곳에서 우리는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기막힌 포기 속에서 우리는 기막힌 '위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시고 날 위해 오신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과 감동은 우리도 주님처럼 포기하며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포기하며 살기로 작정하자.
세상과 이웃들에 대하여 요구하고 기대하던 마음들을 십자가에 못박자.
나의 안락함과 편안함.. 나를 위한 여러 종류의 혜택과 누림 들을
주를 위하여 포기함이 마땅치 않을까?
이제 이번 성탄절을 '포기하는 날'로 정하고
포기함으로 얻은 시간, 물질, 건강, 재능, 지식...들을
주와 이웃들을 위하여 불태웠으면 좋겠다.

누가 나를 힘들게 하는가? 누구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있는가?
누가 마음에 안 드는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가?
나를 섬겨주고, 챙겨주기를 바라는가? 나만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가?
전화 한 통 없다고...격려의 말 없다고... 위로하지 않았다고..
내 힘든 것 알아주지 않았다고 속이 많이 상해 있는가?
남편 대우 안 해 준다고.. 아내 수고 몰라준다고... 제때에 밥 안 챙겨 준다고..
내 선물은 안 사오고 아이들것만 사왔다고... 기력을 잃었는가?

속히 포기하라. 넉넉히 포기하라.
아내에 대하여 기대하는가? 포기하라 남편에 대하여 기대하는가? 포기하라
친구에 대하여 기대하는가? 포기하라 전화 한 통 없다고 섭섭하는가? 포기하라.
자식에 대하여 기대하는가? 포기하라.

지금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기다려주고 주님께만 아뢰라.
그 사람이 밉다고.. 싫다고.. 그 사람 때문에 속상하다고 통곡하여라!
포기하느라 힘이 들고 죽겠는가? 오죽하면 병이 날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이 더 많이 포기함으로 죽으라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지나고, 환갑 되면 달라질 것이다. 좋아진다.

그 사람이 나에게 그럴 수 있어? 목사님이 나에게 그럴 수 있어?
성도들이 나에게 그럴 수 있어? ......

이런 저런 이유들로 속끓여 하는가? 포기하라.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할 수도 있다.

주님으로 소망을 품으라.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이해하겠는가?
부질없는 일이다. 속끓임과 분함에 십일조의 시간을 기도에 투자하라.
기도 없는 속상함의 10년보다, 기도하는 10분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전부를 포기했던 바울 사도를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들고 계셨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가능한 나를 위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훈련을 하라. 포기되는 은혜를 구하라.
포기하는 은혜만이 최악의 삶에서도 최선의 삶을 살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것은 성탄의 주인공 되시는 주님이시다.

성탄의 기쁨을 나누며 주님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던 많은 흔적들을 헤아리며
마음으로 고백 드리고 싶다. "주님...이전 보다 더 사랑합니다."

-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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