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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 신앙의 4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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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4기둥

  
본문: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으로부터 우리 크리스천을 구별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크리스천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상황이 어렵고 현실이 불확실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며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한 목회자가 으슥한 밤 산길을 가다가 그만 실족해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나뭇가지 하나를 움켜쥐어 목숨은 건지게 됐지요. 그는 소리쳤습니다. “위에 누구 없습니까.” 대답이 들려옵니다.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남은 인생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지를 놓아라.” “하나님, 이걸 놓으면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아니다. 나를 믿고 놓아라.” 그러자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에… 혹시 하나님 말고 다른 분 안 계세요?”

우스갯소리이지만 어쩌면 오늘 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과연 평소 고백하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대로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제 먼저 믿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할 때 비로소 오늘도 넉넉히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우리가 전도할 때 ‘예수 믿으세요’ 합니다. 예수님의 무엇을 믿으라는 것일까요?

 
1. 창조신앙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기둥인 창조신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래의 5가지를 바르게 인식하여야 합니다.

첫째 무로부터의 창조입니다.

둘째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랑을 나누실 대상으로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셋째 단계적으로 질서 있게 창조를 진행하셨습니다.

넷째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피조물을 다스리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바로 청지기 직분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창조에 관한 기사는 창세기 1장과 2장 첫 부분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창조역사가 끝나거나 멈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창조신앙을 이해함에 있어 이 점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에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은 사람은 창조의 능력도 아울러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경을 통해 영감을 받고, 성경을 통해 영적 상상력과 창조력을 받은 크리스천들은 창조적인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유한한 인생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영토나 민족감정 따위의 문제로 끝없는 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의 중심에 있는 태양 주위를 365일 6시간 정도에 한 번씩 돌고 있으며 이 움직임에는 수 천년이 지나도록 일 초의 오차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마어마한 별이라고 여기는 태양도 사실은 우주 공간에 널려 있는 수백만 개의 별 가운데 하나이며 태양보다 큰 별들도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태양도 사실은 은하계의 중심을 축으로 은하계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데 그 공전주기가 2억 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사는 지구가 도는 속도는 무려 10만 킬로미터 가까이 됩니다. 그렇게 빨리 달리고 있지만 지구상 어떤 물체도 떨어져 대기권 밖으로 튀어나가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놀라운 우주를 지으시고 지금도 운행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점과 같은 존재인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는 역사를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은 오직 감격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태초(太初)에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시니라(창1:1)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2. 임마누엘 신앙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애굽기 13장 21~22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4백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되어 홍해바다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기까지 4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길 없는 사막에 길을 만들어 가며 행진해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13장에 이르기를 그들이 행진하는 동안 여호와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하셨습니다.

바로 백성들과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 곧 임마누엘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서 7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처녀의 몸에서 출생하실 것을 예언하면서, 그는 백성들과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 곧 임마누엘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장 14절)

마태복음 1장에서 임마누엘이란 말의 의미를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장 23절) 하였습니다.

임마누엘이란 말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일컫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사막을 행진하던 40년 동안 늘 동행하셨듯이 지금 우리들과도 함께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동행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과도 은혜의 구름 기둥으로 성령의 불 기둥으로 함께 하신다. 마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은 예수님의 유언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된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장 20절)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또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심으로 그렇게 하셨고 지금은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일본인 작가 엔도 슈사쿠가 쓴 ‘침묵’이라는 소설에는 ‘세바스찬 로드리고’라는 포르투갈 신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독교인을 찾아내기 위해 사람들에게 예수의 동상을 밟고 지나가게 했습니다. 밟고 지나가면 살고 피해가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두 기독교인이 끌려왔고 그 두 사람은 밟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군인들은 두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아 바닷가에 세워 놓았습니다. 물이 들어오면 두 사람은 익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로드리고 신부는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죽어가는 저들을 왜 그냥 두십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그의 귓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잘 되고, 편하고, 출세하는 것이 신앙을 가진 사람의 본질이 아닙니다. 참된 기독교의 본질은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3:17)

 
3. 십자가 신앙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를 빼버리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겠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뜻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각 사람에게 맞는 적당한 십자가를 정해두고 계십니다. 이미 져야될 십자가는 정해져 있고 누가 대신 져주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라는 것은 말 안 해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사단은 교회에서 고난의 십자가를 끌어내리려 합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평안하고 안일하고 재미있게 놀기 좋은 세상 유흥 놀이시설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게 하는 작전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교회를 바라보며 십자가의 고난을 더 이상 연상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고난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고난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고난이기에 생각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함과 만족함이 그 속에 있습니다. 벗어놓고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의 십자가를 다시 찾아 등에 맵시다. 잃어버린 십자가를 되찾아야 합니다. 천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로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십자가 없이 천국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생명의 삶에 실린 글입니다.

첫째를 놓고 둘째를 놓으면 사역을 내려놓아야지 ..아버지께 묻지도 않고 나 혼자 결정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랫배가 찢어지게 아프더니 아랫배가 불러왔다 소화가 않되어 그렇겠지 했는데 얼굴이 창백해져만 갔다 배가아파 밤에 산부인과 갔더니 빨리 큰병원가라 했다. 응급실가면서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물어보지 않고 내맘대로 결정해버렸네요.. 회개하며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응급실 난관외 임신으로 한쪽 난관이 파열이 되어 피가 많이 찼다고 응급수술을 해야한다했다 새벽3시.. 몇통의 수혈을 받으며 난관절제하며 유산을 시켰다.. 너무나 맘이 아팠다.. 나의 믿음 없는 고백으로 아이가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것이 너무나 맘이 아팠다.. 눈만 감으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 누구도 위로가 않되었다 남편도 부모님도 자녀도 ..계속 울었다.. 담날 꿈에 절벽에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떨어죽는데 누군가가 나대신 죽었다고 나는 빼주는 꿈을 꾸었다 담날 꿈에 또 내가 죽을 차례인데 또 누군가가 죽었다고 했다 도대체 누구지라고 했는데 누구가가 나대신 죽은 사람이 간다고 해서 얼른 달려가 보았다.. 관이 가는데 관위에 밝은 십자가 빛이 비추는 것이었다. 순간 잠에서 깨어 하염없이 울었다.. 나대신하여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군요. 주님... 주님 죄송해요 주님 감사해요 엉엉 울었다.. 나 때문에 주님이 돌아가셨군요 너무나 신기하게 슬픔의 눈물을 감사의 눈물로 바꾸어주셨다. 슬픔은 한점도 없이 싹 거두어 가셨다 벌써 10년이 다되어가도 기억한다.. 사역하며 힘들 때마다 그때 위로해주신 주님을 생각한다. 사역하며 때론 다 포기하고 싶지만 날 위해 생명주신 주님 끝까지 십자가지고 가게하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

 
4. 부활 신앙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15: 12- 21)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바울이 전하는 것이나 우리가 믿는 바는 아무런 내용이나 효력이 없고, 뿌리가 없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더 이상 믿을 가치도 없고, 전도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부활이 이 모든 것의 가치를 담보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는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 25-26)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보았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보죠?" 테니슨이 묻자 부인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한 가지 소식밖에 모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도 말했다.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우리는 창조신앙, 임마누엘 신앙, 십자가 신앙, 부활 신앙으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3:17)


나무는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혀야 흔들리지 않고 뽑히지 않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길가에 있는 포플러가 제일 잘 뽑힙니다. 왜냐하면 뿌리를 내리는 기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천히 뻗어 내려가야 하는데 나무가 빨리 자라다 보니까 뿌리가 약합니다. 그래서 태풍이 오면 포플러가 제일 많이 넘어지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도 몇 년 안 된 사람들은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10년, 20년 믿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민족은 아직까지 신앙의 뿌리가 얕습니다. 아무리 교회 일을 많이 해도 아직까지는 뿌리가 얕기 때문에 마귀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흔듭니다.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으면 뽑히기 쉽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도록 항상 깨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 없는 말씀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 보내주소서. 성령이여 우리를 도우사, 변론과 언쟁,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 돈만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게 하시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게 하시며, 영생을 확고하게 취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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