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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홍렬 <7> 미웠다가 예뻤다가… 말보다 문자가 편한 삼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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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웠다가 예뻤다가. 아들만 둘 키우는 부모라면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은 ‘내 아이’가 아니라거나 아이가 스무 살이 지나면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내버려둬야 한다는 등 자식을 끼고 사는 부모들에 대한 훈계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먼저 미웠다가. 큰아이가 PC방에 가서 게임하느라 정신없던 시절이 있다. 한번은 찾으러 갔다가 게임에 빠진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싫은 티를 내지 않고 음료수를 하나 사주고 게임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멋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아들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하루는 밤늦게 집에 오니 식탁에 카네이션 한 송이가 있었다. 어버이날 밤이었다. 새벽이 되자 카네이션은 두 송이가 됐다. 두 아들이 하나씩 사온 모양이었다. 지금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식탁에 올려놓은 꽃 두 송이로 어버이날을 때운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며칠 뒤 나는 결국 싫은 소리를 했다. “이 녀석들아.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주기 멋쩍으면 손에라도 슬쩍 쥐어주든가. 아니면 꽃 사왔다고 말이라도 하든지.” 무뚝뚝한 아들들 말고 다정한 딸 하나 낳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이 들던 날이었다.

2013년 추석 때는 제대로 난리가 났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큰아이가 집에 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봐도 인사를 안 하기에 며칠째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사달이 난 날도 마찬가지였다. “잘 잤어?”라고 묻자 아들은 고개도 들지 않고 “응”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속이 좁은 것이라 생각하고 함께 밥상에 둘러앉았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짧게 식사 기도를 했다. “사랑의 하나님. 연휴에 우리 가족이 식사를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큰아들은 말없이 밥만 먹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 화나고 기분 나쁜 일 있는 건 아니지?”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아침에는 인사 좀 하고, 얼굴은 보고 이야기해야지. 혹시 졸업 앞두고 취업 때문에 고민돼서 그러니? 사람이 말이야 열심히 하다 보면….” 이때 아들의 한마디가 허공을 갈랐다. “알았어!” 나와 아내는 당황했다. 화를 내진 않았지만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다시 예뻤다가. 그 뒤로도 우리는 계속 대화가 필요한 부자 사이로 지냈다. 이후 아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속마음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문자를 통해서였다. 부모들은 자식의 단 한마디에 큰 감동을 받는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한 프로그램 출연 중 MC가 “나는 너에게 어떤 아빠니”라는 문자를 자녀에게 보내라고 했다. 아들은 평소에 말은 잘 안 하면서도 문자로는 그래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편이었다. 나는 문자를 곧바로 보냈다.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은 답장을 해왔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나는 답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문자 내용은 이랬다. “내가 제일 닮고 싶은 아빠.”

이때의 감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아들이 이렇게 효도를 할 줄이야. 많은 출연자들이 부러워했다. 뒤이어 도착한 문자는 더 좋았다. “아빠, 이런 걸 꼭 말로 해야 하나? 느낌으로 통하는 거 아님?”

정리=구자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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