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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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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7.

 

21-23: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가랴가 가브리엘천사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다면 빨리 제 때에 나오고 남 걱정 안 끼치고 그렇게 할 텐데 늦게 나오면서 말문이 막혀 뜻을 전달하지 못하고 손짓 발짓 몸짓 고갯짓으로 의사전달을 하며 자기가 지체된 것을 전달을 하니 이것이 의사성이 명확하게 전달이 되느냐 그 말이요. 안 된다 그 말이요. ‘주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섬긴다하면서 성전 안에서 큰 자가 되어지는 이 말을 못 알아들었으니.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의사소통을 못하는 답답한 사람이 되지 말자 그 말이요. 예수를 수 년 수십 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 큰 자가 되는 이 의사소통이 되어 들어가야 할 텐데 그것이 없이 먹고 마시고 부자 살고 배 두들기면서 살고그게 큰 자냐 그 말이요?

 

돼지세계에서 큰 자가 어떤 자지요? 인간의 세계에서 큰 자가 어떤 자입니까? 지혜롭고 총명하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고. 정치인들도 큰 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정직하게 살고 욕심 안 내고. 이 지도자가 교회목사나 나라 지도자나 욕심낸다고 하는 이건 모든 사람의 적이요. 그건 애국자가 될 수가 없어. 생각을 해 봐요. 믿는 사람이 목사가 자기 노후대책 세우느라고 긁어 모아놓으면 그게 어떻게 천국백성을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겠느냐? 우리가 진리이치를 가지고 보면 너무나도 잘 보인다. 교회고 세상이고 너무나도 잘 보인다. 가정으로 들어가서도 너무나도 잘 보인다. 이 남자가 우리 집에서 가장인지 다 보인다.

 

성경 깨달으면 낮아지고 그렇습니까? 미련퉁이 되고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해 주겠다는 그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성경 깨닫는 데서 되어지는 거요. 못 깨달으면 그건 꼬리요. 자꾸 따라가는 거요. 자꾸 따라가. 리더십이 아니라 자꾸 따라가요. 엄밀히 따져서 우리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생명과 먹고 세상을 다스릴 자들이요. 세상 꽁무니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뭔가가 고통스럽다. 그런 자로 살지 마라. 자기 일하는 처소에서 마음이 맞는 일이면 자기 일처럼 해라. 그러면 리더가 된다. 남의 일처럼 하면 그 일을 하는 주인은 따로 있잖아요? 비록 월급 받고 있어도 그 일을 내 일처럼 하면 재미가 있고 옳은 정신이다. 아닌 말로 사장이라면 그런 사람 발견하면 낮은 자리에 앉히겠어요?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을 낮은 자리 앉히더냐? 성경을 못 깨달으면 세상이치도 보아라.

 

23절에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칠 일 동안이나 직무를 대행하면서 엘리야의 역할의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벙어리로 칠 일간이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만약의 경우 평생 벙어리로 살다가 죽는다면 이거 원통해서 어찌 살겠느냐? ‘하나님을 섬기다가 하나님 앞에서 벙어리가 되었다네.’ 이거 어떻게 살겠느냐?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은 벙어리가 없어야 돼.

 

벙어리도 밥 먹습니까? 밥만 먹는 입이 입이겠습니까? 의사전달 의사소통. 하나님의 집에서 의사소통. 가정으로 돌아가서 의사소통. 가정에 돌아가서 아내와 남편 자식 간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가정이 있습니까? 왜 안 돼요? 그 편안합니까? 편안하면 그렇게 살아보세요. 좋은 의사소통은 있어야 돼요. 사람은 의사소통이 돼야 전달도 되고 상대의 형편도 알고 짐도 같이 짊어질 수 있고. 의사소통이 안 되면 의사소통을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속에 꽁하는 게 들어있어. 맞잖아요?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람이 물론 참을 때도 있고 의사소통을 할 때도 있고 이래야지 너무 꽁해도 안 되고 너무 또 그냥 담아있는 것도 없이 너무 발랄하게 해도 그것도 안 되고. 잠언서에 있듯이 던질 때도 있고 주울 때도 있고. 환경 사건 사람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이게 적절성이 있는 거다. 이걸 잘한다는 것은 참 사람이 화통하다. 말 잘 하지 않는 사람은 지나간 나쁜 것을 항상 속에 갖고 있어요. 이거는 자기 병이다. 나쁜 생각 좋지 않은 생각 갖고 있으면 자기 속에 병 된다. 그건 병이 되는 거요. 어떤 방식으로든지 내버려야지.

 

24-25: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그 후로 엘리사벳이 수태하여 다섯 달 동안을 숨어 지냈습니다. 왜 숨어 지냈을까요?

 

문제 1. 헤롯 왕의 무리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하는 말, 그들이 하는 말. ‘나이 늙어 죽도록 하나님을 섬겨도 저주받아 제사 드리다가 벙어리가 되었다네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숨었다? 맞아요 틀려요? 두 번째 문제. 다섯 달 동안 숨은 것은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서 숨은 것도 아니요 늙은이가 주책없이 아이 배었다고 부끄러워서 숨은 것도 아니요 약속된 생명을 하나님 앞에 옳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 숨겼다? 또 문제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좋은 생각 있으면 문제 하나 더 내봐요. 전자요 후자요? 이것저것도 아닙니까?

 

구원의 생명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수 믿으면서 엘리야의 영감의 감화성이 들어갑니다. 그 정신이 들어간단 말이요. 사람의 말을 들을 때에 교훈을 배울 때에 정신이 들어가요. 들어가서 자기 속에서 판단이 돼요. 일단 들으면. 그냥 잠자는 사람 듣듯이 그건 아니잖아요? 남의 말 또는 교훈을 들으면 판단이 들어가게 돼 있어요. 옳은 것을 자꾸 들으면 옳은 사람이 돼요. 텔레비전에서 욕지거리 같은 거 자꾸 들으면 그것이 은연중에 마음에 녹음이 됐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건 환경을 만나면 그 소리가 튀어나와요. 조심해야 돼요.

 

성령의 영감의 감화성이 들어가는데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로. 사람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질적 근본적으로 바꾸어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옳은 사람을 만들려면 옳은 지식이 들어가면 옳은 사람이 돼 나오고 옳은 지식이 들어가게 되면 옳은 생각을 하게 돼요. 나쁜 소리 들으면 나쁜 생각이 되고 나쁜 짓을 하게 되고.

 

그 뉴스 나오는데 보니까 죽으려면 제 혼자 죽지 왜 다른 사람까지 죽을 사람을 왜 찾지요? 그게 무슨 영웅인줄 아는 모양이요? 얻어먹는 거지보다 그건 용기가 없는 거요. 먼저 본인 자신부터 그 일을 할 수 있는 성령에 충만한 역사가 있게 되고 또 마음에 들어있는 가슴에 들어있는 그 역사가 몸 밖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영감을 받은 자는 그렇단 말이요. 당신의 백성 천국의 백성 이 성도를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주님을 향해서 그렇게 마음속에서 불이 탄단 말이요. 그게 천국의 애국자요.

 

예수 안 믿어도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사람 사랑하고 백성을 걱정한다면 그건 애국자요. 그런 자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돼. 근데 지금은 돈만 있으면 나오지요. 맞잖아요? 돈만 있으면 나와. 애국자인 것처럼 나온다. 돈 가지고 사람 다스리려면 그건 힘들어. 옳은 지식 가지고 사람을 다스리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건 돈이 안 들어가. 정치의 원리를 알아야 돼. 정치하는 사람들 뭐 학 박사들 아닙니까? 말 잘하지요? 뭐 정치에서 나오면 변호사 뭐뭐 그런 거 잘 차리잖아요? 말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 세상은 그래요. 세상에서 옳은 것 기대하지 마라. 선악과 따먹은 지식이기 때문에 세상에는 옳은 것이 없어요.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자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포도주는 색깔을 보면 알지요? 그렇죠? 색깔을 보면 먹음직해서 먹으면 취하고. 독주. 소주가 센 거요 고량주가 센 거요? 어느 게 센 거요? 중국소주가 고량주인가? , 이 소주는 맑고 깨끗해 보여도 먹으면 코를 쏘고 먹으면 사람을 바로 걷지 못하게 하고 서지 못하게 하고 팔다리 힘이 빠지게 하고 눈동자를 흐트러지게 하고 혼미케 하고 혼돈케 하고 구별 분별 못하게 하고 갈팡질팡 하게 하고 헛소리 하고 가다가 개잡고 싸우고 아무데나 처박는다. 사람 꼴이 안 된다.

 

, 어제 밤에 학교 앞에서 택시 잡고 운전사가 내리시오 내리시오.’ 택시 안에 불이 켜져 있고 그 안에 손님은 안 내리려고 가만있더라고. 이거 분명히 술 먹었구나. ‘내리시오 내리시오하더니 손을 잡고 끄니까 내리더라고. 우산도 주고. 뒤돌아서서 가만 보니까 모르는 사람이고, 어디서 사는 사람인지 잘 몰라요. 한 아파트 산다 그래도요 이게 잘 몰라요. 가만 보니까 내려가지고 안경 낀 채 멍청하게 서 있더라고. 저 사람이 자기 집 근방도 아닌데 내린 건지 의심이 가더라고요. 그 뭐요? 택시운전사도 술 먹은 사람이 이런 저런 소리하면 어디다가 내려 줄 거냐고요. 그 사람 집이 어딘지? 나 같아도 그러겠어. 아닌 말로 좀 고약한 마음을 가졌으면 아무 데다 내려놓고 당신 집에 왔소그러고 맛을 좀 보여줘야 돼. 그런 사람 돈 냅니까? 돈 없으면 그렇고. 그래, 이제 또 딴 데 갔다 와서 벌써 한 30분 이상 지났어. 그 사람이 술이 약간 깬 모양이야. 우리 집 근방에 걸어가더라고. ‘이상하다. 이게 집을 못 찾아서 지금 헤매나?’ 느낌이 못 본 사람이야.

 

못 산다고 스트레스 걸린다고 자꾸 술 먹고 기분 좋다고 술 먹고 심심하다고 술 먹고 언제 술 끊을 날 있어요? 이거 쓰겠냐? 이거. 성경을 가지고 그런 사람들 보면 미친 거요. 미친 거. 정상이 아니라. 정상이 아니라. 그래가지고 집에 가면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거기에서 또 잔소리 진소리 안 나오겠어요? 집에 들어가면? 참말로 큰 문제다. 이거. , 잘 사나 못 사나 취직해서 일은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제일 시급한 것이 사람 바로 되는 것.

 

말하자면 헛살게 하고 헛가게 하고 사람 못 알아보게 하고 죽게 만드는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눈으로 보이는 그 기준으로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누가요? 엘리야의 심정을 가진 자는 성령의 감화 감동을 입은 자는 그렇게 안 산다 그 말이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만 먹는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는 것만 먹는다는 것은 진리이치 생명이치 도덕이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그 이치를 먹는다는 말이요. 그 교훈을 먹는다는 말이요.

 

그런 사람은 누구냐? 나실인이다. 나실인이라고 하는 것은 뭐지요? 하나님께 바치운 사람이다. ‘내가 하나님께 드립니다지금 그게 아니고 그 정신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만한 사람으로 산다 그 말이요. 세상이 받을만한 사람으로 산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받을만한 사람으로 살아. 하나님의 인정이 들어가 있단 말이요. 얼마나 그 사람이 고상할까? 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만물을 다 잡아 돌린다. 그 사람 중심을 위해서. 이것이 믿어지면 속사람이 커질 때까지 자기 속에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역사하실 그 생명을 키워라. 진리이치의 옳은 정신 사상을 키워라.

 

엘리사벳 성도, 이 엘리사벳은 할머니지요? 이 할머니가 이 구원역사를 할 생명을 잉태시켰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참 부럽다. 지금 같으면 묻지 마 관광이나 가려고 그럴 테지요. 안 그럴까요? 믿음의 할머니는 안 그렇다.

 

얼마나 참 교훈적으로 이 교훈이 굉장히 귀한 건데 교훈적으로 잘못 들어가면 한 집안 식구라도 마음이 따로고 각각이고 흩어져버려. 하나라고 하는 것은 없어. 거기다가 세상바람까지 마음들이 타놓으면 부모 속을 팍팍 썩인다. 둘이서 좋다고 자기야, 나의 태양이야그러더니 애기 낳고 둘이서 헤어지고 왜 부모한테 갖다 맡기지? 그 아이가 자라서 어떤 마음이 될까? 얼마나 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이 자랄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나? 사람을 잘못 보는구나. 어떤 식으로 봤냐? 허우대만 봤거든. 돈 있고 직장 좋고 외모 모양만 봤거든. 속사람은 안 보이고. 보일 리가 없지. 볼 눈도 없고.

 

속사람이 강해야 모든 사건 환경을 다 이겨낸단 말이요. 세상은 바람 부는 곳. 세상은 파도치는 곳. 뭐로 이기겠어요? 물질로 이겨요? 육신의 사랑가지고 이길 수 있나요? 못 이겨. 지혜도 없어. 이길만한 능력도 안 돼. 이미 바람 타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롯과 아내와 두 딸이 불타질 것만 장만하더니 불타고 벼락 맞은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소돔 고모라 영화도 나오지요? 어떤 영화 봤어요? 안 봤어요? 소돔 고모라? 그 저기 뭐야. 크리스마스 때 각 집에 텔레비전 있으니까 보여주지요. 기독교영화 잘 나오잖아요. 그런 거 보면서 그냥 재밌다 라고만 보는 거요? 이 롯과 아내와 두 딸 소금기둥 되고 수치와 부끄러움. 그만하면 광고비 안 들고 이름 난 것이 아닌가? 아마 이 롯과 아내와 두 딸이 오늘날 텔레비전에까지 나올 이걸 생각했더라면 소돔 고모라성 안으로 안 들어갔겠지요? 그런 느낌 안 들어요?

 

세상 속화된 교인과 이방세상은 안 믿는 세상은 각자들의 자기 전 생애를 다 투자하여 불타질 것으로 부끄러움과 수치로 남기고자 함입니다. 결과가 그렇단 말이요. 참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된 것으로 진리 생명적 잉태로 자라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옳은 진리이치 생명이치 잉태가 되어서 자라나야 된다. ‘예수 잘 믿어 부자 되자.’ 세상으로 잉태되고 세상으로. 그건 신앙이 아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건.

 

무엇으로 보여주고 싶은가? 예수 믿는 자기가 무엇으로 보여주고 싶은가? 참 성도 참 하나님의 신앙 있는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는 참 사람이 되는 참 인격의 귀중성을 안다. 사람의 귀중성을 안다. 지금 자기는 무엇으로 부끄러움을 삼는가? 돈 없는 것이 부끄러운가? 차가 없는 것이 부끄러운가? 집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가? 옷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가? 신앙생명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가? 목사가 안 된 것이 부끄러운가? 뭐가 부끄러우냐? 자기의 진정 부끄러움성은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것은 현명하지를 못해서 죄를 지으면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됩니까?

오래 됐습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려면 좀 걸어가서 이렇게 뭐요? 계단으로 올라가서 건너가야 돼요. 근데 한참 가야 돼. 근데 요쪽에서 저쪽은 가까워. 눈치껏 쓱 보고 건너가는데 호루라기를 휙 불어. ‘아이고, 걸렸다.’ 그 때 만약의 경우 나를 아는 사람이 봤다면그게 얼른 생각이 들어요. 그런 수치감이 어디 있겠냐? ‘주민등록증 내놔라그러고 적어가지고 벌금 나왔어요. 허허. 정말 스스로 수치스러워. 정말 수치스러워. 인격. 그러니까 목사님들, 아무데나 가서 나 목사요그러지 말아요. 목사 아닌 척하고 있어.

 

우리가 보면 늙은 사람이 자식도 없이 벙어리가 되어 있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노동도 안 되고 생산도 없고 죽음만 내다보는 희망 없는 사람이요. 사가랴와 엘리사벳. 하지만 주님의 사자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나타난 것은 부끄러움을 자랑으로 천한 것을 존귀 영광이 되게 만들어 주시려고 나타났단 말이요. 늙은 부부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희망이 있다 그 말이요.

 

부모부터가 하나님과 진리생명의 말씀을 부정하고 세상과 세상의 것을 먹고 마시고 목적을 삼는다면 부모나 자식들이 만물 앞에서나 인간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수치나 부끄러움이 없이 살 수 있다고 장담을 할 수 있겠느냐? 안 된다. 이미 수치가 들어간다. 그걸 알아라. 돈 걱정 사회 걱정 세상 걱정 하기 전에 참 사람이 되는 걱정부터 먼저 해야 모든 것이 바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사람이 바로 선 후에라야 모든 것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그 큰 공장 기계 같은 거 가만 봐 봐요. 그 기계가 설계대로 딱 제자리에 돼 있어야 조립이 딱 돼 있어야 전기 넣으면 돌아가지요. 근데 이게 잘못 돼서 한 쪽으로 비딱하게 한다든지 그러면 돌아가겠어요?

 

26-27: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갈릴리 나사렛 동네, 그 조그마하고 가난한 동리에 누가 산다고요? 다윗의 가문에 요셉이라고 하는 남자와 정혼한 처녀. 그 이름도 아름다운 마리아. 근데 오늘날 이름 짓는 거 보면 참 아름답게 짓느라고 하기는 하는 모양인데 속이 틀려먹었어. 속이 틀려먹었어. 그러니까 그 좋은 이름이 추하게 보이지요?

 

27절에 다윗의 자손.’ 다윗의 가문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육적 혈통을 말하고자 하는 것보다 다윗의 거룩하고 진실하사 그 신앙노선으로 사는 자를 계시하는 거다. 육적 혈통이 있듯이 말하자면 원 혈통 육적 혈통은 눈에 보이는 혈통. 껍데기. 그 속에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그 신앙정신으로 살아서 내려온 것을 말을 하는 거다. 아무리 육적 혈통이 좋아도 가문이 좋아도 정말 온 가정이 해체된 가정도 많다. 아무 소용도 없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그 신앙노선에서 그 신앙을 갖고 사는 그 자를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고자 하시는 마음이 맞아떨어진다.

 

, 하나님께서 보시는 마음과 인간 편에서 그렇게 사는 성도. 이게 맞아 떨어진다. 예정은 그렇게 들어오는 거요. 사람마다 각자 예수 믿는 신앙의 질이 있는데, 우리 모두 각자 예수 믿는 신앙의 질이 있어요. 그거 느낄 줄 알아야 돼요. 그 질이 진리생명 신앙의 노선의 그 질이 아니면 얼른 고쳐야 돼요. 세상 육적 세상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성적으로 나가는 그런 교인들이 좋아하는 그런 신앙의 질은 안 맞아요. 하나님하고 안 맞아요. 자기 신앙의 질을 알아야 된다. 각자 예수 믿는 신앙의 질. 우리는 본문을 보고 자기의 신앙의 질에 대한 그 질이 어떤 신앙의 노선인지 알아야 된다. 신앙도 노선이 있다. 전철 가는 노선 있고 기차 가는 노선이 있고 버스 차 자가용 가는 노선이 다 있다. 구국주의 신앙노선인지? 구국주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뭐 우리 집 앞에 뭐라고 돼 있더라? 뭐 크게 써놨는데? ‘하나님께서 이 환경과 이 사건을 넘어가게 하신다.’ 그 뭐 그 교회가 뛸 자리가 있고 뛸 이유가 있고 뛸 장소가 있다는 그 교회요. ‘하나님께서 넘어가게 하신다.’ 그 들을 때 어떻게 들립니까? 어떻게 들려요? 어떻게 들리느냐고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들립니까 사단 마귀가 간사성을 떠는 그런 게 속에서 느껴집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어떻게 여기는 것으로 느껴집니까? 그리고 사건 환경이 누가 일으킨 것으로 느껴집니까? 그 말 한 마디 속에 그걸 싹 분해하면 그걸 쓰는 그 목사의 사상 정신이 다 드러나요. 그걸 알아야 된다. 어떻게 간사하고 하나님 앞에서 오두방정을 떠는지?

 

사건 환경을 누가 일으켰어요? 마귀가 일으킨 걸로 보고 있다 그 말이요. 지금.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병신이요. 이치를 알아야지. 사회주의 구복주의 신비체험주의 극기주의 은둔주의. 그 신앙노선이 다 있어요. 천국복음 내세주의. 우리는 천국복음 내세주의요. 아이고, 세상에서 어떻게 사나? 잘 살고 있잖아요. 내가. ‘세상 세상하면서 부자 부자하면서 사는 사람 많아요. 그런 사람 사는 것과 나 사는 것과 뭐 별 차이 없더라고요. 왜 그렇게 스스로 자기 생명을 단축시키느냐 그 말이요. ‘세상하면 사람이 문제요.

 

자기의 신앙노선을 주님과 같은 신앙노선으로 갖지 못하면 현세에서 하나님의 은혜도 못 받고 하나님의 진노만 쌓고 형벌만 받다가 고통으로 가게 된다. 성경을 주신 것은 성경기준적인 신앙을 가지라고 주신 것이지 아무렇게나 자기 인간기준으로 믿으라고 준 게 아니다 그 말이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의 뜻에다가 맞추어야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그 의사성에 맞춰라. 그러면 큰 은혜를 받는다. 무슨 은혜든 은혜를 받는다. 비딱하게 있으면 엎질러 버리지요. 성경이라는 거울을 자기가 볼 때 자기가 비딱하게 있으면 그게 바로 보이겠습니까? 안 보여요.

 

이 다윗의 신앙가문에 신앙본질의 요셉. 요셉의 신앙이 좋다 그 말이요. 정혼한 처녀 마리아. 그 신앙노선을 선택하여 또 그 총각을 본 처녀 마리아. 이 요셉하고 마리아하고 연애 걸었을까요? 중매했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중매 반 연애 반 됐을까요? 이게 요셉은 전혀 딴 동네 살고 마리아도 딴 동네 살고 그랬을까 아니면 한 동네 살면서 그 걸음걸이라든지 이미 다 소문이 나고 있었을까? 오다가다 만났을까요? 한 동네에서 보는 것도 잘못 보면 큰 실수인데 오다가다 만나서 이 어찌 되겠나? 그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고.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이 마리아도 다윗의 가문이요 요셉도 다윗의 가문 그 진리신앙노선 같이 들어가 있어요. 이 요셉이 안 믿는 처녀 데려온 것 아니에요. 또 안 믿는 총각을 데려온 것도 아니고요. 참 중요하다. 성경에 보면 결혼관도 나오고 사업관도 나오고 다 나와요. 교육관도 나오고. 안 나오는 게 없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바로 교육이 돼 나오게 하는 것.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교육이 돼 나오는 것.

 

마리아 처녀가 아무렇게나 살았는데 운 좋게 만난 남자가 요셉씨였습니까? 통성명하고 집안을 살펴보니 다윗의 가문이었습니까? 그런 우연이었느냐 그 말이요. 그런 요셉씨라고 점은 찍지는 않았지만 그런 신앙을 만나기 위해서 마리아 자신도 그렇게 살았습니까? 하나님 앞에? 한 동네 살면 오다가다 골목길에서 잘 만나지요? 그렇게 만났을까요?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이게 엘리베이터 타고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이게 뭐 하루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도 있고. 그러면 그냥 지나칩니까? ‘아니, 이렇게 자주 만나 뵙게 되는데 이 동네 사십니까? 몇 층에 사십니까?’ 그런 인사 안 해요? 그 처녀들, 그런 남자 여러 번 보이고 그러면 남자 하나 타고 여자 이렇게 들어가면 암만해도 섬뜩할 거 아니요? 속이 어떤지 알 수 있어야지. 태권도나 배웠으면 타. 허허.

 

오다가다 골목길에서 만난 것이 그만 그렇게 된 것인가? 마리아 처녀가 먼저 윙크했을까? 요즘 처녀들 참 무서워요. 옛날 같지 않아요. 충청도에 시골에 전도하러 갔는데 시골에서는 총각들 보기 힘들어요. 아가씨들이 아주머니들하고 밭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자전거 타고 가는데 멀리서 휘파람을 불고 야단이 났어. 누구보고 그러나하고 뒤를 돌아보니까 없어. 나 혼자 가고 있어. 나보고 그런 거요. 그 대단한 거예요. 만일 그런 아가씨 만나서 살았다면 난 지금 살지 못하고 죽었을 거요.

 

요셉이 먼저 휘파람을 불었나? 지금이야 남편이지만 총각 때 목사님들이 어떻게 사모님께 먼저 휘파람 불었어요? 마리아 처녀가 저 총각 달라고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또 기도를 했고 요셉도 저 처녀 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한 것이 이루어진 겁니까? 그러다가 안 주면 어쩌려고. 아니면 이 무슨 방물장사라 그러나? 할머니들이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처녀들을 알아가지고 그런 할머니의 소개로 다리가 놓아져서 이게 요셉과 마리아가 성사가 된 건가? 그런 할머니의 거짓말로 인해서 피해를 많이 본 그런 부부가 많아요. 남의 소리만 듣고. 아니면 수영장에서 만났나? 여기 수영장에서 만난 분 어디 손 한 번 들어봐요. 천리포인지 만리포인지. 어디 없어요? 아니면 불가마 솥에서 만났어?

 

아니면 버스 안에서 무거운 짐이나 가방을 들고 있을 때 제가 좀 이렇게 들어드리지요.’ 지금은 별로 그런 게 없지요? 옛날에는 사람이 꽉꽉 차고 가방 들고 있으면 상당히 무거워요. 그럼 앉아있는 사람이 보다 못해 가방 달라고 해서 들어주기도 하고. 상당히 고맙잖아요. 그게 사람 사는 건데, 꼭 결혼이라기보다도 그게 사람이 사는 건데. 아니면 기차 안에서 만났나? 허기야 그 때는 그 나라에 기차가 없었지. 헌데 우리는 기차 안에서 만난 분 손 한 번 들어봐요. 없어요? 그럼 어디서 만났다는 거요? 도대체? 전철 칸에서? 아니면 산꼭대기에서 야호하니까 저쪽에서 남자소리가 굵게 야호하니까 저쪽에서 야호.’ 찾아가니까 만난 거요? 아니면 수영하다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건져주어서 만난 거요? 아니면 둘 다 진리신앙 사상으로 부지런하고 싹싹하고 상냥하고 둘 다 심성이 곱다보니 둘의 만남은 성령님의 역사로서 된 것인지? 어떻게 자기 결혼이 성령님의 역사로서 됐다고 확신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어떻게 만났던 이제 진리신앙의 노선으로 들어가야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전부터 요셉과 마리아를 유심히 보아오면서 저것들이 누구의 꼬임에 빠질까?’ 하는 그런 것도 있겠지요? 안 그럴까요? ‘저것들이 어디로 돌아다니나하는 그런 하나님의 보심도 없을까요? 어쨌든 유심히 보아오면서 남이 못 받는 전무후무한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고 싶었다 그 말이요. 정말 멋있는 그 이상이 없는 이 처녀를 아무에게나 주겠는가 그 말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키울 수 있는 심성을 가지고 있는 처녀가 누굴까? 입 벌리고 침 흘리고 자는 처녀일까? 자면서 늘 헛소리하는 처녀일까? 자면서 뭘 자꾸 먹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요. 아니면 자다 말고 공동묘지 한 바퀴 돌고 오는 처녀도 있는 모양이요. 신경질 난다고 남편의 국그릇에 소금을 한 줌 집어넣는? 아니면 밥을 태워서 솥 밑구멍에 구멍이 나고 냉장고 손잡이 뭐 문손잡이 찍찍거리고. 병 걸려요. 제발 냉장고 그런 손잡이 열고 닫는 거 항상 닦아요. 거기서 균 다 묻어 들어가요.

 

지금은 돼지도 감기 걸리나봐. 그 감기가 도는 모양이요. 콧물 흘리고 기침 나고. 혹시 그런 거 걸리면 교회 오지 말아요. 딴 사람이 걸려. 성경에 보면 딱 가두어 버려요. 낫거든 오너라 그 말이요. 지금도 어린아이들 수두요? 뭐요? 그거 돌고 있어. 근데 젊은 엄마들이 그거 아나? 모르지. 그래서 한 가정에 나이든 사람도 있어야 그런 것도 안다. 그리고 늘 말씀 드렸지만 그 여성들 옷 입는 거 조심해요. 이 몸이 드러날수록 추하게 보여요. 그거 알아야 돼. 괜히 외국풍 탄다고 그런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자기 몸과 마음을 사려야 된다. 세상 따라가지 말고. 그런 처녀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주실까요? 안 줘. 하나님의 은혜가 안 들어가. 그걸 알아야 돼.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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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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