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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김홍일 <12>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자연 속에 있어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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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의 시간은 정화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내게 준 선물은 나의 어두움과 잘못들을 돌아볼 기회를 준 것이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고백해야 할 여러 사람이 떠올랐지만 편지를 보낼 주소가 없었다. 결국 귀국하면 고해를 하리라 마음먹고 동생에게만 편지를 보냈다.

세바그람의 간디 아쉬람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봉사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간디가 활동했던 장소다. 네팔에서 만났던 조계종 승려 한 분과 불교 유적지를 다니며 이웃 종교에 대해 서로 배울 수 있었다. 짐꾼 없이 혼자서 히말라야 등반도 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공부를 마치고 잠시 태국 방콕에 들렀다. 그곳에서 내가 서울대성당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경조 신부가 서울교구장으로 피선돼 일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서울대성당에서의 사역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과 사뭇 달랐다. 집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는 나눔의 집에서 20년 가까이 지내 온 내가 교회가 제공한 아파트에 살면서 교회와 집을 오가게 됐다. 덕분에 시설에 있던 아버지를 모시고 와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 신앙적 갈망을 갖고 교회를 찾아오는 성도들을 만나며 목회할 수 있었다. 노숙인 급식을 위해 꾸준히 봉사하던 교우들과 청년 예배를 시작한 일은 소중한 기억이다.

대성당에 있는 동안 나눔의 집 후배 성직자들과 활동가들은 “처음 유학을 떠나며 계획했던 활동들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내게 물어오곤 했다. 나눔의 집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을 지키고 싶었다.

나눔의 집만이 아닌 교회를 위한 훈련센터였으면 좋겠다는 주교 제안으로 ‘디아코니아 훈련센터’를 시작했다. 나눔의 집에서 오래 활동했던 활동가 두 사람과 후배 성직자 등과 함께 사회선교 현장의 성직자 및 실무자와 교회를 위한 영성훈련, 공동체 관계훈련, 정서 심리 치료 등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디아코니아 사역을 하며 마음 한구석에는 늘 포천에서 준비하던 공동체에 대한 미련과 땅을 기증한 교우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후배 사제가 사역하는 현장으로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주어진 현실에서 공동체를 시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눔의 집 후원자 한 분이 파주 산기슭에 사용하지 않는 땅과 집이 있다고 했고 그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디아코니아 피정센터’를 운영하게 됐다.

후배 성직자들과 함께 파주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과 밤 기도를 함께하며 서울로 출퇴근하며 생활했다.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자연 속에 살 수 있어서, 한가로운 산책길이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퇴근하며 마당에 들어설 때 온 마당에 가득했던 백합 향을 잊을 수 없다. 주말에는 피정센터로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매월 센터를 찾아오는 손님들과 함께 피정을 하며 즐겁게 지냈다.

가난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돌보는 활동가들을 위한 쉼과 회복,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디아코니아 사회통합 치유연구소’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치유를 제공했다. 여러 분야의 심리치료사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관계하며 함께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경제적 가난과 정서적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도 공동체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정리=김동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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