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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이 충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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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욥바교회 2016년 12월17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복음서 강해 6 사명이 충돌할 때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7-19)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달달 외워야했다.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세대 사람들은 ‘민족중흥’이 우리의 역사적 사명이 되었다.


사명은 그 성취를 향해 달려가도록 이끈다. 사명은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한다. 아빠로, 엄마로 쉬지 못하는 것은 아빠로서의 사명, 엄마로서의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명은 이루기가 쉽지 않다. 그 사명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명의 충돌이 있을까? 오늘은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사명을 살펴보며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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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회당교회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실 때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임하셨다. 그 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리고 갈릴리에 오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셨다. 본격적인 공생애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으로 가신다. 거기 한 회당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신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는 것,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는 것,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역사적 사명이 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명이 그렇다면 그 사명과 반대로 우리를 포로되게 하고 눈멀게 하고, 눌리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일하는 실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탄이다. 여기서 사명의 충돌이 일어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그 사명의 충돌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사단의 사명은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은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느끼고 있는가? 대적 마귀는 오늘도 삼킬 자를 찾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두루다니고 있다. 예수님은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는 인류의 슬픈 운명을 바꾸셔야 했다. 그래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멸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마귀의 일이었다. 마귀의 일이 뭘까? 요한 일서 3장 8절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말한다. 마귀의 일은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하게 된다. 마귀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자신 아래 두려고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함이다. 요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예수님의 공생애는 예수님의 사명과 사탄의 사명이 충돌할 때 예수님이 어떻게 승리하셨는지 그 싸움의 정석을 보여준다. 본문을 다시 한번 보자.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예수님도 그분의 사역을 위해 보냄받기 전에 성령의 임하심이 필요했다. 하나님이 기름부으시는 은혜가 필요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영적 전쟁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과 능력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하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셨다.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셨다.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셨다. 누가복음 13장에는 18년 동안 귀신이 들려 허리를 펴지 못했던 여자가 나온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불러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안수하시자 여자의 허리가 펴졌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따지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눅 13: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사탄에게 매인 여자를 그 매임에서 풀어주신 것이다.


누가복음 8장에는 거라사 지역에 귀신 들린 자가 나온다. 그 사람은 옷도 입지 않고 집에 거하지도 않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였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다. 그러자 군대 귀신들이 그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고, 그 돼지가 갈릴리 호수로 내리달아 몰사하게 된다. 귀신이 나간 사람은 옷을 입고 다시 정신이 온전해져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는다.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만 하신 사역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포로되고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일들이 일어나길 원하셨다. 눅 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는 예수님의 사명은 곧 그 제자들의 사명이 되었다.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말씀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메시야 구절이었다. 사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 구절 때문에 1세기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다시 은혜의 희년을 가져다 주시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압제했던 원수들에게 보복하실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실 때 보복의 날을 생략하셨다. 주의 은혜의 해만 선포하시고 책을 덮으셨다. 그리고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는 자가 없다고 하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엘리야는 오직 이방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오직 이방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함을 얻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 자신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믿었던 은혜의 해가 이방인들에게도 열렸다는 사실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메시아가 자신들의 원수를 멸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은혜의 해를 주기 위해 오셨다는 말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다. 예수님의 회당에서의 선포와 설교는 결코 당시 유대인들이 듣기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나사렛 주민들은 화가 나서 예수를 낭떠러지로 끌고가 죽이려 했다. 그들은 종교의 영에 매여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충동을 받은 것이다. 사탄은 예수를 죽임으로 예수님의 사명을 꺾기 원했다. 그러나 사명이 있는 자는 그 사명을 이루기 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며 공생애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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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절벽산에서


 우리 모두는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때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사명이 있다. 그러나 사탄은 그 사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종종 사명의 우물을 막아버린다. 죽음으로 위협하거나 세상의 영광으로 유혹하면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사명이 방해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울의 이렇게 권면한다. 엡 6:10-12,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한 평생 살면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씨름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싸움의 본질은 마귀와의 싸움이다. 사탄이 계속해서 우리를 죽음으로 위협하거나 세상의 영광으로 유혹하여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이 땅에서의 사명을 막아버리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 이 두 왕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다. 사탄은 이미 패배했지만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남은 싸움이 있다. 아무도 이 싸움에서 예외되는 사람이 없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우리는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셨던 사명을 우리의 삶에도 선언해야 한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주님과 함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신 싸움을 싸워내야 한다. 


여러분의 사명의 우물이 막혀있지 않은가? 다시 파야한다. 죄와 사탄에 묶여 있는 영역들이 있는가? 그 묶임들을 끊어내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 싸움을 시작한다면 사탄은 더이상 우리를 방해할 수 없다. 우리의 사명을 막을 수 없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바울의 고백처럼 주님께 받은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 생명 다해 달려가는 우리의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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