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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리아의 헌신과 유다의 돈 욕심

  • 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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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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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와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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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마리아의 헌신과 유다의 돈 욕심

요 12:1-91.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 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 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 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 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 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 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예수께서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 시몬의 집에 초청을 받으시 고 잔치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마리아의 헌신적인 태도와 가 룟.유다의 정신이 대조되는데 [마리아의 헌신과 유다의 돈 욕 심]이란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신앙은 감사로 응답한다


예수님을 초청한 베다니 시몬은 나사로와 같은 집안이거나 친분이 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나사로 가정도 초청 받 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본문의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태와 마가는 그 연회의 집을 말할 때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 했습니 다(마26:7,막14:3). 2절에, 여기서 마르다는 역시 일을 하고 있었고 죽었다 살아 난 나사로는 예수님 곁에 앉은 자 중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었 습니다. 영적 감사의 태도로 봅니다.

이때 마리아의 감사가 나옵니다. 본문 3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 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 더라’ 5절에 보니 그 향유의 가치는 삼백 데나리온에 달하는데 당 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마20:2)이니까 한 해 동 안의 노동의 대가가 됩니다. 

 그 비싼 것으로 주님의 발을 씻 겨 드리며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는 마리아의 헌신은 평범한 행동이 아닙니다. 신앙은 마음 속에 깊은 감사를 간직해야 합니다.그리고 그 감 사는 본문에 순전한 나드 한 근이라 하듯이 순수해야 해야 합 니다.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 답할꼬’ 교회의 모든 충성은 감사하는 정신이 기초해야 합니다. 감사 도 단순한 예의 정도가 아니라 마리아가 부은 나드 향이 온 집에 가득했듯이(3절) 감사는 넘쳐나야 합니다. 억지로 행하 려면 피곤해서 교회 일을 못합니다. 구원해 주심을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사 도들도 아직 이 여인만큼의 감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2. 유다의 돈 욕심


마태는 마26:8에 제자들이 모두 마리아의 태도를 비난한 것 으로 기록했는데 요한은 핵심 인물이 되는 유다만 거론합니 다. 아마 유다가 선동하는 자로서 언행을 주도한 듯합니다. 유다는 돈 욕심이 가득한 자였고 5절에서 가난한 사람을 매 우 동정하는 듯이 공명심을 나타냈습니다.

유다는 본문 6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 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 라’(요13:29) 예수께서 7절에 마리아의 헌신적 태도는 자신의 대속적 죽 으심을 준비하는 일로 이해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가난한 자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습니 다.

신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 므로 ..’ 20세기 말부터 이성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고 사람을 중심으로 이용하려 하니까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나아가기보다 인간의 역사에 성경이 타당하게 적 용되기를 애쓰다가 신학이 인본학이 되어버렸습니다. 종교철 학이 된 셈이지요.

선교방법에 문화적 선교란 복음의 후속적 방편이어야 하는데 물질적으로 공급하면서 공명심을 보이는 것은 영혼을 건지는 데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선교는 세상 사람들 의 문화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복음의 능력 을 상실하게 됩니다. 유다처럼 관심을 세속적으로 가지고 교회를 다니면 영적으로 실패합니다. 주님을 감사하는 마리아처럼 우리가 받은 구원 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심령으로 주님을 찾는 우리가 되기 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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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사이버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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