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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잊지 맙시다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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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잊지 맙시다                   

눅17:11-17
 
  불행했던 나환자 시인 한하운의 시 중에 전라도 길(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어렵고 고단했던 시절, 나병환자들의 애환이 잘 표현된 시입니다. 나병은 어디서나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병이었습니다. 과거에 이 병은 불치의 병이었고, 전염성이 있어서 이 병에 걸리면 사회에서 추방되고 격리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나병은 저주 받은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부정하게 여겨져서 가정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나병환자 열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여기저기 떠돌다가 만나서 함께 지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한하운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


  이 사람들은 어떤 소망도 갖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병은 고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한 가지 놀라운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예수라는 분이 어떤 병자든지 다 고쳐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나병환자들을 고쳐주셨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아무 소망도 없었던 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겠습니까?


  이들은 마침내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11-12절)
  소문으로만 들었던 예수님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이 사람들에게 일생일대의 큰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이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지 붙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서 예수님을 향하여 크게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13절) 이 사람들이 얼마나 결사적으로 예수님을 불렀겠는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14상) 나병환자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인다는 것은 그 병이 나았음을 확인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병에서 회복된 사람은 이렇게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을 받고, 정결하게 하는 예식과 절차를 거쳐서 정식으로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병이 나았는지 확인하려고 자기들끼리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직 나병에서 나음을 받지 못했지만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에게로 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가는 도중에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14하)


  영문을 알 수 없어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순종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하시는 놀랍고 은혜로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지 모릅니다.


  길을 가다가 자기들의 병이 나은 것을 알았을 때 이 사람들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평생 저주 가운데서 고통스럽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했던 그들이, 그 저주스러운 나병에서 깨끗이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날아갈 듯이 뛰면서 제사장들에게 자기들의 몸을 보이러 갔습니다. 그리고 나병에서 깨끗이 회복된 것을 확인받고 가족들과 공동체 안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한 사람은 제사장에게 가기 전에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5-16절) 다른 사람들은 나병이 나은 것만 기뻐하면서 돌아갔는데, 이 사람은 먼저 예수님께 와서 경배하며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머지 아홉 사람이 그냥 돌아간 것에 대해서 한탄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7-18절)


  열 명 중 돌아와 감사드린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찍부터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특권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절망적인 나병에서 고침을 받고서도 돌아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오랫동안 차별과 무시를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마리아인을 이방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함께 고침을 받은 열 명 중에서 이 사마리아인만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사람만 은혜를 감사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와 감사드린 이 사마리아인에게 나병에서 고침 받은 것보다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절). 유대인들은 나병을 특별히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받는 저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나병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병인 죄까지도 사해주셨습니다. 그날 주님께 돌아와 감사드렸던 이 사람은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감사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를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까? 그 은혜에 대한 뜨거운 감사가 있습니까? 혹시 당신도 여기 나오는 아홉 사람처럼 감사를 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 사마리아인처럼 뜨거운 감격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사마리아인처럼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구하지만, 정작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성도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받은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멸망을 당해 영원한 지옥 형벌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이 구원의 은혜를 어떻게 다 감사하며 보답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이 구원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별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매일 순간마다 가슴 뜨겁게 감격하며 이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찬송가 311장 1절)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뜨거운 감격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주신 모든 은혜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늘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없는 불신자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들은 감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1:21)
  그렇다면 감사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에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볼 줄 알고, 감격하며 감사합니다. 그래서 늘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이 좋은 성도는 평안하고 형통할 때만이 아니라, 역경과 시련의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감사합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죽음을 앞에 두고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하나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해주셨음을 늘 기억하는 성도,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나의 아버지 되심을 분명히 믿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믿음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보답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마땅히 그 은혜를 보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보답하고자 할 때 더 큰 은혜를 깨닫게 되며, 더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며 은혜에 보답하기를 힘쓰는 사람은 항상 행복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117:5-14)


  사도 바울은 뜨거운 감격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을 다했으며,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했던 것입니다.


  저는 시험을 치러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이렇게 잘 자라고, 맘껏 공부하며 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 은혜이다. 이번 시험도 하나님 은혜로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역시 하나님 은혜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예비해놓고 계신다. 그러니 안심하고 감사하면서 시험을 보도록 해라.”


  시험 치는 학생들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하나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하나님 은혜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인생을 마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하고 늘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깊이 깨닫고 뜨겁게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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