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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심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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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심                  

눅4:14-30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회당에 가신 예수님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들어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14-15절)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으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에 퍼졌습니다.


  이렇게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나사렛 회당에서도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16절)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로 여겼기 때문에 회당에서 설교해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고 설교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17-19절) 성경을 낭독하신 예수님께서는 설교하시기 위해 앉으셨습니다.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20절)


    메시아 예언


  예수님께서 낭독하신 말씀은 이사야 61:1-2 말씀이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로 기름 부음 받으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께서는 늘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광야로 돌아오셔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1-2상) 예수님께서는 시탄의 시험을 이기신 후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14절) 이사야의 예언대로 성령께서 예수님께 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20-21절)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이 오늘 너희에게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이 말씀으로 무엇을 예언했을까요? 그 예언이 그날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성취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사야는 이 구절에서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니라 하시니”(21절) 다시 말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메시아로서 이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의 사역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이며, 이제부터 이사야가 예언했던 메시아의 사역을 시작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18-19절)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는 억압과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주님께로 오는 자는 죄와 사탄의 멍에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시면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심으로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주의 은혜의 해’는 희년을 가리킵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 즉 50년째 되는 해를 가리킵니다. 희년은 하나님께서 안식일, 안식년과 함께 인간과 자연만물의 안식과 회복을 위해 제정하신 제도였습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채무자는 채무에서 벗어나며, 온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팔리거나 증여되었던 기업은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아갔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메시아이신 예수님만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구원 받게 될 것을 예표했습니다.


  안식일은 본래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되는 날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여 복 주신 날이었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이스라엘은 안식일에 모든 노동을 중단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며 안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 모세는 안식일을 출애굽과 연결시켰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내신 사건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지키는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희년의 규례를 통해 종 되었던 자들이 거기서 벗어나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이 해방된 것과, 희년이 되면 종이 되어 얽매었던 자들이 돌아오는 것은 같은 맥락에 있는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모두 메시아가 오셔서 죄인들을 죄와 사망과 사탄의 멍에에서 구원해내실 것을 예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에 매어있던 죄인들을 구원하심으로 희년, 즉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정한 희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희년이 되면 빚 때문에 팔리고 억압을 당하던 모든 사람들이 해방되어 돌아왔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힘입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을 받아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나 구하는 것을 얼마든지 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힘입기 위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복되는 일입니까?


  그런데 아직도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있습니까? 기도제목은 많은데, 문제와 걱정거리는 쌓였는데, 기도하지 않고 있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나 받을 수 있는데 기도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힘써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회중들의 반응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회중들은 놀라며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설교한 랍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어렸을 적부터 자기 동네에서 자라신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이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22절)


  그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을 듣고 놀랐지만, 자신들이 예수님을 어렸을 적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은 예수님을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 요셉의 아들이 어떻게 이런 설교를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도 가버나움에서 행하셨던 것과 같은 기적을 한 번 보여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으려 하지는 않았고, 단지 기적 보기만을 원했던 것입니다.


  마가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으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찜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6:2-3)


  그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와 누이들은 지금 그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목수가 어떻게 이런 권세 있는 설교를 하며, 그렇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믿었다면 모든 의문이 풀리고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불신앙을 책망하심


  예수님께서는 당시 통용되던 속담을 인용하여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23절)


  의사였던 누가는 이 속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속담은 ‘의사는 자기 약으로 자기 병을 고친 다음에야 다른 사람을 고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기적을 행하셨다는데, 이곳 나사렛에서도 기적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 받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고정관념과 선입견 때문입니다. 때로 이 고정관념과 신입견은 신앙의 큰 방해물이 됩니다. 언제나 어린아이 같은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있었던 두 가지 예를 들어 믿지 않는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25-27절)


  이스라엘 역사상 엘리야와 엘리사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위대한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던 시대에 왜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들과 나병환자들은 도움을 받지 못했을까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받기 원하는 간절함과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었던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의 말을 믿고 마지막 남은 음식을 그에게 먼저 드렸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수리아의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가면 자신의 병을 고침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찾아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오셨는데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엘리야 시대와 엘리사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악하고 불신앙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메시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이 두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이라 하더라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를 받아들이면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 함


  나사렛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28-30절)


  나사렛 사람들은 유대인들인 자신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에 분노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 한 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당하실 배척과 핍박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예수님께서 자기들 동네에서 어렸을 적부터 자라셨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 어디서 뭘 배웠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편견과 불신앙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했더라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놀랍게도 어렸을 적부터 자기들 동네에서 자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죽이려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정한 희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속사역을 이루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권세와 멍에와 압제에서 해방되었고, 영원한 사망과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무엇이나 구하면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희년, 즉 은혜의 해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모든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까? 더욱 겸손하고 간절하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와 사망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히4:16). 교만과 편견을 버리고,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힘써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맘껏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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