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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각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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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71011111509_01.jpg (File Size: 67.0KB/Download: 0)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사야 43장 19절)
 
 ‘생각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생각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발표에 의하면 ‘나는 늙었어.’라는 생각만으로도 뇌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나쁘다’라는 생각이 실제로 기억력을 나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나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기억력의 점수가 월등하게 높았습니다. 생각은 이처럼 우리의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뿐만 아니라, 생각은 우리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어제의 생각이 오늘의 당신을 만들고 오늘의 생각이 내일의 당신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내일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닫힌 문만 바라보면 인생은 실패합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입니다. 평생 시각 장애인으로 청각의 장애를 가지고 살았던 헬렌 켈러 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다가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보지 못하곤 한다.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지나간 실패의 기억은 떨쳐 버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으로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지만 엄청나게 행복하고 위대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1.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매여 현재를 비관하거나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그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이 가득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것은 현재라는 시간인 것입니다. 돈에 비유하면 과거는 이미 써버린 돈이요, 미래는 불확실한 어음이며, 현재는 쓸 수 있는 현금입니다. 지나간 과거의 실패에 묶여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근심과 걱정에 묶여있다면 희망 찬 오늘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삶의 내일의 희망을 만들어내야 됩니다. 누가복음 12장 25절로 26절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입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못하지만, 주님을 믿고 주님이 같이 계시니 할 수 있다’ 그와 같이 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린 환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에게 안수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 그 환자를 데리고 온 들것에 그대로 싣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갈 수 없어도 그들은 길은 있다고 생각하고 찾아본 즉 집 지붕에 구멍을 뚫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붕에 올라가서 집 천장 구멍을 뚫고 중풍병 환자를 달아 내려서 예수님께 안수를 받고 나았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 평생에 중풍병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집 구멍 뚫을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패배한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바람을 보지 말고 주님을 보십시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파도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두려워했으나 베드로는 “만일 주시어든 나로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오라.” 그러니 예수님이 오라는 말을 듣고 베드로가 배 밖에 나갔으니까 그도 예수님처럼 물 위에 서서 걸어가는데 광풍이 불어와서 얼굴을 때리니 그만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파도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잘못한 결과로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니 예수님이 팔을 잡고 끌어 일으켜 살려주시면서 베드로를 꾸짖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있을 때는 물 위로 걸었는데 파도를 바라봤을 때는 바람을 볼 때 그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차서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에는 늘 풍랑이 일어납니다. 적은 풍랑, 큰 풍랑, 풍랑이 언제든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환경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에게 삶의 길이 열립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사야 43장 19절에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면 길이 없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물이 없는 사막에 강을 내어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라


 생각을 바꾸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죄인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죄의 용서와 의의 선물을 기대하면 죄사함과 의로움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더러움을 씻고 거룩하게 될 것을 기대하면 그러한 은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바라보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의관들이 만들어낸 병명이 있는데 ‘가시철망 병’이라는 것입니다. 이 병에 걸린 포로가 된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는데도 수용소의 가시 철망이 눈앞에 아른거릴 때, 삶의 의욕을 잃고 자리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하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시철망 병에 걸렸는데, 어떤 사람들은 다 같이 포로수용소에서 가시철망을 바라봤는데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까 그들은 포로가 되어서 가시철망 뒤에 있었지만 가시철망을 바라보지 않고 철망 저 너머 푸른 하늘을 늘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전쟁가운데 상처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시철망 병에 걸려서 들어 누워서 늘 두려워했는데, 이 사람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포로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주 즐거운 삶을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믿음의 발걸음을 옮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십자가 밑에 나가면 십자가를 통해서 희망을 하나님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중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다 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어떠한 죄인도 구원받고 용서받을 수 있고, 어떠한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 더러운 사람도 청결하고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도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연약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음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저주에서 해방되어 헐벗고 굶주림을 벗어나서 잘 먹고 살 수 있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천국갈 수 있는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이런 언약과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가지고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삶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서 희망을 가질 수 있음으로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떠한 처지에 부딪히더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어릴 때 몸에 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행동이 처음에는 거미줄처럼 약하지만 계속되면 밧줄처럼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동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에도 습관이 생깁니다. 물이 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흐르면 물길이 생기듯이 생각도 계속하면 습관이 생기는 것입니다. 계속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 사람은 무엇이든지 안 되는 것만 생각하고, 못 되는 것만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잘 다스리고 훈련해야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 속에 만나기 원하면 항상 십자가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합니다. 


3.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라


 열 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 뒤로 가서 옷자락에 손만 대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안했으면 군중을 헤치고 예수님 계신대로 나가서 그 옷자락에 손을 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그 여인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그 여인이 사는 집 앞을 지나갈 때, 이 여인은 생각을 따라서 뛰어나가 그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라는 생각은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일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진퇴양난의 위기를 만날 때, 세상 사람들은 ‘이제는 길이 없다. 막다른 골목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사통팔방 어느 곳에도 길이 없는데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은 길이 있느냐?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에 길이 열려 있습니다. 동서사방으로 다 길이 막혀도 아직 위에는 뚫려 있는 하늘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늘길이 있는데 하늘길이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하늘길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온 천지가 다 막혀도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은 열려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11장9절에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 길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기도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만년필은 루이스 에드슨 위트맨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입니다. 원래 이 사람은 보험설계사였는데, 하루는 보험계약을 하러온 사람하고 앉아서 계약서를 쓰다가 잉크병이 기울어져서 잉크가 계약서에 번져 들어가서 못쓰게 되었습니다. 이 위트맨이 새로운 계약서를 끄집어내어서 쓰자고 했을 때, “계약에 잉크가 쏟아진 것을 보니까 재수가 없다.” “계약 안하겠다” “당신은 보험에 실패할 것.”이라고 화를 내고 나가버렸습니다. 이때 위트맨은 다른 생각을 갖습니다. ‘한쪽의 길이 막히면 다른 쪽에 길이 열린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자 잉크가 안 쏟아지는 만년필을 만들어보라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래서 만년필을 만들었습니다. 보험회사보다도 돈을 더 잘 벌었습니다. 잉크가 쏟아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 생활 속에서 잘못 되는 것도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면 잘된 것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일이 안 되면 비난하고 공격하고 탄식하고 팔자 신세 한탄을 하는데 그러지 말고 일이 안 되면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길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제가 믿는 그 길을 버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다 끝장났다’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인생이 끝장나고 맙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할 수 있다, 해 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나오는데 참 과감한 말씀 아닙니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 그것이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 없고 빈 손 들었지만 그 모든 것 보다도 자본이 많이 가지고 있는데 믿음이 자본인 것입니다. ‘믿습니다’가 자본인 것입니다. 그 자본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불린 E.M. 바운즈는 기도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성도의 손에 쥐어주신 기이한 능력이다. 기도야말로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가장 강한 끈이며 연약한 인간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동참할 수가 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다.” 성도의 기도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손길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4. 뒤로 물러서지 말라


 문제를 만났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편 146편 3절로 5절에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는 시련을 만날 때,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도우심을 구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기도로써 비를 내리게 했던 사람인데 가뭄이 와서 사람들이 굶어죽은 처지에 있게되자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비를 달라고 기도했는데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한 번 기도하고, 두 번 기도하고 또 산꼭대기에 올라가보니 아직 응답이 없습니다. 세 번 기도하고, 네 번 기도하고, 다섯 번 해도 효과가 없어요. 여섯 번 해도 효과가 없어요. 일곱 번 기도하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보니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올라요. 그가 아합왕에게 말합니다. “큰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리니 마차를 정비해서 타고 빨리 시내로 들어갑시다!” 그래서 시내로 들어가는데 순식간에 온 하늘에 구름이 덮이고 비가 쏟아졌습니다. 낙심하고 한두 번 기도해서 안 된다고 뒤로 물러갔으면 그런 기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한 과부가 재판관 앞에 나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소서.” 아무리 해도 이 재판관이 말을 들어주지 않다가 나중에는 하도 끈질기게 구하니까 “내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정한 사람이지만 이 여자가 하도 출근할 때 마다 문 앞에 엎드려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면 내가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기도를 응답해주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기적은 고집스러운 면도 필요합니다.

 한 도시에 우물 파는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우물을 파야 마실 물도 얻을 수 있고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용수도 얻을 수 있는데 그 분야의 전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해서 질문을 합니다. “당신이 우물을 파면 물이 늘 나오고 다른 사람이 파면 우물에 물을 얻지 못하는데 어떤 특별한 기술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 전문가는 웃음지으며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좀 파다가 물이 안 나오면 또 다른 우물을 파러 가지만 나는 물이 나올 때까지 팝니다. 그것이 비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줄곧 해도 응답을 못 받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습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응답이 올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떼를 쓰고 물러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친구가 왔는데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합니다. 주인으로서는 귀찮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당신이 나의 친구가 돼서 주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게 함으로 주는 겁니다”고. 예수님이 그 비유를 들으셨습니다. 아주 우스운 비유같지만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병고침을 위해서 십년동안 기도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십년을 하루같이 끈질기게 기도했더니 고침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때 제목을 정해놓고 아침에 기도도 하고, 점심때 기도하고, 저녁때 기도하고 똑같은 기도를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기도를 하려면 제목이 자꾸 변화되고 내용이 복잡해집니다. 예레미아서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마귀가 막고 있지만 끝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나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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