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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골 0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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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중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하겠습니다. 호랑이가 깊은 웅덩이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불쌍히 여겨 살려 주었습니다. 웅덩이에서 나온 호랑이가 입맛을 쩍쩍 다시더니 배고파 견딜 수 없노라며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사람은 너를 살려준 나를 잡아먹겠다니 이 럴 수가 있느냐며 설득했지만 호랑이는 그건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너를 잡아먹어야 되겠다며 덤벼 들었습니다. 다급해진 사람은 그러면 물어보고 결정하자며 나무를 찾아갔습니다. 전후 사정을 다 듣고 난 나무는 잡아먹는게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란 걸핏하면 나무를 찍고 자르고 불어 던지곤 했는데 나라고 사람편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더니 잡아 먹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밭 갈고 짐 나르고 험한 일 시키다가 걸핏하면 도살장으로 끌고 가 때려죽이고 안창살 따로 떼고 안심살 따로 떼고, 갈비는 토막내고…, 마침 그 때 토끼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토끼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토끼가 말만 들어선 잘 모르겠다며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보자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원위치인 웅덩이로 들어가고 사람은 웅덩이 가에서 있고…, 원위치로 돌아가자 토끼는 이대로가 좋겠다며 가버렸고 사람 역시 웅덩이에 침을 뱉고 가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배신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호랑이신세처럼 다시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호랑이같이 은혜를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감사할 줄 모르고 배신하기를 잘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공급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위험에서 건져주셨건만 하나님을 찬미해야 할 때 그들은 불평하며 투덜대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한 가장 좋은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감사에 인색한 것은 믿음보다는 불신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충만할수록 긍정적이고 더 많은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며 만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살 것입니다.

골로새서를 기록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많이 감수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감사의 삶 자체였습니다.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찬양했습니다. 바울의 초대교회에 보낸 서신서들마다 감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마디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순종하여 모두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서로 인사합시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자입니까?

1.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십시오.(15)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감사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존재가 될 때 나 자신이 행복하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실 모든 뜻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감사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면 마땅히 감사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합니까? 그리스도의 구원이 내게 성취될 때 그리스도의 평화가 내 마음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15절)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로, 이웃과 갈등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평화가 깨지고 평강을 잃어버린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화목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된 것을 화목하게 하시고, 이웃과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청산하고 서로 서로 화목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입었기에 우리는 마땅히 감사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부부가 서로 화목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직장에서 동료 간에 화목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서로 화목하며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우리에게 평강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요 20:19)
우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은 자로서 어떤 경우라도 감사를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빌립보서 4장6절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였습니다. 염려가 찾아올 때 기도하고 마음을 감사로 바꾸면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평강과 감사는 항상 같이 갑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면 마음에 평안이 넘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면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감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상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분 좋으면 감사하고 기분 나쁘면 불평하고, 잘되면 감사하고 잘 안되면 불평하고, 자기 뜻대로 되면 감사하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불평합니다. 절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므로 어떤 환경과,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우리는 모든 감사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청소해야 합니다. 사단이 뿌려놓은 불평과 원망과 근심과 염려같은 잡초들을 뽑아버리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평강의 지배를 받고 평강을 누리며 살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부르셨습니다.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단이 가져다 준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받은 은혜들을 묵상하며 감사함이 넘치게 하십시오. 은혜받은 것이 잘 생각나지 않으면 구원받은 것, 죄사함받은 것, 영원한 천국백성이 된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감사가 넘쳐나며 감격스럽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 늘 감사의 제목 몇 가지는 품고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2. 감사의 예배를 드리십시오.(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16절)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함으로 받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로 받을 때 그 말씀이 내 속에 풍성히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물질을 드릴 때 열납하시는 헌금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로 노래를 부를 때 영감있는 찬양이 됩니다.
수도원과 감옥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으므로 천국이요, 감옥은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탄식과, 후회가 있으므로 지옥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가정에서 살지만 불평하고, 불만하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가정은 지옥이요, 감사와, 찬송과,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천국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감옥같은 심령을 천국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수도가 있기 전에는 물을 뿜어내는 펌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펌프는 그냥 펌프질을 하면 물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물을 한바가지 퍼다가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하면 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하여 큰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려 큰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기도도 잘 안되고 예배도 맹숭맹숭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마음속에 감사의 생수를 한 바가지만 퍼서 하나님께 부어 드리며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그리고 찬송하고, 말씀을 들으면 은혜가 샘물처럼 솟아오를 것입니다. 큰 기쁨이 펑펑 쏟아질 것입니다. 이때 내 심령은 천국이 되고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하였습니다. 늘 그의 마음에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만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해야 할 줄 믿습니다.

헬라어로 감사와 은혜는 어원이 같습니다. 16절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라고 되어 있는데 감사함이라는 단어 앞어 표가 있습니다. 밑에 각주를 보면 혹 은혜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사를 은혜라는 단어로도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감사가 풍성한 마음으로 예베를 드릴 때 은혜가 풍성해지는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번 예배에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함으로 나아와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예배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만나며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감사하는 자는 반드시 불평이나 불만이 아닌 감사한 마음과 감사의 찬양과 감사의 예물을 들고 하나님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늘 감사의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3.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이것은 삶속에서의 감사를 뜻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일을 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감사를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무엇인가 은혜를 받았을 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듣는 이가 행복해집니다. 보람이 생깁니다. 그런데 감사를 잊어버리면 마음이 상심이 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일할 때 일의 능률이 오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도움을 주어도 감사가 없습니다. 위협하여 빼앗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를 베풀어주어도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감사할 줄 모르니까 더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받고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감사를 표현하면 또 주고 싶습니다. 더 주고 싶습니다. 알파코스를 하면서 게스트에게 헬퍼들이 사랑을 표현합니다. 매주 문자도 보내고 편지나 카드를 준비하여 전해줍니다. 작은 선물도 준비하여 정성껏 포장하여 책상에 갖다 놓습니다.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이 그걸 그렇게 좋아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목요일을 기다립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헬퍼들은 더 행복해합니다. 더 열심히 준비합니다. 좋아하고 고마워하니까 돈이 들어도, 시간이 소모되어도, 수고를 해도 억울하거나 아깝지 않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얼마나 더 풍성한 축복을 주실려고 애쓰실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욱 감사할 일이 넘치게 하십니다.
어느 해 독일 전역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기근으로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비교적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老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老부부는 어느 날 동네 공터에서 놀고 있는,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바싹 마른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곧 집에서 빵을 여러 개 구운 뒤 그것을 공터로 가지고 나와 배고픈 아이들이게 나눠주었습니다.

'이 바구니에는 너희들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단다. 모두 한 개씩만 가져가거라. 내일 오면 또 빵을 주마.'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큰 빵을 가지겠다고 달려들어 한 개씩 움켜쥐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빵을 가져간 뒤에 항상 마지막 남은 작은 빵을 집어드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크레첸이었습니다. 소녀는 언제나 가장 작은 빵이 자신의 차지가 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老부부에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꼭 잊지 않았습니다. 노부부는 그런 크레첸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노부부가 나눠 준 빵을 감사히 받아들고 돌아온 크레첸은 동생과 함께 나눠 먹기 위해 빵을 쪼개다가 그 안에서 반짝이는 은화 여섯 닢을 발견했습니다. 크레첸은 깜짝 놀라 얼른 은화를 가지고 노부부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크레첸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은화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기 위해 제일 작은 빵을 만들 때 넣은 거란다. 크레첸, 네게 주는 선물이다.' 할아버지는 크레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아직 그의 것이 아니다.'

돈 벌어놓고 감사하지 않으면 그 돈은 그의 것이 아닙니다. 지위가 주어져도 감사하지 않으면 그의 것이 아닙니다. 지식과 재능과 기회가 주어져도 감사하지 않으면 그의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을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남편이 아내를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그 가정은 비로소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사람들이 소중하고 감사할 때 비로소 내 나라 내 조국이 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어쩌다가 이 교회에 오게 되었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좋은 교인, 좋은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나. 너무 감사하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하늘이 쏟아낸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감사의 절기를 명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만히 두면 본능적으로 감사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감사를 훔쳐가기 때문입니다. 일 년 열 두달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렇게 못하니까 이렇게 감사의 절기를 정해서 이 때만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이때에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절에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로 모두 인정받아 더 행복하고 존귀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문기태 목사 (칭원침례교회)

 (2005-06-2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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