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와 신앙은 하나다 (골 03:15)

첨부 1



할렐루야 ! 오늘 맥추감사절을 지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불평하는 자가 되지 말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만, 유치원 다니는 어린 아이가 교회를 가는데, 엄마가 아이에게 200원을 주면서 100원은 헌금하고 100원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라고 했습니다. 동전을 들고 가다가 그만 동전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공교롭게도 하수도 구멍에 떨어져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떨어진 동전을 쳐다 보면서 “헌금 잃어버렸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선입니까? 내가 우선입니까?
오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배워서 예수님 믿는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면서도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 있습니다. 기적을 보고 경험하면 예수님 믿을 것 같지요? 아닙니다. 기적이라고 하면서도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라고 하는 일본의 유명한 목사님이요, 신학자는 사람이 받는 저주는 병들었거나 가난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저주를 이야기하는데, 첫째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저주라고 합니다. 둘째로 성경을 보고도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저주입니다. 셋째로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저주라고 했습니다.

오늘같이 &44419;은 날에도 예배당에 나올 수 있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냐고 했을 때에 사람들은 ‘선지자, 세례요한’ 이라고 했지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외아들입니다” 라고 이야기하자, ‘바요나 시몬아 너를 알게 하신 것은 네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그 믿음의 고백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말씀하기를 ‘사람이 내게 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면 내게로 올 자가 하나도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거지였지만, 천국에 갔고 부자는 잘 살았지만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가 지옥의 불꽃 속에서 고통을 당하던 중에 눈을 들어 보니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셔서 내 혀에 물 한방울을 떨어뜨려 주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라고 하자, 아브라함은 너와 나 사이에는 너무나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안 된다고 거절합니다.
나사로가 또 “나는 안 된다 해도 나의 형제 다섯이 세상에 있는데 그들은 이곳에 오면 안 되겠으니 나사로를 보내셔서 이렇게 무서운 지옥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요구도 거절하며 “세상에는 이미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음을 기록한 성경이 있다. 누구든지 성경을 믿거나 복음 전하는 자의 말을 믿으면 예수를 믿을 수 있고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나사로는 “세상에는 성경도 있고 복음 전하는 자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 죽은 자가 무덤을 열고 일어나서 무엇인가 한 마디 하면 다 믿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형제들이 믿을 수 있도록 나사로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네 말이 틀렸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찾아가 전해도 믿지 않는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죽은 자가 찾아와 전하면 믿겠습니까? 이적과 기사를 보면 다 믿을 것 같습니까?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이들이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았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메시야로 믿지 않습니다. 이적과 기사를 많이 행한 가버나움과 고라신 같은 동네는 제일 믿지 않아서 예수님이 ‘화있을진저 고라신아 화있을진저 가버나움 사람들아 너희에게 행한 이적과 기사를 차라리 유황불로 멸망받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내가 행했더라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 왔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적과 기사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외치기를 “십자가에서 뛰어 내리라 뛰어 내리는 것을 보면 믿겠다” 라고 했지만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뛰어 내린다고 믿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도 믿지 않을 것이 사람입니다. 이처럼 이적과 기사가 우리를 믿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겠다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원한다고 믿어지는 줄 아느냐 아니라 달음박질한다고 믿어지는 줄 아느냐 아니라 남보다 더 노력한다고 믿어지는 줄 아느냐 아니라 오직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믿게 하실 때에 믿어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감사하는 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성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자가 있어서 임금님께서 그런 성자를 만나봐야겠다고 해서 성자를 초청해서 왕궁으로 모시고 큰 잔치를 열어서 잘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이 성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성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이 사람은 ‘내가 40일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성경을 1000독하고, 성자가 되었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오게 되고 좋은 잔치자리에 초대받게 된 것은 임금님의 큰 혜량과 또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임을 잘 압니다.
임금님은 아니라고 하며 “내가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성자이기 때문에 내가 초청한 것이라” 고 했습니다.
성자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온 것은 임금님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 잘 믿고 성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하늘의 하나님께서 넓은 마음을 갖고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믿음 안에 살게 하셔서 성령으로 인도해 주시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주시고 말씀 안에 살 때마다 축복 주셨기 때문에 내가 그 은혜로 이렇게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성자가 무엇입니까? 잘 난 사람이 성자가 아닙니다. 성자는 그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하고 임금님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부지간에도 잘 살려면 ‘나 때문에 살지, 친정에서 돈 줘서 살았지, 내가 능력이 많아 출세해서 잘 살았지’ 등의 이야기를 하면 잘 살수가 없습니다.
진짜 행복한 집은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게 되서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집입니다. 누가 나를 위해서 빨래 해주고, 밥 해주고, 자식을 낳아 주겠습니까? 자식 낳는 것은 목숨 바쳐서 낳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아내를 높이고 높이고 높여도 다 못할 것이 아닙니까?

누가 나를 위해서 힘든 현장에 나가서 애쓰고, 수고하고, 땀 흘리고, 때로는 천시당하기도 하고, 구박받기도 하면서, 성질 내지 못하고 일하면서 생활비 벌어다가 갖다 줍니까? 당신이 내가 있으니 오늘 내가 살고 이렇게 사는 것이 감사합니다.
내 자식이 이쁘고 내 손주가 이쁜 것 만큼이나 우리들은 우리의 아내나 며느리들을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네가 이 집안에 와서 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집안은 잘 될 수가 없습니다.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잘났던지 못났던지 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날까지 우리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내 딸을 거두어 준 사위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집안이 행복한 집안입니다.

어느 책에서 본 글 가운데 10-20년 된 부부 가운데 아내를 보며 남편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가짜라고 &50043;습니다. 친구들에게 이런 글이 있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그런 눈은 뽑아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집에 와서 아내를 보니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가난한 신학생에게 시집 와 같이 살자고 해 준 아내가 감사하고, 그런 가난한 신학생을 사위로 삼겠다고 기쁨으로 맞아주신 장인 장모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한마디 하지 않는 처남과 그 식구들에게 감사하고, 결혼해서 살 집이 없어서 여주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60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가을인데도 두꺼운 솜이불을 덮어야 잘 정도로 추웠습니다. 그때는 교사 생활비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십일조 떼고 감사헌금 떼면 10분지 2 정도 떨어집니다. 그 적은 돈에서도 부모님 용돈 보내드려야 한다고 10분지 2정도 떼고, 신학교 가는데 고속버스비가 얼마나 많이 드는지 그것 떼고 나면 먹을 게 별로 없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 지낸 것을 생각하니 좀 눈물이 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모든 것 하나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아갈 수가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를 믿은 것은 그냥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크고 넓은 사랑이 있어서 나를 거두어 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요, 이런 사람이 성도요, 성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게 하셔서 믿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된 사람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와서 믿으라 해도 믿지 못하는 믿음, 이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주셨으니, 전적인 은혜요, 우리의 믿음은 참으로 기적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믿을 수 없음에도 믿게 되었으니 기적이요 우리가 큰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부자가 간 지옥에 가지 아니하고 거지처럼 천국에 가게 된 것을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조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를 믿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전도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믿었던지, 부모의 권유로 예수를 믿게 되었던지, 성경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던지, 친구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던지, 병상에서 믿게 되었던지, 사업실패와 어려움 속에서 예수를 믿었던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믿게 된 이 사실 우리 모두가 감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감격 갖고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노예를 팔아먹던 노예 상인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목사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그 은혜가 감사해서 이런 찬송을 지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예수를 믿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 그런 감사하는 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해야 하는 자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는 것을 선택이나 권면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가 아니라 꼭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령은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안 하면 죽는 것입니다. 감사를 해야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복을 못 받습니다. 감사를 해야 축복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나와서 시내산 밑에서 교육을 받고 광야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도 먹고 메추라기도 먹고 반석의 물도 마시고 전쟁이 나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고 축복의 땅까지 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와서 하나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실 때에 사람들은 만사불여튼튼이라고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그곳에 갔다 와서는 하나님이 주시려는 땅은 너무나 좋은 땅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그 곳에 사는 사람은 너무나 큰 거인 같아서 우리가 도저히 그 땅을 차지 할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광야 길에서 방황하다가 열두명의 정탐군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믿음있는 사람들만 축복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여기서 맥추감사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알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번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얻은 것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드리면서 그 마음 속에는 애굽 땅에서 나와 50일만에 시내산 밑에 백성들을 모아 놓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도덕법, 민법, 그리고 25장에 가서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 인도했지, 너희가 말씀대로 살면 그리고 나를 믿으면 가나안 땅에 가게 하겠다. 나를 믿겠느냐” 라고 할 때 이들이 “예, 믿겠습니다.”하며 시내산 피의 언약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 지키면 죽겠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하나님의 성막을 주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 어디에든 있지만 이 성막 안에 있겠다. 이 성막을 앞세워 요단강을 건널 때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을 돌 때에 무기 하나 없었지만 하나님의 성막 하나님을 앞세워 갈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과 함께 가면서 이들이 언제든지 갈 때에는 하나님의 성막을 앞세우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에 이기고 승리하는 일이 일어나고 잠잘 때에도 하나님 중심으로 흩어져서 잠을 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만 믿겠다고 했으면서 그곳에 와서 원망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의 물로 마시게 했습니다. 옷도 헤어지지 않아서 옷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나도 군대가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도 원망불평할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망 불평했던 것입니다. 원망불평의 반대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이들이 맥추감사절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이 땅을 이들로 차지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승리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사는 그냥 감사가 아닙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귀한 예물을 드리는 것은 믿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요즘 서울 시장인 이명박 장로님이 어느 기도모임에 가서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라고 이야기해서 이것이 개인의 소유냐 하며 안티 이명박 사이트가 생겼습니다.
이명박 시장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을 세상 사람들처럼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이명박 시장의 마음 속에는 솔로몬과 같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에 솔로몬아 네게 무엇을 줄꼬 하실 때, “하나님 내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 백성 잘 믿어 복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복을 주시어 솔로몬 당대에 역사적으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장로님의 마음 속에는 세상 사람들의 말처럼 이것을 빼앗아다가 다 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 서울시를 내가 시장이지만 하나님이 다스려 주실 때에 이 서울이 복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라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해해도 우리는 절대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시장을 위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바라는 솔로몬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는 같이 복을 빌어주고 마땅히 격려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즘 정치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작은 믿음은 우리로 천국으로 인도하지만 큰 믿음은 천국의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는 살기 힘들지만 우리의 삶의 주인, 모든 것을 하시는 이는 하나님 이신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에게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겠습니까? 어느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해도 안 믿더니, 자기 집에 세든 새색시를 보고 예수님 믿기로 결정했답니다. 새색시의 어디가 이뻐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저 새색시는 항상 싱글벙글 하는데 좋은 일 있으면 감사하다고 싱글벙글,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위복으로 좋은 일 있을 줄 믿습니다 하며 감사하고,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가정생활, 부부생활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봐서는 저 집이 분명 깨질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 깨지지 않고 잘 살아가는 비밀이 무엇이냐? 그 믿음 때문일 것이다.

오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988년 미국대통령 선거가 진행될 때에 중요한 이슈는 사형제도 폐지였습니다.
민주당 후보 듀카키스는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사형제도 폐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듀카키스가 CNN 토크쇼에 초청받아 인터뷰를 하는데 앵커가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된다고 하셨죠? 그런데 만약 당신 부인이 괴한에게 끌려가서 성폭행 당한후 살해당했다고 합시다. 범인이 잡혔는데 그 때도 당신은 여전히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시겠습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때 듀카키스는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었습니다. 결국 토크쇼 때문에 패배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남의 이야기는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할 때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감사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설교하기는 쉽습니다. 항상 감사하라고 외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의 말씀이 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오랜 지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고쳐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병은 더 깊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과연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 지고 살아야 할 어린 장애아 자녀를 갖고 씨름하는 그 부모의 입에서 정말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이력서를 수십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 해보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번 해보지 못하는 젊은이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야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비현실적이고 이상론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그냥 적당히 보고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합니다. 비현실적이라고 변명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다른 표시가 감사입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가서 모진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며 거듭되는 흉년 속에서 금식기도를 선포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더 금식하자, 죽을 각오 하고 기도하자. 이에 한 젊은이가 손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금식기도 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자.

금식기도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섭섭한 이야기 하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니까, 감사하십시다. 우리가 유럽에서 올 때에 예수 잘 믿기 위해 왔는데, 이곳에는 믿음의 자유가 있습니다. 거기서는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았지만, 여기에는 정치적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언제 죽어도 우리는 하늘 나라 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하십시다. 금식기도하면서 이들의 얼굴이 무너져 내렸는데, 감사를 하면서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그 땅에서 구출해 내신 하나님 앞으로도 우리를 잘 살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추수감사절을 지내는 미국의 정신 속에는 이 나라를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려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지내는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감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천국의 축복뿐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믿음의 역사를 여러분의 가정이나 삶이나 사업 속에서 나타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유태인 어머니가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지만 자식들은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어떻게 훌륭하게 키웠냐는 질문에 자신은 세마디 밖에 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첫째,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큰 일에든 작은 일에든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둘째, 원망불평하는 사람과 놀지 말아라. 원망불평도 들으면 자꾸 옮기게 되고 끼리끼리 다니면 전염이 된다.
셋째, 감사하는 사람과 놀아라. 감사도 전염이 된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내게 구원을 주신 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구출하실 분은 단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그 하나님께 믿음으로 감사하는 자, 오늘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창우 목사 (한남제일교회)
 (2005-06-21 22:51)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