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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형편에서나 잘 사는 비결 (빌 0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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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편에서나 잘 사는 비결 (빌 4:10-13)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키는데요. 맥추절은 성경에서 초실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칠칠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스럽게 살았어요.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더위에 지치고, 목이 말라도 마실 물이 없어서 고생했고, 때로는 불뱀이 떼로 몰려와서 물려 죽기도 하고, 전갈에 쏘여 죽기도 하고, 워낙 행렬이 길다 보니까, 조금씩 쳐지고 떨어진 사람들을 다른 민족들이 쳐들어와 괴롭히기도 하고, 고생 고생 하다가 약속의 땅,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들이 유목민들이라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농사를 안 짓고 살았잖아요? 가나안에 들어가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농사하여 처음으로 곡식을 거두게 되니 너무 감사한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생각하며 매년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는 절기가 맥추절이에요.

맥주절인지 맥추절인지 그것이 우리와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맥추절에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어요.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말씀을 주신 복된 날이더라! 아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신 날이에요. 성경에 있는 말씀이 있는 그대로 믿어지는 것이 정상입니까? 안 믿어지는 것이 정상입니까? 맨 정신으로는 안 믿어지는 것이 정상이에요. 이성으로는 안 믿어지는 것이 정상이에요. 어떻게 말 한마디로 해가 만들어지고, 달이 만들어지고, 바다와 육지가 생기고, 나무와 새들이 생길 수 있느냐? 창조뿐만 아니에요.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지 혼자 낳았단다! 말이 되는 이야기예요? 죽은 예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대요. 하늘로 올라가서 때가 되매 다시 오셔서 산 사람도 심판하고, 이미 죽은 사람도 깨워서 심판한다는 거예요. 죽은 지 오래되어서 뼈밖에 없는 사람을 어떻게 깨워서 심판을 해요? 이것이 상식으로, 정상적인 머리로 믿어질 일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 것 투성이에요. 안 믿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아멘!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아멘!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아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아멘!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아멘!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아멘! 말로만 아멘하고 고백하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로 마음에 믿어지는 거예요?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믿어지는 사람은 그 속에 이미 성령이 계시는 거예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믿을 수가 없더라!

구원의 문제만이 아니에요. 내 힘으로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넘어집니다. 아무리 다짐하고 이를 악물어도 안 되요. 그런데 성령께서 나를 도우셔서 이기게 하시더라!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더라! 그 성령을 보내주신 날이 오순절이에요. 그 날이 맥추절이라니까요. 복잡한 것 다 놓아두고라도, 맥추절은 지난 반년에 대한 감사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돌이켜 보면 어려움이 없지 않았어요. 고비 고비 힘들었어요. 그러나 주님의 세밀하신 도우심과 은혜 가운데 오늘까지 이르게 된 줄로 믿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우리에게도 이런 감격과 감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문제는 믿음의 눈이 열리는 것이 중요하더라! 열리면 볼 것을 보게 되더라! 안 되고, 얽히고, 고달플 때, 짜증나고 낙심스러울 때라도 믿음의 눈을 열고 보면, 반드시 감사할 조건은 있더라! 아멘! 이 시간도 병원에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병원에 얼마동안만 있어도 속 터져서 못 있어요. 답답하고 괴로운 것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잠시도 어려운데, 평생을 원치 않는 질병 때문에 병마와 싸우며 사는 사람도 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로 평생을 장애를 갖고 고통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오늘 움직일 수 있는 건강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예요. 사고뿐만 아니에요. 왜 그런 병이 생기는지 원인도 모르고, 병명도 모르고, 병명을 안다고 해도 약이 없는 그런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더라는 거예요. 질병뿐만이 아니에요. 가정마다 어려움이 다 있어요. 정도 차이가 있을 뿐, 평생 질병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나보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에요. 사고를 겪는 사람이 나쁜 일 많이 해서 그런 것 아니에요. 같이 합니다. '움직일 수 있는 건강 주심을 감사합니다' '믿음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멘! 사람마다 형편과 처지는 각기 달라요. 그러나 헤아려 보면 나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인사합시다.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꼭 붙들고 계십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힘든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믿음의 눈이 열려져서 볼 것을 보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이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믿음의 생각으로 훈련되어지고, 체질화되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정도 되면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주도에 큰 호텔 하나 가지고 있으면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주도에 큰 호텔하나 가지고 있을 정도이면 우리는 재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의 선박왕으로 불리우던 오나시스는 제주도 같은 섬을 열 개나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고급 자가용 가지고 있으면 그것 가지고 자랑하지마는 외국의 부자들은 호화 요트 갖는 것이 소원입니다. 오나시스는 호화 요트에다가 자가용 제트비행기가 있을 정도였어요. 섬 하나에 세계에서 좋다고 하는 그림들, 보석들 다 갖추어 놓고, 좋은 집 지어놓고, 좋은 돌들을 가져다가 오나시스 한 사람을 위해서 섬을 꾸며 놓을 정도였어요. 오나시스 한 사람을 위해서 수 백 명의 요리사가 동원되고 온갖 부족함이 없는 영광을 다 누렸어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돌아가신 다음에 칠십 다 된 노인이 대통령 미망인인 재클린을 호화 여객선에 데리고 가니 재클린도 정신이 나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둘이 결혼했잖아요? 남의 나라 사람이, 그것도 칠십 다 된 노인이 미국 대통령 부인을 자기 부인으로 삼았다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밖에 없는 재클린의 아들이 24살에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그냥 떨어져 죽습니다. 여기에 충격을 받고 재클린이 미국으로 돌아가 버려요. 그 후 오나시스가 이년만에 죽어요. 세계적으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영광, 세계적인 부유함, 이 모든 것이 마음을 못 지키니까 풍랑에 깨어지는 배처럼 무너져 버리고 말더라는 거예요. 빌딩이고 섬이고 나라고 다 가져도 내 마음 잘못 가지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이런 저런 문제들에 시달리고, 힘들게 살아도 주님 모시고 사는 심령은 복된 심령입니다. 인사합시다. “당신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큰손이 당신을 붙들고 계십니다.” 이 시간 능력의 주님 앞에 마음의 짐도 내려놓고, 마음의 상처와 얼룩들도 예수의 피로 다 씻어 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힘겨운 인생살이 가운데에도, 마음도 평안하고, 육신도 건강하고, 생활에도 주님 주시는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가장 부자입니까?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라도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부유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것에 무엇이든지 만족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녀, 부모, 배우자, 그리고 환경들에 만족하며 산다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비교하는 그 순간, 불행이 시작되는 거예요. 이미 받은 것이 소중한 줄 알고, 이미 주신 것을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같이합니다. “이미 받은 것 소중한 줄 알고 살겠습니다. 이미 주신 것 귀하게 여기고 살겠습니다.” 간절히 구했는데 안 주신 것 있습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알아야 되요. 맥추 감사 주일을 지내면서 자족하는 마음 우리 속에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도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와 준 것도 감사하지만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에 만족하고, 자족함으로 나는 부자처럼 살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무엇을 위해 살다가,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랬기에 주님 때문에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온도계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날씨가 추우면 내려가고 더우면 올라가는… 그러나 온도 조절기는 바깥 날씨가 추우면 온도를 올립니다. 너무 덥다 생각되면 오히려 온도를 내립니다. 환경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지배하며 사는 사람,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 함께 하시면, 성령께서 도와 주시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 1. 나 아무것 없어도 주님이 있고 나 아무것 할 수 없으나 주 하시네 나 무력해도 주는 강하시며 나 모든 것 모르나 주는 다 아시네 나 어두울 때 주 빛 되시고 나 어디가야 좋을지 모를 때 주 나의 길 되시네 나 슬픔에 잠기어 낙심될 때 선하신 주의 팔 날 붙드셨네 2. 나 외로워 지칠 때 주님이 있고 나 외로워 눈물 흘릴 때 주 아셨네 나 세상에 약할 때 주는 강하시며 나 가는 길 알지 못하나 주는 다 아시네 나 방황할 때 주 길 되시고 나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때 주 나와 동행하시며 내 영혼에 찾아와 위로하신 좋으신 내 하나님 사랑합니다

욕심이 앞서면 어리석은 길을 가게 됩니다. 후회할 길을 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는 거예요. 아합왕 보세요. 모든 것 다 지기 것입니다. 그런데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그것 갖고 싶어서 병이 날 정도가 되고, 그것 때문에 애꿎은 사람을 죽입니다. 자신도 안 열리고, 후손도 벌받을 길을 가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의 감옥에 있습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겠지요? 힘겨운 환경 속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물질 많으면 좋고, 마음도 평안하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환경이 좀 불편하더라도 마음 속에는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오직 주님 위해 살다가,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는데, “이것이 내 팔자다” 한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 22절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중 몇이니라” 가이사가 누구입니까? 로마 황제예요. 황실 사람 중에 벌써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 믿게 된 사람이 있었더라! 로마의 변화가 바울이 있는 감옥으로부터 시작되었더라! 아멘! 바울이 들어가니까, 감옥이 선교의 센타가 되었더라! 어떻게 현실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까? 당면한 문제들을, 안 풀리고 안 열리는 우리 가정을 어떻게 축복의 가정으로 바꾸어 나가고, 주님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받는 가정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까? 믿음이면 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겜에 살 때 영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어요. 영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살다보니 육적으로도 대단히 낮은 삶을 살았어요. 가정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스스로 지킬 수 없을 만큼 큰 위기를 맞게 될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너는 벧엘로 올라가라.” 문제 해결의 근본을 가르쳐 주신 거예요. 낮은 곳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거예요.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가정불화가 생깁니까? 정신적으로 가난한 것이 문제예요.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지요? 돈만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해야 환경을 이기고, 악한 역사를 이기고, 더 복된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거예요. 우리 가정에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고,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일도 있고, 나에게 고통을 주는 일도 다 과정이더라! 결국에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가져다 주더라! 아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 신학대학 구약학 교수였던 고 김정준 박사는 젊은 시절 폐결핵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어요. 마산 요양소 침대에 누워서 모든 것 포기하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죽을 때 죽더라도, 오늘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리더라는 거예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결핵 마지막 단계에 이른 환자들의 요양실을 찾아가서 담당 간호사에게 '이제부터 이 방 청소는 내가 맡겠다.' 환자들이 버린 휴지를 줍고, 침구를 정리해 주고,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자기 몸도 겨누기 힘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기 시작하던 때부터 병세가 점점 좋아지더라는 거예요. 요양소를 나와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아름다운 흔적을 많이 남깁니다.

염려하고 걱정하는 그 시간에 몸을 주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크고 거창한 것 찾지 마세요. 이론이 필요가 없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몸 드리고 마음 드리면 주님이 건강도 책임져 주시고, 앞날도 열어 주십니다. 이런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원리는 어떤 것이냐? 미리 필요한 만큼 주셔서 쓰게 하시는 분이 아니더라! 미리 주셔서 그것 가지고 요긴하게, 쓸모있게, 의미있게 쓰도록 하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쓰는 만큼 채워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쓰고 난 빈자리를 채워 주신다는 거예요. 우물물의 이치를 생각하면 축복의 원리가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물물은 쓰는 만큼 채워집니다. 쓰지 않는다고 넘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고여 있는 물은 더러워지고 점점 물이 말라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채우시기를 원하시고,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때로 우리의 그릇이 너무 작기 때문에 작은 믿음으로 큰복을 감당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그릇이 깨끗하지 못하기에, 다른 것들로 차 있어서 주님이 채워 주실 수 없을 때도 있을 거예요. 지난 날 헤아려 보면 많은 것 받았습니다. 없는 것 생각하면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사람에 비하면 내가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감사의 조건이 되더라!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 생각해 보면 일할 수 있는 건강 주신 것도 감사하고, 힘들지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주신 것도 감사하더라는 것이지요. 더더욱 우리에게 복된 말씀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어려운 시대 가운데에도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감당할만한 힘을 주신 것, 생각하면 너무 너무 감사하더라! 아직은 우리를 둘러 싸고있는 환경이 만족할 수 없을지 몰라요. 그러나 축복된 삶을 이미 시작했으니 믿음의 길 걸어가게 하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있는 것 헤아려 보고 감사하면 주님이 나머지 쓸 것도 때를 따라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완석 목사 (여수시민교회)


 (2005-06-2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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