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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는 생활 (살전 0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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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년에 한 번씩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이다. 우리의 삶에서 잃어버린 감사를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일상생활에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잊어버렸다. 감사하다는 말보다는 서로 원망하고 불편하며 비판하고 상처 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살아간다. 그러기에 문명은 더 발달되고 살기는 더 편리해지고 물질적으로는 더 풍요해졌지만 그 내면적인 삶은 더 깡마르고 행복하지는 못하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우리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드는 심금을 울려주는 말씀인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항상 삶을 즐겁게 살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감사하며 사는데 있다.

이 세 가지, 항상 기뻐하는 것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서로 분리된 별개의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은 셋이 아니고 하나이다. 항상 기뻐하는 삶은 항상 감사하는 삶과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삶에서 기쁨이 사라질 때 감사도 메마르게 된다. 우리의 삶 속에 참된 감사가 없으면 기쁨도 있을 수 없다. 이처럼 기쁨과 감사는 행복한 삶의 양면이요 안과 밖이다. 우리 마음 깊숙이 에서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이 용솟음 칠 때 우리는 자연히 우리의 삶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과 감사는 결국 기도하는 삶에서 싹튼다. 우리의 기도만이 폭풍 속에서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기쁨의 유일한 샘터요 감사의 물줄기이다. 우리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가? 아니 역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살아가며, 모든 사건을 기도하는 정성으로 처리하는 사람에게는 손실과 실패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용기가 솟아나는 것이다.

유명한 성경주석가 메튜 헨리는 그가 도적을 만났을 때 이런 간증을 하였다.
첫째, 전에는 도적을 만난 일이 없는데 처음으로 도적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고, 둘째는, 그들이 내 지갑만 훔쳐가고 내 생명을 빼앗아 가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셋째, 그들이 비록 내 물건을 가지고 갔지만 별로 많은 것을 잃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넷째, 내가 도적질을 하지 아니하고 도적을 만난 것을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는 도적을 만난 손실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우리도 좀더 깊이 생각해 보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실패와 손실 속에서도 여러 가지로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스위스의 격언에는 '항상 노래하기를 원하는 사람만이 노래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감사의 노래를 부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보다 더 풍성한 감사의 삶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8세 때 소경이 되었지만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가 된 Fanny Crosby는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노래로 읊었다.
'비록 내가 보지 못하지만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영혼인가! 이 세상에서 나는 만족하기를 배웠노니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축복을 내가 누리는가! 소경이기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고 탄식하는 일을 나는 하지 않노라'고 감사했다.
이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감사의 삶을 터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고백할 수 없는 삶의 간증이다. 사실 그렇다. 눈으로 보기 때문에 갖고 싶어하고 욕심을 부리고 시기질투 하며 범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떠한 환경과 삶의 조건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감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물질적인 감사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축복이라든가 이익을 얻었을 때 기뻐하고 감사한다. 어린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고 고마워한다. 그러나 그 장난감을 빼앗길 때 온 세상을 잃은 듯이 슬퍼한다. 이것은 어른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종류의 감사를 우리는 물질적 감사 또는 경제적 감사라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감사를 항상 물질적인 측면에서 측정해 보는 감사이다.

둘째는 철학적 감사이다.
철학적 감사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그러나 일어나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고 감사했다. 이런 종류의 감사를 철학적 감사 또는 사변적 감사라고 말할 수 있다. 더 큰 손실을 생각하므로 적은 손실에 대해 위로 받으려는 소극적인 감사이다.

셋째는 크리스천의 감사이다.
물론 크리스천의 감사에도 위에서 말한 물질적인 감사와 철학적 감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감사도 포함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보다 더 깊은 곳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한 사죄의 은총과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삶 그 자체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삶이기에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찬송할 수 있었고 굶주림과 매맞음과 역경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자기의 연약함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그는 풍부에서뿐만 아니라 가난과 궁핍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어떻게 그러한 삶이 가능하였는가? 그것은 그가 삶 자체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물질적인 것에 감사의 근거를 두면 범사에 감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의 근거를 영원한 생명이시오 진리이신 그리스도에게 둘 때 우리는 역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실패와 손실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박희민 목사
 (2005-06-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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