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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 (요삼 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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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미신이 다른점이 있습니다. 무당을 찾아가는 사람은 그가 시킨대로 굿판도 준비하고 부적도 사서 붙이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와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즉,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환경이나 남이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말씀앞에서 내가 변하는 일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얼마나 잘못되어 버렸느냐 하면 '자기변화'라는 이 본질적 힘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기독교인 퍼센테이지가 25%라 할때에 교도소수용자의 25%가 또한 기독교인이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중 50%가 교도소들어와서 믿은자인지 모르지만) 말씀안에서 변화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변화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변질되어져가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가지 변질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는 복음의 순수성 즉 진리의 변질입니다. 또하나는 삶의 변질입니다. 이것은 말씀따라 변화하기를 거부한 삶의 결과입니다. 어느누구도 자신이 변질되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것은 순수성이 깨지면 다 변질된다는 점입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지도적 역량과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변질은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심각성은 목회자와 장로님 등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은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좋은 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지나치게 많은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비단 우리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초대교회안에도 있었던 문제입니다. 본문안에는 당시 교회 안에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두 사람의 평신도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들은 어감상 이름도 비슷해 보이는 두사람인데 디오드레베, 데메드리오 입니다.

1. 디오드레베
먼저 나오는 인물이 디오드레베입니다. 그의 문제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점이었습니다. 으뜸이 되는 것은 영광이고 소망일 수 있겠지만 드뜸되는 것을 좋아하는것은 지도자에게 결코 좋은 덕목은 아닙니다. '으뜸된다'는 말의 헬라어 원문인 '필로 프로튜요'라는 말은 '사랑하는' 이라는 말과 '첫째가 되다'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어떤 모임에서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자는 누구보다도 그 모임이나 공동체를 사랑하는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하여 꼭 첫째가 되어야만 한다는 고집과 욕심은 나쁜 성품인 것입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나 그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은 방관자적 입장의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도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 공동체를 남달리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싸웁니다. 국가에서도 정치하는 사람들중에 이름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하나같이 나라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데 우리를 실망케하고 신물나게 하는 것은 서로 으뜸이 되겠다고 하는 욕심입니다. 자신이 으뜸이 되고 싶으니까 남이 좀 잘하면 그 꼴을 보지 못하고 헐뜯고 비난하게 일수입니다. 그러니까 정치판은 언제까지나 더러울 수 밖에 없고 싸움질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나 이런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가 지도자적 위치에 오르기 이전에 아마 그에게는 충성심과 교회에 대한 사랑함이 교인들 눈에 보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적 반열에 오른 이후에는 으뜸되고자 하는 악한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으뜸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권위에 대한 욕심입니다. 권위란 자연스러운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야 공동체를 아름답게 합니다. 그런데 욕심에 의한 권위는 항상 더 큰것을 바라고 가지고 있을때에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좋지 못한 행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디오드레베는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으면서 잘못된 행동을 하였습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인 전도자들을 접대하고 후원하는 일을 원칙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그 당시의 권위적 위치였던 사도들이 보낸 전도자들을 접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악한 말로 그들을 비난하였고 폄론하였습니다. 거짓말로 모함을 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친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접대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접대하려하는 자들에게 힘을 행사하여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떤 교회의 장로님은 그 교회에서 헌금을 가장 많이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많이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작지 않은 교회에서 전체 헌금액수의 20-30%를 감당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당회에서 거의 자기 주장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잘 아시는 어떤 분이 개인적인 도움을 필요로해서 의사 결정에 작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님은 이해를 구하면서 이런말을 하더랍니다. '제가 교회에서 헌금을 좀 하쟎습니까 장로는 헌금을 많이 하든지 말을 많이 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하여야 합니다' 얼마나 멋진 분이십니까!

우리 민족은 으뜸되고자 하는 뜨거운 피가 특별히 흐르는 민족입니다.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민족입니다. 남 잘되는 꼴을 못보고 잘되면 잘되었다 자랑하고, 못되면 열등감으로 잠못자고, 더 못난사람은 남의 집 호박에 말뚝박는 식의 못된 행동을 일삼습니다.

2. 데메드리오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은 가이오 장로에게 요한사도가 특별히 천거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으뜸되기를 좋아했던 데메드리오와는 달리 모든 자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칭찬이란 삶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재능을 통해서 얻는 칭찬이 있겠고 남다른 삶을 통해서 얻는 칭찬이 있겠습니다만 진정한 칭찬은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차별된 삶으로 인한 칭찬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귀하게 보는 자는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 칭찬받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은 인격을 만듭니다. 칭찬받는 자녀로 키우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기는 칭찬 받을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스스로 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큰 아기의 이름을 지을때 이것을 소망으로 담았습니다. 칭찬을 듣는자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생각에서 '찬영'이라 했습니다. 세 아이들의 이름을 다 '칭찬할 찬(讚)'자로 돌림자를 삼았습니다. 무엇이 되고 안되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앞에 칭찬듣는 자만되면 그는 어떤 역할이든 세상에 필요한 자로 존재할 것입니다.

요한사도는 데메드리오를 천거함에 있어서 세가지의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그 첫째가 사람들앞에 인정받는 점이었습니다. 이점은 그의 인격에 대한 칭찬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앞에 인정받을리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재능이나 실력으로 인정받으십시오. 그러나 교회에서만은 인격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됨은 역시 인격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의 탁월한 실력이나 재능때문에 감동하고 그리스도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밖에 못하나' 하고 뒤에서는 열받습니다. 인격에서 먼저 인정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인정받는 것은 영성입니다. '영성'이란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삶의 잣대인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흠이 발견되지 않은 삶이 영성있는 삶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자연히 기도하는 삶이 따르게 됩니다. 제힘으로 말씀따라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셋째로 인정받은 것은 지도력과 실력입니다. 초대교회 최대의 권위적 위치에 있는 사도들이 데메드리오를 인정했습니다. 사도들이 인정하는 평신도 지도자감이라면 당연히 그에겐 지도력과 실력이 인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자기들의 인정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앞에 인정받고 진리의 말씀앞에서 인정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교회의 분위기는 인격이나 영성보다 조직이나 지도력을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 목회자들의 생각들도 강력한 리더쉽의 필요를 인정하며 그쪽으로 치우치려 하고 있습니다. 자연적 교회성장 프로그램인 NCD(Natural Church Development)에서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그 프로그램으로 진단한 결과 100점 만점으로 65점 이상을 건강한 교회로 분류했을때 35점 이하를 받은 교회가 63.8%를 차지했고 건강한 교회는 5.5%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48379;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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