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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전쟁에서 받은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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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25일이 가까워지면 그 전쟁의 와중 속에서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과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인민군이 서울까지 들어왔지만 빨리 피난을 못하고 남아있던 나는 그들의 가택수사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다. 19세 한창 나이에 대학생이란 나의 신분은 그들에게 더할 수 없는 징집대상자였다.

나는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과 낮에는 자고 밤에는 걸으며 북으로 끌려갔다. 유엔군의 폭격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아득한 절망감만이 엄습했다. 나는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았으나 워낙 감시가 심해 불가능했다.

인간은 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신을 찾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당신이 계신다면 저를 이곳에서 건져주소서. 인민군의 손길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곳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저는 평생을 하나님사업에 참여하며 살겠습니다.'

일행이 임진강을 건너자 경비가 약간 느슨해진 것 같았다. 문산의 장단이란 곳까지 왔을 때 초등학교를 빌려 낮잠을 잔 뒤 밤에 출발하기로 했다. 꿈속에서 흰옷을 입은 나이든 분이 나타나 나를 깨웠다.

'지금 빨리 일어나 이곳에서 도망가라.'

그분의 힘찬 음성에 놀라 잠이 깼다. 모두들 자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탈출에 대한 용기와 담력이 생겼다.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울타리를 넘어 반대쪽으로 힘껏 내달렸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따라서 나의 인생목표는 궤도수정 되어야 한다. 외교관이 되어 세계만방을 누비리라는 원래의 포부대신 봉사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세계적인 봉사선교단체인 선명회 간사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나병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외되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나환자들과 접촉하게 되니 전염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더 나은 직장으로 초빙 받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약속한 서원기도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보람이 있다면 나병환자를 돕고 그들을 선교하자는 취지로 지난 70년 [한국기독교 구라회]를 창립, 21년째 이 모임을 이끌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세우장학회를 창립해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된 것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최근에는 일본 구라회와 협력해 방글라데시나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 나환자 지원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늘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남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 때의 기쁨과 만족은 그것을 받을 때보다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베풀어 또 다시 그것을 나누는 운동이 우리사회에 확산될 수 있도록 기독교인들이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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