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화장실 선교훈련

첨부 1


헐렁한 옷차림에 투박한 면장갑을 끼고 대걸레로 빌딩 바닥을 청소한다는 건 확실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일층부터 사층까지 네 개의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변기통 주변의 오물을 빡빡 닦아낸다든가 손으로 휴지를 집어 쓰레기통에 쳐넣는 일은 멋쟁이 신사복을 차려입고 거리로 나설 때와는 심적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공공건물이라면 유난히 헤접스레 어질러 놓는 우리나라의 국민성에 대해선 뭐 말할 것도 없지만, 당구장이니 화장실이니 수퍼마켓이니 하는 다인성 유인체제의 널찍한 사층건 물은 일 회 청소시간이 두어시간은 걸리는 것이어서 건강한 사내의 팔다리 엉치뼈를 쿡쿡 쑤시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경치 좋은 강변의 연립주택에서 단 석달만에 쫓기다시피 이사온 곳이 바로 이곳, 시내 중심가의 사층짜리 빌딩 옥상이었다. 그러고 보면 웬만한 집은 거의 다 한 번 씩 살아본 셈이었다.
일층엔 슈퍼와 문방구, 옷가게와 식료품점, 이층엔 몰몬교회와 서예실과 당구장, 삼층 엔 장로교회와 화실이 있었고, 사층엔 우리가 전세 사는 돌출부분이었다. 아니 또 지하실의 널찍한 곳에는 공원 삼사십 명을 거느리는 봉제회사 사장이 살고 있었다.
이 건물의 청소를 맡겠다고 나선 것은 순전히 경제적인 사정 때문이었다. 빚을 갚기위 해 생활비의 전부를 떼어내다시피한 우리 형편으로는 때마침 잘 걸려든, 좋은 부수입 자리였다.

추운 십이월, 일월, 이월, 삼월까지 만 사개월을 달고 다녔던 빌딩 청소부라는 이름. 거기에 일월의 열흘 동안은 또 포장마차까지 했던 올 겨울은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로 주고 떠나갔다.
화장실의 더러운 오물을 손으로 집어낸다? 그것도 사층씩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대로변에서 포장마차를 한다? 한 개에 백 원씩 하는 빈대떡을 팔기 위해? 그것은 한 마디로 똑똑한 자존심 내세워 갖고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들이었지만 하여튼 나는 해냈다. 추위에 온몸을 꽁꽁 얼려가면서…

포장마차 해서 떼돈을 벌지는 못했고 화장실 청소 해서 빌딩 사장이 된 건 아니지만 올 겨울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함으로 천한 일을 하는 것이 불평을 갖고 귀한 일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었다. 물론 힘들기는 하지만 내 속의 교만함을 꺾어버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도 한 것. 돈 받지 않고도 오물 청소를 해줄 수 있는 사랑을 익힌다면 그보다 더 큰 배움이 어디 있겠는가. 힐끗힐끗 쳐다보거나 화나는 심부름을 시키거나 깔보는 투로 주위 사람들이 대해올 때도 빙긋이 웃으며 고개 숙일 줄 아는 여유를 맛본 것도 내겐 너무도 귀한 경험이었다. 신문배달이니 가정교사니 주간지 판매니 시험지 필경이나 카드 장사 등 그동안 몇 가지의 경력이 있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적 신분도 가진 처지에서의 이번 일은 어려운 만큼 얻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