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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동행하라 (롬 0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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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
하나님과 관계없는 교회,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교회, 하나님과 말씀과 무관한 성도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선포 되어야 하고 성도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 목사님이 죄에 대하여 몇 주를 계속 설교를 하셨답니다. 어느 주일 낯 예배 후에 장로님 한 분이 찾아오셔서 목사님 요즈음 죄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좀 안하시던지 다른 말로 바꾸면 안되시겠습니까 ? 하면서 제안을 하셨답니다. 그러면 죄를 뭐라고 할까요 ? 뭐 실수라든지 뭐 그런 고상한 말로 사용하시면 안됩니까 ? 그래서 목사님이 독약 이라고 쓰인 독약병을 하나 가져다가 장로님 앞에서 독약 표시를 떼시고, 소화제 라고 쓰셨답니다. 그리고 장로님께 이 약을 교회 상비함에 넣어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장로님이 안된다며 펄쩍 뛰시더랍니다. 아니 그 독약을 소화제로 먹고 아동부 아이들이 죽으면 어떻게 하라고 그런 일을 하십니까 ? 장로님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롬6:23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죄를 고상한 말로 바꿔서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까 ? 죄를 정확하게 죄라하여 죄를 짖지 않도록 해야죠 했더니 장로님이 아무말씀 안하시더랍니다.

죄에 대한 설교가 듣기 싫어도 들으시고 나를 돌아보아 정결케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우리는 다 죄 아래 있다”고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죄와 죄들을 구분 합니다. 죄는 보이지 않는 죄의 세력을 의미 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공중권세 잡은자 마귀, 사단, 악령이라고 했습니다. 죄들은 여러 가지 악한 행위를 의미 합니다.
죄가 죄들을 짖게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인간이 죄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래 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포’라고 합니다. 휘포는 무엇을 아래에 두고 끌고 다니며 꼼짝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죄는 인간을 무서운 힘으로 끌고다니며 죄를 짖도록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7:23에서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결단을 하고도 자주 넘어지는 지 아십니까 ? 아직 죄의 줄을 완전히 끈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는 길은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는 길 밖에 없습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첫째로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뿐 아니라
①12절 ‘무익하게 된다’고했습니다.
여기서 무익하다는 것은 영육 간에 잘못 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②선을 행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선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즉 성도로 살기를 거부 한다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 합니다.
깨닫지도 못한 주제에 깨달았다고 교만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51-52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시대를 영적으로 보면 깨어 있는 사람은 순데반 집사의 부류 즉 사도들과 성령 받은 성도들 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서기관 바리새인은 자기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고, 스데반 집사님은 하나님을 망녕되이 하는 사람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님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돌을 들고 잘난척하는 무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는 자요, 하나님과 무관한 무리 입니다. 구원과는 상관없는 무리 였습니다. 그러므로 죄 아래 있는 자가 자기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열심을 내면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 합니다.

둘째로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열린 무덤입니다.
열린 무덤이란 말의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잘 이해 되는 이야기 입니다. 중동지역의 장례법은 사람을 장례 할 때 동굴을 파서 그 곳에 집안식구를 장례 합니다. 그런데 열린 무덤은 토굴자나 자연적 현상에 의해서 입구의 큰 돌이 굴러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면 송장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혀는 자신과 남을 속이고, 입술은 독사의 독이 가득해서 물리면 죽습니다. 입은 저주와 악독이 있고,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죄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제 맘대로 합니다. 하나님을 업신 여깁니다. 구약 다니엘 5장에 보면 교만한 왕 벨사살 있습니다. 그는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에서 전리 품으로 가져온 서전 기구를 술을 마시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하나님이 두려워 창고에 쌓아 두었는데 벨사살은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의 물건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그 때 손가락이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메네는 왕의 시대는 끝났다. . 데겔은 하나님이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다. 우바르신은 왕의 나라는 둘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하는 자는 끝장납니다, 부족함이 드러나 심판을 받습니다, 분열의 고동을 맛봅니다.

넷째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 합니까 ?
구약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창5:22에 보면 에녹이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 했고, 6:9절에 보면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 이라고 했고, 노아도 믿음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26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우시며, 믿는 자는 의롭다 하심, 즉 칭의의 의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아직 완전한 믿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셔서 완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십니다. 눅9:23에 보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십자가를 지고 (죽을 각오를 하고, 목숨을 드려) 따르는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려서 우리 임마누엘 감리교회 성도들은 죄의 줄을 완전히 끊고 죄와는 상관이 없는 자가 되시어 이 시대에 쓰고자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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