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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죄인 (롬 0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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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공한 목사님의 인기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가서 들어 보았더니, '나는 목회를 처음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있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고 죄인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인들을 보고, 죄인이라는 말을 한번도 쓴적이 없습니다. '

나는 이야기를 듣고 인기의 비결이 바로 이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또하나 느껴지는 것은 잘못된 목회자구나고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인간의 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은 각각 다릅니다. 빈부의 차이가 다르고, 지식의 정도가 다르고, 가정의 환경이 다르고, 얼굴의 모습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권세가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똑 같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죄인이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고, 오직 믿음의 길에만 생명이 있음을 말씀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알고 시인해야 할 바를 계속해서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철저하고, 집요하게 죄에 대해서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죄를 지적하면서 먼저 유대인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공부한 대로 유대인은 정말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일수 밖에 없고, 헬라인은 또 얼마나 훌륭한 민족입니까? 인류의가장찬란하고 뛰어난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고 남겨준 민족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다른민족이나 인종보다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낳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9절에 죄 아래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의 죄라는 단수를 썼습니다. '죄들'이라는 복수를 쓸때에는 우리가 짓는 많은 행동들을 말합니다. 죄의 행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라는 단수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권세. 힘. 세력. 죄의 실체를 말합니다. 에베소에서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잘못되게 하는 죄의 실체가 있습니다. 이것을 마귀, 악령, 사탄이라고 할수 있고,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라는 말은 헬라어의 '휘포'라는 전치사 입니다. 딤전 6:1절 에서는 멍에아래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멍에 아래있는 것은 속박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소를 부리기 위해서 꼼짝 못하도록 코를 뚫어서 고삐를 꿰어놓듯이인간들이 죄에 권세에 꼼짝 못하도록 얽매여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롬 7:23에서는 '죄 아래로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죄에 잡혀서 두손을 묶이우고 등뒤에는 총을 들이대며 두려워 벌벌 떨면서 끌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나와 여러분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지금 그처럼 죄의 권세, 죄의 힘에 지배 당하고 있는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해마다 경찰서가 늘어나고, 곳곳마다 파출소를 짓고, 경찰의 수를 늘리고, 학교를 해마다 증설을 해서 교육을 시킨다고 세상에 죄가 줄어듭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약간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점점더 죄는 많아지고 있습니다. 옛날의 무식하던 사람들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더 죄를 많이짓고, 점점발전해 갑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대항할수 없는 어떤 힘이 지배하고 우리를 강제로 죄의 길로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죄가 우리를 다스리고 있다는사실을 시인하라고 지금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죄의 권세가 내몸을, 내 생각을, 내 인간관계를, 내사 사는 사회구조를, 지배하고 강한 힘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내가 옳다, 내가 의롭다고 주장을 해 보아도 마귀를 기쁘게 하며, 그의 권세를 높이는 것 밖에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를 떠나서는 의가 없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의를 생각할수없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피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18)

여기에 쓰여진 것이 아마도 사람들을 가리켜서 기록된 욕 중에서도 가장 심한 욕일 것입니다. 이 말들이 누구를 향해서 한 말입니까? 나를 향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놀라고, 분해하고,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읽으면서도 사람들이 별로 느낌이 없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씌여진 말이다. 혹은 사람들 모두에게 씌여진 것이니까? 하는 생각 때문인것 같습니다. 군중심리는 혼자서는 못하는 것도, 여럿이 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똑같이 먹는 욕은 혼자서 당하는 것보다 쉽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면 하나님의 구원과 멀어진 사람일 것입니다.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책망과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욕'으로 받아 들이고 수치스럽게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12절에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되었다. 는 말은 어느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갈데까지 가서 더 이상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새를 주로 잡아 먹는 뱀이 있다고 합니다. 뱀이 어떻게 날아 다니는 새를 잡겠느냐는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뱀이 나무에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한 마리가 무심코날아옵니다. 그 때 새가 이 뱀을 보지 않으면 상관이 없지만, 안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어떻게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새는 그 눈빛에 이끌려서 죽는 줄 알면서도 뱀에게로 닥아와서 잡혀먹힌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죄에 한번 얽매이고, 지배 당하기 시작하면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릴 수 없고, 생각을 바꿀수 없을 정도로 매혹 당하고, 완전히 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죄의 종된 사람들은 무익하고 쓸모없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죄에는 짓는죄, 계속하는죄, 변명하는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잘 인정하려 들지 않을까요?

1. 죄를 상대적으로 생각학 때문입니다.
저 사람 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보다는 낫다고 우겨도 하나님 앞에는 설수 없습니다. 누구하고 비교하지마십시요. '세상사람들이이다 죄인인데'하는 말이 하나님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2.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것도 안됩니다.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는 언제까지나 죄입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도 내가 주관이 되어서 판단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3. 공리주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죄는 10개를 지었고, 의로운 일은 20개를 했다면 죄값을 치루고도10개의 의가 남아있으니까 나는 의인이다. 그렇습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생각과는 상관이 없는 인간의 간사한 계산일 뿐입니다. 많은 세상의 종교들은 고행과 선행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주장에 머물러 있다면 큰일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한평생 일했다 하더라도 한번 역적질을 하면 그는 사형을 당합니다. 죄 값은 인간의 의를 가지고 갚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서는 죄에 대해서 더 깊이 말하고 있는데
1. 그 성품이 무식합니다.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죄를 짓는 자마다 점점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그래서 18절에는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다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형제를 미워하고, 부모를 학대하고, 다투고 불평합니다.

2. 깨닫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고 없고)
양심이 마비되어 죄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가르쳐 주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교만해서 자기의 고집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의 앞에는 고통과 저주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3. 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3-14)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 속에 썩은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을 열기만 하면 못된 말이 나오고, 한숨만 나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그의 신앙이 어떤가를 알려면 조금만 이야기해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그의 생각이 말을 통해서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존 헨리 조엣이라는 신학자는 죄의 세력 밑에서 인간이 어떻게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는가를 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죄는 파괴적인 존재이다. 모든 선한 힘은 죄의 파괴적인 힘에 의해 위축되고 시들어 버린다. 모든 영적인 섬세함은 죄의 저주스러운 접촉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죄는 시각을 손상시켜 맹목적으로 일하게 만든다. 죄는 청각을 마비시켜 사람들을 귀먹어리로 만든다. 죄는 미각을 왜곡시켜 단것은 쓴것으로, 쓴것은 단것으로 혼동 시킨다. 죄는 촉각을 마비시켜 사람으로 과거의 느낌 만을 같게 만든다. 죄는 영적인 모든 좋은 감각을 막아 버리고 질식시킨다. 우리는 죄에 의해서 무감각해지고 둔감해지며, 우리가 반응하는 범위는 축소되어 버린다.

죄는 무감각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영혼을 짖 밟아 버림으로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처럼 잔혹한 죄의 발 밑에 짖밟히는 인간이 얼마나 처절하고 악합니까? 이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용서 받는 것입니다. 내가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어야 할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내가 저주를 받아야 할 죄인이기 때문에 그가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없는 비참함을 생각하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사죄의 은총을 다시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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