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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 열린 구원의 길 (롬 03: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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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로마서 강해를 통해서 예수님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절망이란? 단지 우리가 죄인이라는 상태만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그 죄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데서 그 절망은 더 커지고,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데서 그 절망은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같은 우리 인생의 절망을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꼴좋다! 이제 혼 좀 나봐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실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살펴보면 볼수록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이 풍성하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알려준 것처럼 겔18:23절에서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겠느냐”고 반문하시며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 구원을 놓고 하나님 편에서 고민이 생기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민을 하신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말 이지만,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 두자니 너무 불쌍하고 구원하자니 길이 없고. . . 그러니까 고민을 하시는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특별히 마음을 쓰셨다고 생각합니다.

1.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해도 구원받는 길을 마련하신 하나님.
우선 먼저 사람을 구원할수 있는 다른 길이 없을까? 하는 문제에 마음을 쓰셨다고 보여집니다. 지금까지는 구원을 위해 어떤 길을 주셨습니까? 율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선을 행하면 구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을 통해서 하나님이 얻은 결론이 사람은 율법을 도무지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선을 행하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19-2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자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의롭다 하심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려고 주어진 율법이 거꾸로 우리를 더 큰 죄인으로 만들어 하나님 앞에 변명조차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소망을 빼앗아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두 말 못하고 끌려가도록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은, 율법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죄의식을 더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알고 그것을 지켜 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안되더라는 것이지요. 다시말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이 참으로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폐기하거나 무시할수 있느냐 하면 절대 그럴 수는 또 없습니다. 왜냐면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하며 그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거룩하신가 그가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가령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율법을 예로 들어봅시다. 거짓말이 왜 죄가 됩니까? 하나님이 율법에서 거짓말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죄가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물론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볼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자신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이므로 거짓말하는 것이 죄가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을 할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 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을 공격하는 것이므로 나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은 거룩하며 폐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자랑할 만한 명소 중에 가나안 농군학교가 있습니다. 한번 다녀온 분은 다시 가보기를 원하고, 또 자녀를 사람답게 키우려면 한번쯤 보내야 하는 코스로 알려겨 있는 곳입니다. 그 농군학교를 창설하신 분은 김용기 장로님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죄가 게으름이라고 생각했던 분입니다. 게으름을 죄 중의 죄로 여겼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일평생 &54849;과 씨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기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강한 교육을 시켰습니다. 얼마나 게으름을 싫어했는지 자기 집 주변에 있는 돌도 누워있는 것을 전부 세워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만물 어느 것도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다 김장로처럼 게으름을 중한 죄로 여기는 것은 아니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자녀가 게으름을 부려도 묵인해 줄 때가있습니다. 하기만 이것은 김장로 앞에서는 용납이 되기 않는 일입니다. 게으름을 죄악으로 여기는사람 앞에서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은 그를 대항하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거역하는 행동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율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거룩을 포기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은 그대로 살려 놓고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다른 길이 없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셨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해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찾으신 것입니다.

2. 죄인된 우리를 의인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길을 모색하신 하나님.
그 다음으로 또 하나님이 고민스러워 하신것이 있다면, 그것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 인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한 방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타락해서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려면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받아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 본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는 죄를 미워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그 죄값대로 심판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 보이려면 마땅히 죄는 죄대로 벌하고 의는 의대로 보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의인으로 받으면 자기의 의로움에 손상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인으로 받으시려면 자기의 거룩하심이 훼손되지 않는 조건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죄인을 의인이라고 해도 자기는 여전히 의롭고 거룩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 사실을 공정하게 증명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분이 아닌 것입니다.

25-26절을 한번 봅시다. “이는 하나님이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우리 죄를 고의로 못본 체하고 넘겨도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구원의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도 증명하고 죄인인 우리도 의로운 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고 고심한 하나님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분의 입장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므로 우리를 쉽게 구원할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은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다 동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혼히 경험하는 일입니다만 자식이 무슨 나쁜 짓을 하였을 때,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고 용납한다는 것이 거룩하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하물며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을 무조건 용서하시고 의인으로 받으신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신 하나님.
그러나 드디어 하나님은 두 가지 난제에 저촉받지 않는 새로운 구원의 길을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쉽게 구원받을 수 있고 동시에 하나님은 자기 거룩에 전혀 손상이 가지 아니하는 길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입니다. 이 구원의 길이 21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 말씀 중에서 '이제는'이라는 단어가 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전환점의 역할을 합니다. 이전에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길만이 열려 있었는데, 이제는 새 길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옛날에는 의를 행하여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때만 구원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하므로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한 의'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어 놓으신 의의 길입니다. 이것은 '율법 외에' 나타난 길입니다. '율법 외에' 이 말은 율법을 폐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과 관계없이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찾거나 생각해낸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참으로 복된 길입니다. 드디어 이 길이 나타났습니다. 구약의 시대가 종결되고 신약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옛 언약은 폐하고 새 언약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시대가 된것입니다. 행하면 구원받는 율법시대에서, 믿기만하면 구원받는 복음의 시대로 넘어온 것입니다.

예수믿고 구왼받는 이 길은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모호하게 알고있었습니다. 많은 선지자들과 주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이 길을 열어 주실 것을믿고 기다렸지만 안개 속을 더듬는 것처럼 모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고 기다렸습니다. 놀라운 믿음을가지고기다렸습니다. 무엇으로 알수 있습니까? 로마서 4장을 보십시오. 구약시대의 인물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상적인 표본으로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살리라”(롬1:17)고 하는 유명한 로마 서의 주제 역시 구약의 하박국2장4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길은 막연히 혹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고 율법과 선지자들이 오랫동안 증거하였던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것”이었습니다(21절).

이제 우리를 위해 열어놓으신 새로운 구원의 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22절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차별없이 하나님에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얼마나 지키느냐 하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믿음 하나로 하나님에게 의인으로 인정을 받을수 있는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막힌 복음입니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신 파격적인 처분이라 하지 않을수없습니다.

23절은 지금까지 우리가살펴본 1:17절부터 3:18절까지의 내용을 결론적으로 요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증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지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광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이것은 동사가 과거형입니다. 다시말해 아담의 범죄를 가리킨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가 죄를 지을 때 인간은 모두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원죄로인하여 그후에 뒤따르게 된 모든 죄까지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르지 못하더니'는현재동사이기 때문에 아담이 범죄한 죄값이 지금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 조상이 범죄한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은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그것 때문에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유명인사와 환담을 나누게 되면 매우자랑스러워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창조자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수 있었으니 그 영광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또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를 경배하고 영화릅게 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찬송과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제사장의 영광을 안겨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통치권을 부분적으로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러나 아담과 함께 우리 모두가 죄를 범하자 마자 이 영광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 깡그리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형편없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을 빼앗긴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경배하지도 아니하는 악한 동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뿐만아니라온 우주만물을 통치할수 있는 통치권자로서의 위신도 깍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락원으로 바뀌었습니다. 맹수들의 위협과 천재지변의 공포와죽음과 질병 등이 주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운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모두는 우리의 죄 때문에 빚어진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비참한 운명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상실한 영광 이상의 것을 회복해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정말 귀가 막힌 방법을 쓰셨습니다. 그 내용이 25절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제물로 삼으시고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자기와 화목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피'는 십자가에서 못박혀 희생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자기의 거룩함과 공의를 손상시키지 않고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받으실 근거를 마련하시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전에 지은 모든 죄를 못본체 하셔도 의로우신 자기의 입장이 조금도 다치지 않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기는 놀라운 하나님 지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말로 다할 수 없이 큰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은혜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3가지.
첫째로,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우리를 구속하신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24절을 잠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구속이라는 말은 노예시장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권리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우리는 이미 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 죄값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치루어야 할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십자기에서 죽으셨삽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 은혜가들어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화목제물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는 제사를 말합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 무서운 진노를 거두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6:5-7)“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노아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악했던지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아 가족은 홍수가 끝난 다음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시고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다음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8:20-21)“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짐승 제물을 드리는 제사였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노가 풀렸던 것입니다. 제사가 이만큼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기 죄없는 몸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짐승 제물도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려뜨릴 수 있었다면 죄없 는 하나님의 아들을 제물로 드린 제사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아무리 뜨거운 풀무불처럼 타올랐다할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기를 보시고 그 노를 거두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없는 자기 아들의 죽음이 너무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우리를 향해 두팔을 활짝 벌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번째로, 예수님의 죽음에는 우리의 의가 되신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26절을보면 “또한 예수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두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는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율법을 범해서 받아야할 모든 형벌을 십자기에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는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자신으로는 율법을 지킬 의무가 전혀 없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다 충족 시키신 다음 자기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을 입은 것과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를 우리의 의로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의 때문에 의인이 아닌 우리가 의인으로 취급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법정에서 볼수 있는 판사의 판결과 흡사합니다. 판사가 “무죄를 선고합니다”하면 피고에게 비록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할지라도 혐의가 없는 자로 인정되어 풀려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의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은혜입니까?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기는 우리가 용서받는 길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가 가능하도록 만든 하나님의 지혜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구원얻는 길도 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게 한 길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 진리를 알면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33절을 펴고 한 목소리로 읽읍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죽어서 가야할곳은 뻔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까 가는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옥에 간다고 상상해 보세오 얼마나 소름이 끼칩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에게 잃어버린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영생을 소유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큰은혜입니까? 앞을 보아도 은혜요, 뒤를 보아도 은혜요, 좌로 보아도 은혜요, 우로 보아도 은혜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하나님은 이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 할 수록 감격과 감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은혜를 남은 생애를 두고 증거하며 살아가는 복음이 이 놀라운 소식의 증인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이 복된 복음을 널리 증거하는데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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