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변화 (엡 02:1-10)

첨부 1


매주 에베소서를 강해할 때 성경본문을 잘 읽으시면서 줄을 긋고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고 대하시면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1장의 마지막 19절과 20절에 ‘힘, 강력, 능력, 크심, 역사’라는 다섯 가지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2장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켰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장을 읽으면서 두 가지 단어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때에(2절)”라는 단어와, “이제(13)”라는 단어입니다. “그 때에”는 3절과 12절에도 나오고, “이제는”이라는 단어는 19절에도 “그러므로 이제부터”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그 때’는 구원받지 못했던 때를 말하며, ‘이제’는 구원받고 난 다음의 모습을 말합니다. 바울서신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그리스도 안’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그 때의 모습
바울이 2절에서 말하는 ‘그 때’는 구원 받기 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의 모습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그때는 우리가 ‘죽었던 자’라고 말합니다. 무엇으로 죽었습니까? 죄와 허물로(1절)죽었던 자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도 아니고, ‘죽을 자’도 아니고 ‘죽었던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은 ‘죽었던 자’입니다. 만일 구원받지 못했다면 아직도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둘째로, ‘불순종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에 불순종의 자녀이며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 이유는 2절에 “세상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기”때문입니다. 셋째로, ‘진노의 자녀(3절)’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았고,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다니고 있어도, 아직도 세상풍습을 좇는 사람은 ‘죽은 자’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르면 ‘불순종의 자녀’입니다. 또,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면 ‘진노의 자녀’입니다. 교회를 아무리 열심히 다니고, 직분을 받아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혹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도 욕심을 따라 살면 진노의 자녀입니다.

2. 이제의 모습
바울은 이제의 모습을 ‘그리스도와 함께 된 자’라고 했습니다. 5-6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제의 모습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① 살리셨고(5절) ② 일으키시고(6절) ③ 앉히심(6절)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3단계라고 합니다. 여기서 살리셨고(5절)는 ‘칭의(justification)’에 해당되고, 일으키시고(6절)는 ‘성화(sanctification)’이고, 앉히심(6절)은 ‘영화’의 단계(glorification)에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은 길리기아 다소라는 교육도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당시에 아덴과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다소는 3대 학문의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하여 학문이 깊은 사람이었기에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에베소서를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구원의 3단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칭의’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성화’의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다가 세 번째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주님의 우편에 영화로운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을 ‘영화’의 단계라고 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교회에 상(喪)을 당한 두 가정이 있는데 돌아가신 그 분들은 지금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는 영화로운 곳에 들어가셨습니다.
과거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이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 근거는 4절에 ‘긍휼’때문이고, 또 4절에 ‘그 큰 사랑’때문입니다. ‘긍휼’이란, 헬라어의 단어는 ‘어머니의 자궁’이란 뜻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그 긍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그 큰 사랑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살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7절에 ‘이는’이라고 했는데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일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값을 치르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3. 구원을 주신 이유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유는 10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걸작품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수공품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흙으로 작품을 만들어도 그 밑에 “로댕” 혹은 “미켈란젤로”라고 작가의 이름을 붙여 놓으면 사람들은 다시 쳐다 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 놓으시고 ‘작가:하나님’이라고 이름 붙여 주신 사람들입니다. 로댕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걸작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걸작품으로 만드신 이유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일, 곧 주의 일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선한 일입니다.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헌신하는 일도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대로 선한 일을 위하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는 수공품이란 것입니다. 기계로 다량 생산된 제품이 아니고 손으로 하나씩 만든 수공품이란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저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혼합 커피를 이야기하면서 각각의 커피에 1에서 10까지 번호가 있는데 숫자가 적을수록 설탕이 적게 들어간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부목사님 한분이 제조공장으로 직접 전화를 해보니 그것은 1번부터 10번까지 제조기계라인 번호라는 것입니다. 기계로 다량의 똑같은 물건들을 만들어 내다가 불량품이 나오면 그 라인만 다시 고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동화 기계로 대량생산하시지 않고 하나씩 수공품으로 만드셨기에 귀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귀한 분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을 만들었다면 똑같아서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모두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귀한 존재입니다.

4. 그러므로 생각하라
11절에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은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했던 그 때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에 달라진 내 모습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 때’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1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 때는 ①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②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③ 외인이었습니다. ④ 세상에서 소망이 없던 자였습니다. ⑤ 하나님이 없던 자였습니다.
제 선친께서는 젊은 시절 영화배우를 꿈꾸셨습니다. 그 당시는 무성영화시대였는데 가장 친한 황성주목사님과 영화구경을 다녀오시면 밤새도록 변사 흉내를 내며 연습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제 선친의 끼를 물려받아 제 자식들도 끼가 있어 하나는 교회음악을 전공하고, 하나는 기독교 뮤지컬 가수를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구원받지 못했다면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가 되어 세상 풍속들을 좇을텐데 구원받아서 목사가 되고 주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이제’는 새롭게 달라졌습니다. 15절에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피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이방인과 유대인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14절)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① 폐하시고(15절) ② 화목하게 하시고(16절) ③ 소멸하심(16절)으로 가능해 졌습니다.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① 외인도 아닙니다. ② 손님도 아닙니다. ③ 성도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고 교회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새롭게 변화 받아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