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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 (엡 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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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어두움에서 살았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된 뒤에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세 가지를 권면합니다.

1.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1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된다는 것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것들은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② 누추함과 어리석을 말과 희롱하는 말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런 것에서부터 돌이키라고 했습니다. ③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5절을 보면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입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들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을 본받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전(Before)과 이제(Now)

에베소서를 읽을 때에는 “전”과 “이제”를 비교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8절에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어두움 가운데서 살았고 죄 속에서 살았기에 어두움 그 자체였습니다. 전에는 어두움이었고, 어두움 속에서 잠자는 자였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모든 일들을 은밀히 행합니다. 밤에 일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은 도적입니다. 도적은 남의 집 담을 넘을 때도 가만히 넘고, 남의 집에 들어갈 때에도 가만히 창으로 들어갑니다. 또 어두움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책망 받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은 빛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① 착함과 ② 의로움과 ③ 진실함이라고 했습니다.
세계 각국 나라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에 질문이 다릅니다. 미국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이 물건이 얼마나 실용적입니까?”하고 질문을 합니다. 미국은 실용주의(Pragmatism)가 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실용적이어야만 물건을 삽니다. 독일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에 “이 물건이 얼마나 튼튼합니까?”하고 질문합니다. 튼튼하면 사고 튼튼하지 않으면 사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만든 물건들은 정말 튼튼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이 물건이 요즈음 유행하는 물건입니까?”하고 질문을 합니다. 유행에 민감한 프랑스는 개선문에서 시작하는 샹제리제 거리 그 자체가 패션의 거리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에 “이 물건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하고 물어봅니다. 하도 가짜가 판을 치고 가짜가 많은지라 참기름을 살 때에도 “순 진짜 참기름”을 찾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가 25%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를 변화 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닷물은 소금이 7%밖에 안 되지만 바다로 들어온 모든 것을 정화 시키는데, 우리나라가 1천 2백 만명의 성도를 가졌다고 자랑하지만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믿는 성도들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으로 소금으로 사명을 다합시다.
라인홀드 니버라는 신학자는 “빛의 자녀와 어두움의 자녀”라는 글을 썼습니다. 빛의 자녀는 어두움을 싫어합니다. 어두움의 자녀들은 빛을 싫어합니다. 세상은 마귀의 자녀이기에 어두움을 좋아합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빛 되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거부하여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5절에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어두움 속에 살아가는 벌레들이 있습니다. 제가 경기도에서 목회할 때 사택을 세 번 이사했습니다. 첫 번째 사택은 교회 마당 안에 있는 흙으로 지은 사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주차장을 확장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후에 세 번째로 교회 옆에 주택이 나와서 대지를 확장하느라고 그 집을 샀습니다. 2층으로 된 집인데 집이 꽤 넓었고 앞에는 마당이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보도블록이 있었는데 너무 시멘트 일색이라 마당에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 잔디를 심었습니다. 잔디를 심기 위해 보도블록을 들추자 각종 더러운 벌레들의 대 탈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벌레들은 어두움을 좋아해서 어두움 속에서 사는 벌레들이었는데 숨을 곳을 찾아 어두움 속으로 도망하느라고 바빴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어두움을 좋아하는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두움을 찾아 숨을 곳을 찾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두움이 아니라 빛입니다. 빛 가운데 살아갑시다.

3. 빛을 비추는 자

우리는 어두움을 찾아다니는 자가 아니라 빛을 비추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5-16절에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은 곡식을 될 때에 쓰는 말(10말= 한가마)를 말합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면 그 빛을 멀리 비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등경 위에 두는 자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행실이 드러납니다.
성경은 정녕히 알라고 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는 자의 마지막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라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앎의 중요성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① 음행 하는 자는 음란한 자입니다. ② 더러운 자는 순수성이 없는 사람이며 계산적인 사람입니다. ③ 탐하는 자는 부자 되고자 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6절에는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헛된 말이란 공허한 말로 내용과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말을 말합니다. 성경은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11-13절에는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했습니다.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의 특징은 ① 은밀히 행합니다. ②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을 합니다. ③ 그들은 모든 것이 책망을 받을 것들뿐입니다.

4. 회심(conversion)

오늘의 말씀 결론은 회심입니다. 회심이란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에 “Conversion”이란 말에 해당됩니다. 회심은 죽은 자가 깨어나는 것입니다. 14절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회심의 세 가지를 말합니다. 회심의 첫 단계는 잠자는 자가 깨어서 눈을 뜨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주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단계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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