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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행 13: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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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행 13:47-48)

이제 우리 한국교회도 해외선교를 시작한 지가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하신 선교사님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여러 선교사님들로부터 선교지 소식이나 사역에 대해 여러 차례 귀한 말씀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으로 선교지에 갔다가 첫 번째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병아리 선교사이기 때문에 크게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초년병이 선교지에 가서 일을 하면 얼마나 했겠어요? 언어 배우다 보면 세월 지나고 낯선 땅에 좀 적응하느라 바쁘다 보니 또 세월이 흘러 이렇게 임기를 마치고 안식년이라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지 그 동안 초임선교사로서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 몇 가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우선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나라입니다. 바로 인도양에 접해 있는 나라인데요, 국토 면적은 우리 남한의 9배가 넘고 인구는 약 3천만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20달러, 평균수명은 45세쯤 됩니다. 그러니까 참 어렵게 사는 나라이지요. 이 사람들의 주식은 우갈리라고 하는 음식인데, 옥수수 가루로 떡처럼 만든 것을 손으로 떼어 주물러서 먹습니다. 기후는 바로 적도 아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1년 내내 더운 여름이지요. 내륙으로 들어가면 지대가 높아서 선선한 곳도 있지만, 해안 지역은 습도까지 높아 생활하기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저희는 하루에도 서너번 씩 샤워를 하고 살았거든요.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짓는데 관개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에 비가 오는 우기철에 딱 한번 농사를 짓고 맙니다. 거기는 1년 내내 여름이기 때문에 1년 내내 경작을 할 수가 있는데 물이 없어서 비올 때 딱 한번 농사를 짓고 마는 거예요.

탄자니아에 물이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탄자니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세 개의 호수를 끼고 있거든요. 북서쪽에는 빅토리아 호수가 있지요, 서쪽으로는 탕가니카 호수가 있고, 남서쪽에는 말라위 호수에 접해 있습니다. 이런 호수는 말이 호수지요 거대한 내륙의 바다예요. 어떤 탐험가는 아프리카 동쪽 해안으로부터 내륙으로 탐험을 해 나가다가 빅토리아 호수를 보고는 대서양에 도달한 줄 알았다고 합니다. 또 탄자니아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킬리만자로 산이 있습니다. 이 킬리만자로는 만년설봉입니다. 그 더운 아프리카에서 1년 내내 눈을 볼 수 있는 산이죠.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이 많아서 관광객들을 많이 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에서 보는 동물의 왕국 같은 필름은 대부분 이웃나라 케냐에서 찍은 거예요. 케냐만 해도 도로를 좀 닦고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할 수 있게 해 놨는데, 탄자니아는 그런 시설을 못해서 관광객들을 케냐로 다 뺏기는 거지요. 유럽에서 보면 엄청난 사람들이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을 가는데 다 케냐로 가요. 그런 좋은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죠.

어쨌든 저는 그 탄자니아에 선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 사도행전 13장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지로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제가 가장 부러운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울이 선교사로 가기 위해서 언어공부를 했다는 내용이 없다는 거지요. 그 당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세계가 로마제국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정치와 문화가 통일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바울이 다른 곳으로 가서 사역을 하더라도 따로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저에게는 이 언어가 가장 큰 장애였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20세기말에 선교에 열심을 내서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돈도 많았습니다.-지금은 그런 말을 하기가 곤란하지만요-하지만 문제가 뭔줄 아세요? 바로 언어예요. 그래서 선교에 관해 한국교회를 뭐라고 했는가 하면요 '새장에 갇힌 코끼리'라고 했어요. 힘도 있고 열심도 있는데, 언어가 안되니 그런 말을 듣게 되었지요.

선교사에게 필요한 제1의 언어는 영어입니다. 선교지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미국 선교사들은 바로 선교지에 가서 사역할 수 있습니다. 또 영어가 현지인들을 끌어들이는 접촉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한국 선교사는 어떻습니까? 우선 영어를 배워야죠. 영어도 신통치 않은데다가 또 현지어 배워야죠. 고생을 두배나 더 하면서 효과적인 면에서는 반도 못따라가는거예요. 정말 답답한 노릇이죠.

며칠 전 신문에 이런 보도가 났더군요. 아시아 11개국 중에서 외국인이 살기 가장 어려운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구요. 심지어는 말레이지아나 베트남보다 더 나쁘대요. 가장 큰 이유가 뭔가 하면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저도 대학교 졸업하고도 영어 한마디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선교훈련원에 가니까 맨 영어만 가르쳐요. 선교훈련원이 아니라 영어학원이에요. 그것도 모자라서 선교사 파송을 받고 아프리카로 간 것이 아니라 영국으로 갔어요. 거기서 한 1년 살면서 영어를 배운 거지요. 저희 교단에서는 선교지로 가기 전에 영국에 먼저 가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가 있는 저희로서는 보통 부담되는 일이 아니에요. 아프리카 선교사로 간다고 해놓고 영국에 와 있으니 죄송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영어를 배우다가 마침내 탄자니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자 마자 또 언어학교에 들어갔지요. 이제 그곳 언어인 스와힐리어를 배우는 겁니다. 모로고로라는 도시에 언어학교가 있는 곳에 마침 그곳에 대학이 있었습니다. 탄자니아에는 대학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다레살람에 있는 다레살람 대학이고 또 하나가 바로 모로고로에 있는 소코이네 농업대학이었어요. 그 대학에 채플린이 계시는데 제가 가니까 우리 선교부의 선교사님들이 저를 그 대학 채플린 조수 일을 하도록 어레인지를 다 해 놨어요. 조수 역할이래야 이제 선교지에 처음 들어와 언어배우고 있는 형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겨우 한 달에 두어번씩 대학 채플에 가서 설교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제가 한국말 말고 다른 말로 언제 설교를 해 봤어야죠? 그렇다고 명색이 선교사라고 하면서 설교 못한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영어로 설교를 열심히 써 가지고 가서 읽는 거지요. 그렇게 몇 개월 동안 영어로 설교하는 훈련을 단단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어과정이 끝나고 이링가라는 지역을 사역지로 정하고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이제 교회를 시작하고 보니 또 설교를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1주일 내 설교 한편 작성하는 것이 일이에요. 처음 몇 개월은 가정교사를 두고 날마다 스와힐리어를 공부했는데, 그것도 지겨워서 못하겠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설교를 작성해서 하다 보니까 또 많이 진보가 되더군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다 보면 우스운 일도 많이 있습니다. 스와힐리어로 주사 맞는 것을 '찬자'라고 해요. 또 짐승 죽이는 것을 '친자'라고 하는데, 한번은 제가 강아지 예방주사 맞히러 가서 이 개 '친자'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도 이 정도는 양호한 편입니다. 한 선교사님이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다는 설교를 하다가 '병'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났어요. 그래서 '상자'라는 단어를 대신 썼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상자를 꺼내어 깨뜨렸다는 말이 됐지요. 그렇게 넘어갔으면 됐을텐데, 다른 선교사님이 앞에 앉아 있다가 '병'이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어요. '병'이라는 단어는 '추파'거든요. 그런데 가르쳐 준다는 이 선교사님도 혼동을 해 가지고 '추피'라고 했어요. '추피'는 뭔가 하면 '팬티'거든요. 그러니까 이 설교하시던 선교사님이 정정을 했는데 뭐가 됐겠어요?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 나와 팬티를 벗어 찢었습니다.' 그렇게 돼버린 거예요. 정말 선교사역에 있어서 언어는 전쟁에서의 총과 같습니다.

저희가 이링가에 있는 동안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조그마한 인터내셔널 스쿨이 있는데 학비가 너무 비쌌거든요. 그나마 그때는 선교비도 많이 부족하던 때였습니다. 처음에 와서 저희 사정을 얘기했더니 한 학기만 현지인 아이들 내는 만큼 내고, 두 번째 학기부터는 외국인들 내는 수준을 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 학기만 보내고 두 번째 학기부터는 학교를 못 보냈습니다. 애 학교를 못 보내니까 부모로서 마음이 많이 아프더군요. 그런 중에서 제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선교사로 와서 애들 학교도 못 보내고 이렇게 아이들까지 희생을 시키는 것 아닌가 했는데, 가만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까 밖에 나가서 노는데, 그게 모두 학교인 거예요. 그것도 보통 학교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하나님의 학교였어요. 밖에 나가면 카멜레온이 있어요. 한국에서 같으면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아이들이 카멜레온 색깔 변하는 걸 보면서 배우는 거죠. 나가서 메뚜기 잡아서 볶아먹고, 또 집에서 닭이나 토끼를 길렀거든요. 심지어는 거북이도 길렀구요. 그뿐 아니에요. 저희가 가끔 다레살람에 다녀오려면 동물보호구역을 통과합니다. 거기를 지나다 보면 코끼리, 기린, 산양, 멧돼지, 원숭이, 얼룩말 같은 야생동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선교사로 와서 아이를 학교에도 못 보내고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하나님의 학교에서 저렇게 잘 배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리고 학교에 안 다니는 동안 제가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요.

이링가는 해안의 다레살람에서 500km가 넘는 곳인데 고원지대라서 우선 기후가 선선했어요. 해발 1,600미터쯤 되는 곳이었거든요. 햇볕은 엄청 따갑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구요. 저는 그 기후가 참 좋았는데, 또 좋기만 한 것은 아니더군요. 제 아내는 자주 두통이 발생하고 하는 일종의 고산병 때문에 좀 힘들었나 봅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저희가 다레살람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선교부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전담으로 사역하기 위해서였지요.

다레살람으로 나오니까 날씨는 지독히 덥고 전기나 수도 사정은 이링가보다 훨씬 안 좋았어요. 어떤 때는 일주일에 이틀밖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또 수돗물이 안 나오면 그것만큼 고역이 없습니다. 며칠 샤워를 못하다가 어디 물 있는 집 찾아가서 샤워를 하고 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다레살람에 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거든요. 또 다레살람에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설립된 학교가 있어서 저희 아이를 그곳에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힘든 곳에 가서 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했던 일을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39절 보세요.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저도 복음을 전하겠다고 탄자니아에 갔는데, 가서 보니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없는 줄 알았더니 기독교 인구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더 높아요. 거기서는 기독교 인구를 약 30퍼센트로 추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보다 더 높잖아요? 주요 교단은 천주교, 루터교, 성공회 등입니다. 그런데 장로교는 없더군요. 그래서 우리야 장로교를 세우고 있긴 하지만, 내가 복음을 전하러 왔나 장로교를 전하러 왔나 하는 갈등도 생기더군요.

그런데 제가 신학교에서 사역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물어보면, 기도하기 때문이다, 죄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들이 정작 복음을 모르더라는 얘깁니다. 복음이 뭔가요? 금방 우리가 읽었잖아요?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무슬림들은요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를 구원해 주세요, 나를 살려 주세요 그렇게 기도한다고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거지요, 기도 자체가 구원을 가져다주는 열쇠는 아닙니다. 또 죄를 떠나서 악한 행실을 안하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 기독교의 복음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생각입니다. 모든 종교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그 섬기는 신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잘못해서 신을 노엽게 하면 재앙을 당하거나 지옥에 가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소위 고등종교에서 신을 기쁘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롭게 되는 일입니다. 의롭게 됨으로써 신을 기쁘시게 하고 그래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의에 이르러야만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서 의롭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각 사람에게 두 사람의 천사가 늘 따라다닌다고 믿습니다. 오른쪽의 천사는 그 사람의 선행을 낱낱이 기록하고, 왼쪽의 천사는 악행을 낱낱이 기록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때 그 두 기록을 저울에 달아서 선행의 기록이 무거우면 천국에 가게 되고, 악행의 기록이 조금이라도 더 무거우면 지옥행입니다. 그러니까 51%의 선행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거지요.

자, 구약에서 선행으로 의에 도달하도록 주어진 규범이 바로 율법입니다. 이 율법을 지키면 의에 이르러 구원을 받게 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롬 10:5) 했거든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율법은 51%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완전한 100%를 요구하거든요. 1%만 율법을 범해도 모든 율법을 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갈 2:16)고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희망이 없는 것입니까? 우리가 의롭게 되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은 율법을 지키되 100% 완전히 지켜야 되는데, 그렇게 해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인간이 한 사람도 없으니까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혔잖아요? 이렇게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의롭게 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의로움에 도달할 수 있느냐? 바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이 예수를 믿는 자마다 의로움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정말로 복된 소식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이 복음을 듣고 그대로 믿게 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느냐고 물으니까 기도하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죄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복음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복음은 저 밀림 속 오지에만 가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아서도 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가운데 교회 다닌 지 오래된 분이라도 이 소중한 진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다같이 이 귀한 복음을 전하십시다. 저는 아프리카 같은 선교지에서 이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주변에서, 교회 안이든, 가족에게든 복음이 필요한 분들에게 이 진리를 전하세요. 선교사라는 게 따로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여러분은 바로 이방의 빛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한 사람은 모두 이방입니다. 복음의 이방이지요. 그 이방에 여러분이 빛이 되셔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이방의 빛으로 삼아 크게 역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선교지에 나가서 이 일에 수종드는 여러 선교사들의 사역에도 기도로 함께 동역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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