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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면류관 (계 0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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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편지의 첫머리에 사도 요한이 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묘사되면 그 묘사된 모습과 일맥상통하게 주님의 권고의 말씀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번에 공부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주님의 모습이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2:1)로 묘사되고 그에 따른 주님의 말씀은 '회개치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5)였습니다.
 
이번에 언급될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머나 교회에서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2:8)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리라)'(2:11)가 짝지워 지고, 버가모 교회에서는 '좌우에 날선 것을 가진 이'(2:12)와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6)가 짝을 맺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2:18)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불꽃과 같은 눈으로)사랑의 뜻과 마음을 살피고 (빛난 주석과 같은 발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2:23)가 말씀으로 주어집니다. 일곱 교회를 모두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해하기도 쉽고 흥미롭습니다.
 
초대교회가 받은 핍박의 원인
 
초대 교회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환난과 핍박이 많았습니다. 교인들이 성만찬 예식을 할 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듣고 흡사 식인종을 보듯 끔찍하게 여겼고, 동굴에 도피해 간 신도들끼리 애찬(Agape meal)을 나누는 것을 음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또 다른 종교들은 모두 우상을 섬겼지만 그리스도교는 아무 형상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무신론자라고 공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을 보였기 때문에 기독교인을 황제에게 충성을 거부하는 반국가적인 무리로 취급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처음 예수를 믿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과 분리해 놓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형제 사이에, 친척 사이에, 심지어는 부부 사이에도 분란이 자주 일어나 그리스도교인들은 가정의 질서를 그르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그때 당시만 해도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교인들은 툭하면 종말이니 말세를 부르짖었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사회 불안을 조성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서머나 교회 역시 이런 문제들로 인해 핍박과 환난을 많이 받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을 훼방하고 핍박했던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칭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신앙의 초보자가 아니라 신앙이 많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은 유대인을 자칭하는 그 사람들을 사실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단의 회'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그러한 환난과 아울러 궁핍까지도 훤히 아신다고 칭찬하시고 나서, 그러나 그들이 실상은 궁핍한 자가 아니라 부요한 자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가난하게 지내고 있는 서머나 교회 사람들에게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리스도가 생각하시는 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와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증명해 밝혀주는 구절이 바로 뒤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3:17).
 
라오디게아는 산업도시로서, 이 도시의 부유한 환경 속에서 사는 교인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안목에서 볼때 그들은 영적으로 가난하고 벌거벗은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는 약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 힘든 것 만큼이나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였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 마음이 가난하여 영원한 진리를 갈급해하는 사람입니다.
 
환난과 궁핍은 믿음의 연단
 
환난과 궁핍은 믿음의 연단입니다. 여기서 환난이란 전쟁같은 난리를 뜻한다기보다는 그 어원(thlipsis)대로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궁핍은 물질적인 고통을 뜻합니다. 그래서 만일 이런 두가지 기본적인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쓰러진다면 그는 실패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서 강한 자가 되고 물질적인 곤경을 이겨서 부요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고난의 결과가 멸망이 아니라 종국에는 '생명의 면류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그후로도 얼마동안(십일동안:짧은 기간 동안을 말함) 환난을 당할 것을 예고하시면서 그러나 그런 환난을 겪으면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면류관은 자칫 잘못 생각하면 왕관(diadema)이 아니겠나라고 연상하는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 어원 자체가 월계관(stephanos)입니다. 따라서 면류관은 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리는 마라톤 경기의 승리자가 쓰는 그 관을 연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몇번이고 뛰기를 그만 두고 싶었던 그 먼길, 비장한 각오가 없이는 끝낼 수 없었던 그 힘든 길을 '죽도록'달려서 마침내 쟁취하게 된 것이 월계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라톤과 비슷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몇번이나 주님을 포기하려 했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습관적으로는 교회 생활을 했지만 마음속에서 주님을 배반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우리의 주변 환경은 하루에도 몇번씩 주님을 떠나라고 하는 유혹들로 꽉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을 이겨내고 매일 매일을 승리하며 살아갈 때 결국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쟁취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면류관은 곧 승리의 월계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이겨서 살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승리자이시며 그분이 우리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분명히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모두 죽습니다. 이것이 첫째 사망입니다. 첫째 사망은 누구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사망은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는 죽어도 주님이 다시 오실 떼 주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지만 한번 죽은 영혼은 결코 부활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환난과 핍박을 넘어서 끝까지 주님께 충성하여 이 세상에서 승리한 자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여 이제부터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영위하도록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비록 우리의 처지가 죄스럽다고 하더라도 도피하지 말라
 
버가모 시는 주위의 골짜기보다 높이 솟아 있는 산정 도시로서 우상 숭배가 가장 성행하던 곳이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 신전인데 뱀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바로 이런 곳에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고 그들의 어려운 환경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무대가 되어 있던 그곳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믿음을 지켰을 뿐 아니라 그들 중 한사람인 안디바가 죽임을 당하는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굽히지 않았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 살면서도 믿음을 지켰다는 주님의 칭찬은 우리들에게 한가지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인이 되고나서 그때까지 하던 일을 기독교 정신에 어긋난다거나 남이 생각할 때 깨끗치 못한 일이라고 해서 얼른 그만 두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인들에게 하신 주님이 격려는, 비록 우리의 처지가 죄스런 자리라 할지라도 그래서 그 주변 여건이 우리를 괴롭힌다 하더라도, 일단 우리가 그 고통과 유혹을 물리치고 신앙을 지키는 것이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대부분의 신도가 굳건히 믿음을 지키는 가운데서도 니골라당의 꾐에 빠져 타락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4절에 나오는 발람은 구약 민수기 22-25장에 나오는 선지자로, 그는 모압 왕 발락의 꾐에 빠져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케하고 음란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니골라당도 발람처럼 경건의 탈을 쓰고 버가모 교회 교인들에게 괴상한 교리를 가르치고 불순종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들에게 신속한 회개를 명하십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6)는 엄중한 경고와 함께.
 
그러나 모든 유혹을 물리친 승리자에게는 감추어진 만나와 흰돌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낼 때 하나님께서 내려주셨던 것(출16:4-36)인데 이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후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한 상징으로 특별히 언약궤에 보관하였던 그 만나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만나는 그 후 성전이 외침을 당했을 때 선지자 예레미야가 항아리에 담아 시내산 어딘가에 깊숙히 감추어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만나는 메시아가 오실 때 찾아 가지고 오셔서 우리들에게 먹여 주신다고 유대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즉 '감추었던 만나'는 생명의 떡, 영적 양식을 상징합니다.
 
흰돌은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초청받았다는 초청장과 같은 것이며 그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해 주신다는 것은 이제는 옛 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야곱이 여러가지 곤경을 거쳐 얍복강 나루에서 주의 사자와 겨루어 이겼을 때 드디어 주어졌던 이름 '이스라엘'이란 승리자의 이름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새 이름을 받게 됩니다.
 
결국 회개하는 자가 인생의 승리자
 
두아디라 교회가 처한 경우는 그 도시가 나염 산업과 기업으로 유명했기 때문인지 사업적인 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과제들을 올바르게 처리하도록 전개됩니다. 주님의 첫 말씀은 '내가 네 사업(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을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19절)입니다. 여기서 저는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라는 말이 '사업'을 뒷받침 해주는 수식어라고 생각되어 다음과 같은 주해를 달아 읽습니다. '내가 네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 사업에 쏟아부었던 너의 사랑(열정)과 믿음(신용)과 섬김(고객 써비스)과 인내(장사하면서 아니꼽던 일을 견딘 것)를 모두 다 안다. 네가 처음은 고생했지만 이제는 네 사업체가 크게 되고 있지 않으냐'.
 
주님은 여기까지 인정해 놓으시고는 그 다음을 겨루십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사업에 손을 대는가하면(20절), 또한 '음행'을 조장하는 산업 개발을 일삼고 있으니(21절) 내가 이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단호한 경고가 쏟아져 나옵니다. '내가 그를 침상(병상)에 던질터이요...... 내가 그 자녀를 죽이리라'(22-23절). 듣기만 해도 무서운 말씀입니다. 앞서 밝혔던 그 '풀무에 단련된 주석과 같은 발'이 곧 나를 걷어찰 것만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보시는 '그 눈이 불꽃 같아서'피할 길이 없습니다.
 
또다시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23 후반 절). 여기서 '사람의 뜻'이라는 어원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아랫배 뒤쪽 속에 있는 '신장'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다시 풀어서 써 본다면, '나는 사람의 겉 행위만 아는게 아니라 머리 속에 있는 생각, 가슴 속에 품은 마음, 그리고 뱃속 깊이 감추인 의지(뜻)까지 아노니 그런 것들의 됨됨 그대로 응대해주리라'는 것입니다. 일단 주님의 징벌의 철퇴가 들리우면 우리 인간의 얄팍한 잔꾀로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만 다행이도 주님의 그 단호한 말씀 가운데는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그리고 회개하고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내 일을 끝까지 지킨다면'(21,26절), 용서는 물론이려니와 '새벽 별을 주리라'(28절)는 기쁜 소식이 내재해 있습니다. '새벽 별'은 하나님께서 죄된 인간에게 베푸시는 소망과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 편지는 결국 회개하는 자가 곧 이기는 자라는 인생의 깊은 경륜을 우리들에게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새벽 별은 그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훈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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