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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안에서 행하라 (엡 0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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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성령 충만하므로 사람이 타고난 기질이 변하게 되는 사실을 성경에 나타난 아브라함, 모세, 베드로 그리고 바울의 삶을 통해서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기질이 변화 받는 것은 바로 성령의 충만 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으로 사람의 기질이 변화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계속해서 충만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 말씀과 항상 병행되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이르나니 성령 안에서 행하고 썩어질 육신을 좇지 말라'고 했습니다.
육신에 대해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 심령이 성령으로 충만을 받지 못했다는 표시입니다. 이런 기질을 고치는 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성령충만과는 다른 말입니다.
성령충만 하려면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간구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충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감사 드리고 자신의 죄를 범했다고 생각하면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 됩니다. '그건 너무 간단한데요. 성령 충만이 그렇게 간단하겠어요?'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히 받는 것이 꼭 어려워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A. B. Simpson 이란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 받는 일은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내쉬고 나서 들여 마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오순절 때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찌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할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부정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 4장 13절 말씀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차츰 확신을 느끼게 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그 약속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은 죄가 되기 때문에 자기의 기질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에도 오랫동안 뿌리 박아온 분노라는 것을 통해 성령을 근심하게 해 드립니다. 그러므로 즉시 회개하지 않는 한 성령받은 상태를 유지 할 수가 없게 되고 낡은 감정에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과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또한 '성령 안에서 행하라'고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구태여 그것을 위해서 어렵고 복잡한 방법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바르게 해 주시는 분이시지 일부러 뒤엉키게 하시는 분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령 안에서 행할 수가 있습니까?
첫째로,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절대로 성령 안에서 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낡은 습관들은 자꾸만 그전의 상태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보다는 옛습관을 더 즐기게 된다면 그것은 육의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욕망이 일시적으로나마 우리의 흥미를 돋우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하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을 간절히 바라면 세상에 속한 것은 쉽게 포기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여러 가지 목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영적인데 있습니다. 우리가 대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질문입니다. '성령 충만 없이 우리 일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몇 개나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은 '한가지도 없다'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동안은 성령 안에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죄에 대해서 아주 예민해야만 합니다.
죄는 순간적으로 우리 안에 역사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소멸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어떤 죄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 곧 그 자리에서 회개해야만 합니다. 성령이 소멸되면 죄를 범하고도 죄를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다윗이 소년시절에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일을 해냈습니다. 이스라엘의 숙적 불레셋 장군 골리앗을 쳐서 승리한 것은 전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만 충복인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사실 다윗은 이런 죄를 범하고도 죄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모든 이웃나라 왕들은 그런 일이 보통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나단 선지를 통해서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그때에야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중심으로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다 타락했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범한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예민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민감도는 은혜는 많이 받을수록 죄에 대하여 민감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죄에 대하여 예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려면 셋째는, 매일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삼고 그 말씀에 마음을 두는 습관을 들이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이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하나님이 우리 생애에 일어나는 사건에 관여하시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매일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너무 형식에 치우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정신적인 습관에 얽매이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아침, 점심, 저녁식사를 위해서 밥상을 대하는 것을 형식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먹어야 살 수 있고, 먹는 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이 귀찮고 싫고 맛이 없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필요를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먹이는 것이고 여기에는 영적인 흥미가 형성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을 거룩한 습관(Holy Hafit)이라고 말합니다.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다(Hafit is a second nature)라는 말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 성경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삼게되면 우리 마음속에 확신이 생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12년이나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온 젊은 기사 한 사람이 제게 찾아와서 자기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는 제가 믿는 사실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초가 없었다'고 그런데 3개월 간 성경 읽기와 암송하는 프로그램을 마친 후 '목사님, 여지껏 제가 전도할 기회가 없었다는 말은 정말 터무니없는 말이었습니다.

전에는 교회는 다녔지만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실 말 할 거리가 없었지만 이제는 말씀으로 가득 차서 말끝마다 성경구절이 튀어나올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매일 전도합니다'하는 간증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면 정말 놀라운 결과가 생각납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을 읽으면 번영과 성공의 길을 열어줍니다.
시편 1절 3절을 읽으면 삶에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시편 119절 11절을 읽으면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요한복음 15장 3절을 읽으면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을 보면 기도의 능력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을 보면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을 읽으면 삶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 이런 놀라운 결과가 생기는데 비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불안과 초조, 불만과 시비, 무기력과 좌절 속에서 이등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정말 큰 비극입니다. 이등인생을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일등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성령 충만한 생활과 골로새서 3장 15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 충만한 생활을 자세히 비교해 보세요. 이 두 구절은 똑같이 약속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노래와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고 거기에 순종하는 마음은 성령께 순종하는 마음과 똑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과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 하는데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으면 다른 일에 대한 기억력도 좋아집니다. 우리 나라의 탤런트 가운데는 예수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성경말씀을 암송하기를 힘쓰는데 성경을 암송하는데 힘쓰다 보니까 드라마 대사를 암송하는데도 탁월한 능력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연예계에서도 유명한 사람들이 대개 예수 믿는 사람들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계속 읽고 공부하면 우리 정신력의 퇴화를 방지하는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 교회에 100세 나신 할머님이 출석하시는데 아직도 정신이 똑똑하십니다. 그 자부님 말씀이 이 할머니는 매일 성경을 펴 드시고 계속 읽으시는데 한 달에 성경을 1독하신다고 합니다. 놀랍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려면 넷째로, 성령을 근심하지 않도록 해아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 이하에 보면 미움이나 분노나 원한 같은 것은 성령을 슬프게 한다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화를 특별히 잘 내는 성도께서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면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어떻게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성령의 충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 요한을 보세요. 그가 예수님을 3년씩 따라다니며 귀한 말씀을 들으며 감동하고, 이적 행하심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고결한 생활을 보면서 흠모하기도 했지만 성령의 충만을 받기 전에는 그의 본성이 그대로였습니다. 사마리아 동네에서 예수님의 일행이 하룻밤 묵고 가겠다는 청이 거절되자 하늘에서 벼락을 내려 불살라버리고 말자는 제안을 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 이었습니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사도 요한이 오순절 때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나니까 완전히 그 성품이 변했습니다.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증오심이나 적대감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증오심이나 적대감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 마음속의 평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성령 충만 받는 일을 우선으로 할 때 화를 내거나 원한을 품거나 용서할 줄 모르는 행위로 인해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자꾸만 실수를 되풀이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해 드렸다고 생각될 때마다 곧 그 죄를 회개하고 다시금 성령 안에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하세요.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성령 안에서 꾸준히 인내하고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애쓰게 되면 내가 갖고 있는 타고난 약점 모두가 장점으로 바뀌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행하려면 다섯째로, 걱정과 두려움으로 성령을 떠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고' 했습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것에 저항하게 되면 성령이 떠나시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면 그와 똑같은 조건에서도 ' 내 삶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지금 당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잘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채워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계속 성령 안에서 행할 수 있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속으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을 쏟는다면 우리는 이미 성령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 '아, 내가 또 하나님께 잘못했구나'하고 하나님께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고쳐 주시고 주님의 영으로 채움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대개가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는 자기의 불평을 고백함으로 불만스러운 문제나 어려움으로부터 빠져 나오려는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바꿔 놓으시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시는 일에 관심이 크십니다. 걱정할 일이 없는데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걱정스러운 일을 만났을 때도 걱정하지 않을 때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를 모든 걱정스러운 환경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으니 불티가 위로 날음과 같으니라'(욥5:7)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 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시험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대신 그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써서 시련을 피하려고 하는 이가 많습니다. 두려움에 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갖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굳은 신앙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면 믿음은 더욱 자라게 됩니다.

여러분, 염려와 근심이 자꾸만 생깁니까'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을 기억하세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조바심을 내고 근심을 하게되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아무리 훌륭한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감사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끝까지 성령 안에서 행하며 항상 기뻐하는 삶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는 삶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 보이시는 주님을 더 알고, 꾸준히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감사가 어렵습니까? 이것은 사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한 죄입니다. 이 죄를 회개하고 나면 감사 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선한 길, 유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 하나님을 믿으면, 의심과 불평 그리고 원망대신 마음의 평화 와 감사가 넘쳐흐르게 됩니다. 저는 우리 예배당 부지를 구하려 다닐 때 한 때 속상한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 생각에 참 좋아 보여 밤새 그 땅에 어떻게 예배당을 지으면 좋을까하여 그림을 그려보았는데 성사되지 않을 때 속이 상했었습니다.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더 좋 은 곳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하나님의 집을 짓고 나 니 그 때 그 곳을 주시기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요사이 그 전에 되지 않아 속이 상했던 곳을 지나다보면 그 때 거기를 주셨으면 큰 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저 감사한 것뿐입니다. 이 예배당을 주시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의 조건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계획한 곳보다 더 좋은 장소를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감사 드리기 전에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감사는 신비한 약입니다. 거기서 성령의 주관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네가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해주신 일에 대해서 자각하지 못하는 데 그것은 내가 받은 복을 세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을 세어 보세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을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행하는 일을 순서대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항상 마음의 자세 가 중요하지마는 하루 중에 두 번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와 잠자리에 들 때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성경 말씀을 읽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밤에 성경을 읽으면 몸이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의 무의식 속에 마음이 일 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마음속에 하나님과 같은 감정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이것 못하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감사하므로 기도 드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역경 중에서 감사하기는 힘들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어느 신경외과 의사가 이런 말씀했습니다. '당신 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 첫30분간입니다. 그 때 생각한 것이 하루의 마음가짐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한 몸으로 밤에 잠들고 아침에 밝은 눈으로 일어나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부지런한 사람에게 꼭 맞는 말입니다. 어떤 경우이든 이 의사의 말은 감사하는 기도로 그 날의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주요한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 기자는 118편 24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실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했습니다. 감사하므로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로마서 6장에 있는 말씀대로 자기를 새롭게 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지식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행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느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이 말씀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박조준 목사)
 (2005-05-09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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