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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대인의 나은 점 (롬 0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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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없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는 특혜를 누렸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유대인들중에는 이를 무시하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그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배반하고 악을 저질러도 하나님은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분이십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고 거짓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올바르고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는 그분의 약속을 믿어 그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삶에서 그 유익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인간의 불의와 하나님의 의 (5-8절)
인간이 악해지면 악해질수록 하나님의 선하심이 두드러지게 된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사람이 악해지는 것이 합리화되고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린 자기들을 합리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것을 염려한 바울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인간의 불의와 아무 상관없이 언제나 동일하게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하나님의 참되심은 인간의 거짓됨이 나타나지 않아도 영원히 참되시다는 사실을 피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 의로우심을 나타내기 위해 악을 행하자는 의도는 단지 죄인들이 자신의 죄악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구조적으로 굳어진 논리로 필요악을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현실은 인간의 불의를 미화시키기에 알맞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은 빛으로 인해 드러납니다. 우리 죄악을 합리화시키지 않고 죄악의 심각함을 얼마나 진지하고 섬세하게 간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 죄아래 있음 (9-18절)
바울은 유대인이 율법을 먼저 받았으니, 유대인이 더 의로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에도 쐐기를 박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다 죄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어리석음으로 가득하며 구약에도 나타나듯이 선을 행하는 자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고, 그저 하는 말마다 사악한 말 뿐이며, 발은 피 흘리는 데 재빠를 뿐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경외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도대체 긍정적인 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죄된 모습을 인류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인류의 조악상을 거듭 폭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언어생활 하나만 보더라도 속에 있는 것을 좀처럼 어찌할 줄 모르고 속으로 삭이거나 심지어 겉으로 표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살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죄의 문제는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다 죄 아래 있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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