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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록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 (딤전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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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일 낮 예배 1-4부까지 네 번 설교해야 하는데 저를 위해서 지금도 1층에서 중보기도 팀들이 모여 예배와 설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은 중보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2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고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본문 8절에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중보기도란 영어의 intercession pray라고 하는데 inter는 between 즉 ‘사이’, ‘간격’이란 말이며 cession이란 말은 라틴어 cedere에서 온 말로 ‘간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going between이란 말로 ‘양편의 가운데 위치하여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행위’라는 뜻입니다. 중보기도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들어가서 연결시켜 주며 간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 할 때 그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손길이 그에게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래 무디는 중보기도의 필요성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시무하던 교회의 성도가 무디를 위해서 중보기도하겠다고 말 할 때 무디는 “나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더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시카고의 대 화재 후 휴식 차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영국의 한 교회에서 무디가 온 것을 알고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휴식 차 왔기에 설교할 준비를 하지 않고 갑자기 설교를 하게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녁예배에 다시 설교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힘 있게 설교했고 설교 후 초청할 때 500명이 초청 응답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교회에 두 자매가 있었는데 언니는 낮 예배에 몸이 아파서 나가지 못했는데 교회에 다녀온 동생이 오늘 무디가 와서 설교를 했고 저녁에도 설교를 한다고 전하자 언니가 저녁설교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제안하여 두 자매의 중보기도로 무디의 설교는 힘이 있었고 오백명이 넘게 초청에 응답한 것입니다.
1. 중보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며 의무
중보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원형이 출애굽기 32장 9-1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길 때에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진멸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중보기도를 시작합니다. 출애굽기 32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계획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더라도 이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중보기도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옛날 로마의 황제가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돌아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황제가 로마로 입성할 때에 군인들 사이를 뚫고 황제 앞으로 뛰어드는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말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저 분은 황제시다”라고 말할 때 아이가 돌아서서 군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에겐 저분이 황제시지만 제게는 아버지예요”라고 말한 후 아버지 품으로 달려가 안겼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은 기도로 아버지께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성도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그 아버지 앞에 달려가 안겨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녀의 특권이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을 가장 많이 쓴 EM 바운즈는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신다.'고 했습니다. 스코트랜드에서 사역한 엔드루 보너라는 사람은 '기도하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성경을 읽기 전에는 다른 책을 읽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기독교인의 삶의 전체를 지배하는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2. 중보 기도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에스겔 22장 30-31절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한 성을 멸망시키기로 계획하셨을 때 그것을 막아서서 중보기도 하는 한 사람을 찾다가 찾지 못해서 그 성은 마침내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EM 바운즈는 '교회는 더 좋은 계획과 방법을 찾고 있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 성령의 역사는 어떤 방법이 아니라 기도의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교회를 향하여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30절에 보면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라”고 했고, 빌레몬에게도 빌레몬서 1장 22절에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고 중보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중보기도로 세계의 영적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899년 영적인 거인이며 부흥사인 무디가 죽었습니다. 당시 함께 사역하던 R.A.토레이는 무디의 죽음이 세계영적부흥운동이 멈추어질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역하던 교회의 성도들 150명과 함께 매일 밤 10시부터 1시까지 3시간씩 특별히 전 세계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기도했습니다. 이때에 영적부흥운동이 멈춘 것이 아니라 1900년대에 새로운 영적 부흥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영국 스코트랜드 서북쪽 루이스 섬이 있는데, 1950년 이 섬에 위기가 왔습니다. 젊은이들은 모두 세속화되고 교회에는 노인 몇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 교회의 두 노인이 4년 동안 오두막에서 그 섬을 위해 중보기도했습니다. 두 노인의 중보기도로 술을 마시던 맥주 집에 성령이 역사하여 젊은이들이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교회는 다시 부흥되었고 그 섬 전체가 변화되었습니다.
3. 중보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
예수님은 영원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니다. 중보자라는 말은 헬라어 ‘메시데스’라는 단어로 ‘중개인, 대리사절, 화해자, 조정자’란 뜻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도록 인간에게 맡기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만물 사이의 중보적 존재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중보기도하신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① 제자들이 유혹과 악에서 보전되도록(11,15절) ②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도록(13절) ③ 진리로 거룩해 지도록(17절) ④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20절) 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도록(21절) ⑥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도록(23절)기도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하고 계신 예수님(히7:25)이십니다. 하나님은 중보 기도자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과 18장 18절을 보면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메고 푸는 것이 우리의 중보기도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중보기도하면 사단의 권세를 결박할 수 있고 중보기도 하는 사람들에게 영적 권세를 주십니다.
1540년 루터의 친구 미코니우스가 루터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자신이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으니 루터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루터는 답장을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종교 개혁하는 일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자네이며,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노니 자네가 죽지 않고 살 것이네. 자네는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네'하고 답장을 보냈는데 실제로 친구의 병이 낫고 루터보다 2개월 더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12장 5절에 헤롯에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을 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때 놀랍게도 착고가 풀리고 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조지 뮐러는 친구 다섯 명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한 친구는 5년 만에 구원받았습니다. 또 10년 후에 두 친구가 구원받았습니다. 25년 후에 4번째 친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친구가 구원받는 것을 보지 못하고 뮐러는 죽었는데 그 친구가 뮐러의 장례식에 와서 자신을 위해 한평생 기도한 것을 깨닫고 주님 품에 돌아와 구원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보기도가 여러분 생전에 응답 못 받으면 죽은 후에라도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모든 사람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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