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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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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선비들은 한가하게 사랑에 모이면 곧잘 지식유희를 즐겼다. 이를테면 한국역사를 통틀어 각 분야별로 베스트 1을 뽑는 것도 그런 지식유희 가운데 하나였다. 예컨데 재상(宰相) 베스트는 황희(黃喜)요, 풍류(風流) 베스트는 임백호(林白湖), 풍채(風采) 베스트는 김인후(金麟厚), 미인(美人) 베스트는 자동선(紫洞仙)......하는 식으로 한데 시샘을 뜻하는 투처(妬妻) 베스트로 오르는 여인은 예외없이 정승 H씨 부인이었다. 중종 때 여인으로 아버지도 정승이요 남편도 정승이며 아들도 정승인 역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인이 역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질투가 심한 여인이었다는 것은 익살스럽다. '금계필담(錦溪筆談)'이라는 조선조 후기의 문헌에 H씨 부인 이야기가 이렇게 씌어 있다. 결혼한 이튿날 투기심이 강하다는 신부의 마음을 떠보고자 신랑이 술을 따르는 예쁜 계집종의 손목을 짐짓 잡았다. 신부는 못 본 체하고 물러가더니 서실에 앉아 있는 신랑에게 보로 싼 상자를 들렸다. 열어보니 그 상자 속에 그 계집종의 손목이 잘린 채 들어 있었다. 부인의 질투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근엄해야 한다 하여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아오다가 그로써 부인의 투기가 잠잠해지자, 미소를 띄며 이제까지 근엄히 해왔던 이유를 고백했다. 그러자 '나를 속임이 어쩌면 이다지도 심하시오' 하면서 대들어 수염을 움켜쥐고 하나 남김없이 뽑아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 옛날에 질투가 심하면 가문재판을 열어 손가락을 자르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장안에서 이 투기 때문에 손가락이 잘린 여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자, 종으로 하여금 그 손가락을 얻어 갖고 오라 시켜 여자로서 마땅히 행세를 하다가 희생되었다고 정중하게 조문을 하기까지 했다. 질투란 남성상위 시대에 있어 여권신장을 위한 영예로운 훈장이라는 보브와르의 해석을 상기시키는 맹렬여성인 것이다. 서양에서 투처 하면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와 문호(文豪)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를 연상한다. 사람들 앞에서 남편에게 물벼락을 씌우거나 손님들 앞에서 남편에게 식탁을 뒤집어씌웠다던 크산티페다. 소피아 톨스토이는 결혼 1년 후에 이렇게 쓰고 있다. '톨스토이는 너무나 딴 일에 몰두하고 있다. 오늘따라 나의 젊음이 복받쳐 발꿈치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싶다. 한데 그이는 펜이라는 도구로 원고라는 딴 여자와 춤을 추고 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앙탈을 부렸다. 원고를 발기발기 찢고 만 것이다.' 인도의 정신적 영웅 마하마트 간디의 아내도 투처였던가보다. 최근 런던에서 경매된 서한에서 간디는 '이제까지 만난 여자 중에 가장 독살스런 여자'이며 자신의 생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고 혹평하고 있다 한다. 소크라테스, 톨스토이, 간디하면 도덕군자라는 이미지가 상통하고 있다. 군자와 여성의 실존과는 극한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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