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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과연 우주의 종말은 오는가? (살후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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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시계의 천년침이 한칸 움직이려는 지금, 온 세계는 종말론 신드롬에 휩싸여 있습니다. 종말을 소재로 한 영화, 책, 음악들이 나오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는 벌써 지구종말을 카운트다운 하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이 종말론 교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단들도 여기에 기승을 부리는데, 더욱 컴퓨터 밀레니엄 버그라는 Y2K 문제는 그들의 주장이 옳은 것 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컴퓨터가 짐승의 수인 666이요, 컴퓨터 바코드를 받으면 지옥간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정황들이 인류 문명의 최고 자랑이라고 여기는 이 컴퓨터가 과연 인류를 멸망시키는 마지막 도구라고 말할 때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제 세계는 인터넷이라는 그물망으로 얽혀져 있습니다. 컴퓨터가 없이는 살수 없다고 할만큼 우리 생활에 깊숙히 들어왔습니다. 과학기술로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테크노피아, 컴퓨토피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해를 시작해도 우리 마음이 설레이는데, 새로운 세기를 시작할 뿐 아니라,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게 되는 2000년 1월 1일, 불과 120여일 남았는데, 그 새해 아침은 여느 새해아침과는 또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날 아침 새해 떡국을 우리가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입니다.

은행들도 4일간 다 문을 닫는다고 하고, 해외여행하는 사람들도 비행기 를 타지 않습니다. 그 때에 우리들의 모든 생활이 올스톱되는 것은 아닌가? 정말 우주 종말이 오는 것인가? 처음에 호기심이 시간이 갈수록 염려로 이제는 두려운 마음도 있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이장림씨파의 휴거 소동때 얼마나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까? 휴거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장림씨도 잘못을 시인하고 조용히 목회를 하고 있다는데, 이단에 빠져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속고도 또 미혹을 받습니다. 지금은 시한부종말론자들이 몇월 몇일이라고 날짜는 못박지 않아도 '올해 안에 김정일이가 침략한다. 1999년 올해 아니면 2000년에 예수님께서 재림한다. 2002년 월드컵은 열릴 수 없다' 라는 주장을 하면서 다시 사람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도 시한부종말론을 믿는 광신도 7명이 양양에서 자살하기도 했는데, 며칠 전에도 시한부종말론을 신봉하는 30-40명의 신도들이 집단 가출해서 크게 사회를 혼란하게 했는데 이들이 또 가출했답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종말론으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일들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기말의 현상으로 과히 세계적입니다.

미국만도 1,200여 곳에 이르는 종말론 사교집단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큰 몸살을 앓고 있답니다. 2000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재림한다는 소위 '예루살렘신드롬'이 세계에 퍼지면서 종말론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터키의 대지진, 크고 작은 전쟁들, 기아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주는 북한, 여러 가지 징조들을 보면서 마지막 때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천문학자들은 2028년에 소행성이 지구에 충동할지도 모른다는 예고를 하고 있고,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세계의 인간성의 상실, 비인간화 현상으로 파괴될 것을 말합니다. 환경론자들은 심각한 환경문제, 핵전쟁의 위험, 이상기후로 인한 재앙등이 이 종말의 예고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핵과학저널지에서는 인류 종말의 시계를 전에는 자정 14분전이라 했는데 이제 5분 앞당겨 자정 9분전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특별히 한 세기가 바뀌는 세기말에 많이 나타나는데 올해는 한 세기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이 지나가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해야하는 때니까 더욱 심각합니다. 이전에는 정보가 적고 시간에 대한 개념들이 지금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혼란된 일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불안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때에 우리 크리스챤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야 합니까?

전쟁이 난다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리 나라 대다수의 사람은 '빨리 슈퍼에 가서 라면을 사야한다'고 대답한답니다. 그러나 이것도 준비가 되겠지만 우리들이 앞으로 맞이할 이 혼란은 이런 우스개소리로 지날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이런 혼란하고 미혹있는 세대에 인간 종말에 대한 바른 지식과 종말에 대한 바른 준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성경적인 깨달음과 바른 자세는 우리들 개인의 신앙을 손해보지 않고, 이 혼란한 세상에 빛을 주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아는 크리스챤들은 이 종말에 대하여 무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생활을 하되, 종말론적인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우리들이 오늘 사는 것 모든 것이 항상 젊을 때, 건강할 때, 있을 때만 있을 줄 알고 행한다면 그 사람은 늙음이 올 때. 병약이 올 때, 죽음과 심판에서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현재의 삶은 언제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되어야 지혜로운 것입니다. 젊어서 노후대책만 잘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게 마지막 때, 곧 종말과또 영원미래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오늘에 준비하는 자를 성경은 지혜로운 자라 합니다. 역사의 종말을 바로 알고 인식하고, 또 역사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 오늘을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준비하는 삶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인류의 종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사람들은 세가지 태도를 취합니다.

1. 어떤 사람은 종말이 있다는 진리에 대하여 부정하거나 전혀 종말에 대한 인식이 없이 삽니다.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 옛날부터 종말이 있다는 미혹들이 있었고, 그러나 지금까지 그 종말은 오지 않았다. 이 주장들은 하나의 기만이요, 우둔한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한 것이다.' 합니다. 거기다가 치우친 종말론광신자들의 모습들을 인해서 더욱 바른 종말론을 말하는 사람조차 이상하게 보고 비웃기까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삶은 오늘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먹고 즐기는 향락주의로, 또는 그렇지 못할 때에 허무주의로 살아갑니다. 종말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긴장이 없습니다. 될 때로 되라는 것입니다.

2. 어떤 사람은 종말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 세대주의자들이 그러합니다.
종말에 대하여나 인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심리적으로 호기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관심이 지나쳐서 임박한 종말에 대하여 두려워하여 오늘 현재의 삶은 그르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종말에 대하여 지나친 두려움으로 아무 일도 못합니다. 단지 그 종말의 시간에만 맞춥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자기 생활을 팽개치고 여기에만 매달려서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82년도 휴거소동 때에 직장을 그만 둔 사람이 5000명이상이나 된답니다.

3. 그러나 성경을 바로 알고 성경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건전한 종말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늘 교회에서는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종말을 말하는 것도 주의를 해야하지만, 성경이 말씀한대로 인간에게는 종말이 있음을 알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인생에게 종말이 있다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고, 소망입니다. 이들은 종말을 사모하고 기다립니다. 또 종말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 가운데서 조심있게 살아가게 되므로 오늘 하루 하루를 허송하지 않습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삶은 오늘을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어둡고 죄악된 우리에게 종말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영원한 내세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이 부정한다고 종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한부종말론자들 때문에 우리들의 종말 신앙, 재림신앙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종말은 우선 두가지로 나누어서 말할 수 있는데 개인적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숨을 쉬고 있고 살아 움직이지만, 우리의 육신이 영혼과 분리되는 날, 우리들의 숨이 멈추어지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썩게될 때가 언젠가는 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로서는 우리가 다 시한부인생을 살아갑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누구라도 하던 일을 다 두고 가야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해도, 아무리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라도 하나님이 오라시면 가야하는 것입니다. 한 순간도 그 정한 시간에서 지체할 수 없는 우리 연약한 인생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주적인 종말은 모른다 할지라도 이 개인적인 종말, 죽음이 있다는 것은 다 알면서도 현실에서 이를 부정하려고 합니다. 아니 오히려 생각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고 살맛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를 알면서도 부러 잊으려합니다. 그러나 잊고 있다고 찾아오지 않습니까? 죽음을 도적같이 맞이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개인적인 종말, 죽음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현실에서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에 오늘의 삶이 긴장이 되고 오히려 모 든 세상에 속한 거짓되고 헛된 욕심을 버리게됩니다. 우리들이 죽음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 죽음 문제를 주님께서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믿는 자는 살 것이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죽음 이후에 부활과 영원한 내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게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아니,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자살하자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있는 것이요, 거하든지 떠나든지 자신은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자되기를 힘쓴다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주님 모시고 살면 천국생활이지만, 우리들이 갈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요, 영광스러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에게 있어서 종말은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종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적인 종말이 있음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우주적인 종말은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다시 오실 때, 곧 재림하실 때에 이 세상이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개인에게도 이 세상에 나게된 시작인 출생의 시기가 있고 이 세상을 끝내는 종말의 죽음이 있는 것 같이 이 세상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끝내실 우주적인 종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들로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장망성이라는 것이니,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이 세상은 죄악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 죄악된 세상을 불로 태우고 우리에게 새하늘과 새 땅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은 끝이 나야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끝나야 영원한 내세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세대에 이 우주적인 종말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종말론적인 신앙은 주님 오시기를 소망하면서 사는 것이고, 또 우리 개인들을 천국으로 부르시는 그 때를 사모하며 오늘을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학교에 보내었는데 하라는 공부는 하나도 않고 얼렁뚱땅 놀았던 학생, 그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다 영원을 준비하는 너무나 귀한 시간이지만, 이 시간에 준비하지 않고 그 현실에 주어진 보기 좋고 탐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취하고 누렸다면 후회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여러 책들과 사상들이 있지만 인생개인의 종말이나 우주의 종말을 다루는 책 가운데 성경이야말로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줄을 믿습니다.

창세기 부터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일관된 주제는 이 우주의 기원과 창조, 역사의 형성과정, 그리고 역사의 종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을 시작하신 것이고 그 목적을 오늘도 이루어 가고 계시고 이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에는 기한이 찼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정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종말에 대한 비밀은 이제 감추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때와 기한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치고 모든 전개되는 상황들을 볼 때에 이 때가 마지막 때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종말의 비밀을 아는 우리들은 이제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서 살 것이 아니고 오늘을 신실하게 빛의 자녀로 살아 가야합니다.

우리들에게 종말에 대한 비밀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단지 한가지 이유입니다.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재림날자나 맞추려고 애를 쓰고 사람들로 마음을 흔드는 미혹하는 일들은 비정상적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나 분명히 개인적인 것이든지 우주적인 것이든지 종말이 있음을 알고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우리들에게 종말에 대한 비밀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어 우주의 종말의 날자와 시기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불건전한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기형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종말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는데, (살후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살후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어떤 미혹하는 자들이 와서 영들이 전했다 하든지, 말로나 어떤 글로서 주의 날이 언제 언제 이를 것이라고 미혹할 때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 자들은 (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라는 이 말씀을 가지고 저희들은 어두움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시기를 알려주시므로 알 수 있고, 그래서 저희들은 도적같이 주님을 맞이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여기 주님을 도적같이 맞이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시기를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다음 5절을 보면, (살전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깨어 근신하는 자들은 도적같이 주님을 두려움으로 놀람으로 만나지 않을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시기는 알지 못해도 마지막 때는 징조를 보아서 짐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다하는 것 같이 징조를 보아서 마지막 때가 된 줄로 알라' 했습니다. 오늘 이 때를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선지자들과 또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들을 말씀하셨는데 그 징조의 예언이 지금 거의 다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징조를 살펴보면 첫째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는 제일 주의 할 것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살후2:4)에도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24: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마24: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지금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이적과 능력을 행하여 미혹합니다. (살후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살후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지금 우리나라에만도 이런 거짓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종말에 대한 예언 성취입니다.

둘째로, 자연계의 변화입니다.
(마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자연계와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역사의 마지막 단계로 돌입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미리 말세의 징조로 예언이 되었습니다. 기상의 이변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입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 이스라엘나라가 무려 1900년 만에 1948년에 국가가 세워집니다. (마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무화과 나무의 비유로 가르친 말씀이지만, 바울도 말하기를, (롬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롬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이 역사 말기에 다시한번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저들이 이제 하나님께 돌아와서 구원을 얻는 일이 시작됩니다.

넷째로, 복음의 세계적인 전파입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갈릴리 주변을 떠나지도 않으신 촌놈 12명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교회를 세워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고, 또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다섯째로, 지식의 폭발,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구촌이 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12장의 예언입니다. (단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사람들이 빨리 왕래한다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부터 근 1900년 대까지 교통수단이라 해야 변하지 않습니다. 빨리 달리는 말 정도입니다. 바다에는 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빨리 왕래한다고 했는데, 지금 얼마나 빠릅니까? 필리핀까지 비행기로 3시간이면 갑니다. 이전 같으면 걸어가고 말을 타고 배를 타고 몇달을 가야했을 것입니다. 음속비행기가 나옵니다.

또 지금 지식의 발달은 얼마나 빠릅니까? 고도의 과학기술발달입니다. 컴퓨터 하나만 봐도 불과 2-30년전의 빌딩만한 초대형 컴퓨터가 지금 우리 가정에 있는 피시보다 못합니다. 차 안에서 인터넷을 무선으로 할 수 있습니다. 수십만통의 편지를 동시에 보낼 수 있습니다.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정보의 바다에 빠져 들수도 있습니다. 집안에 앉아서 청와대도 백악관도 들어갔다 나왔다 합니다. 80권이상하는 대형백과사전이 손바닥 만한 시디 몇장에 다 들어갑니다. 지난 4-60년간에 인간은 달에 착륙했고, 우주를 정복하는 꿈을 가집니다. 또 생명을 연장하고 유지하는 생명공학의 발달로 하나님같이 되려는 도전도 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들이 다 아마겟돈을 가는 길에 있는 것입니다. 다 종말을 향하여 보존되고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인간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사랑이 식을 것입니다.
(마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우리들의 시대는 문명화되고 있다지만, 사람들은 갈수록 포악해지고, 음란해 집니다. 이전에는 유괴사건하나만 일어나도 전국뉴스거리고 사람들이 다 치를 떨었는데, 사람을 토막을 내어도 무감각입니다. 얼마나 음란한 세대입니까?

우리 학생들, 이 세대는 음란한 세대라는데 동의합니까? 기성세대들이 다 타락하여 짐승같이 육체가 되어서 돈만 알아서 이런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이 자라는 세대를 무너지게 만드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청년, 청소년, 또한 장년들도 이러한 음란한 매체들을 우리가 구할 수 없고 만나지 못해서 만날 수가 없어서 음란의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손만 뻗으면 손에 잡히는 문화들입니다. 부모가 알수도 없고, 선생님들이 발견할 수 없는 은밀하면서 아주 깊은 것 까지 뻗쳐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음란과 우상과 포악한 것 문화들입니다.

바다에 떠 있는 배는 바다물이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물이 암만 많아도 그 물을 이용하여 운항하여 목적지를 향해 가듯이 많은 음란한 정보가 바다에 바닷 물이 가득찬 것 같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해도 바다를 이겨야하고 바다를 이용해야하지 배에 물이 들어와서 바다에 잠기면 그만 망하는 것 같이 이 모든 것들이 있다해도 보지 말고 듣지 않고 가지 않는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이 징조들 뿐 아니라 모든 예언들이 거의 다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많은 미혹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종말을 두려워하거나 무관심할 것이 아니라, 때를 분별하여 종말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합니다. 준비는 우리현실에서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감당이요, 이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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