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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살후 0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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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가운데 주님의 재림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나서 일상의 일을 포기하고 재림의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래 주님의 재림의 메시지를 전해 준 이유는 성도들이 고난 가운데에서도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소망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님의 재림에 대해 전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그것을 오해하여 마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재림만을 기다리는 것이 최고인양 잘못 알고 지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을 믿는 자들이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를 통해 충성스런 종들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자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4장 2절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바르지 못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바른 신앙을 갖고 살기를 기대하면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일상을 포기하고 사는 자들을 ‘규모없이 행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아탁토스’라는 단어인데 이 말의 의미는 ‘결석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말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성도로서 마땅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노동의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올바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터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터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 그리스도인과 다른 차원에서 자신의 일터를 생각하고 일해야 합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일하는 이유는 오직 생계유지나 자아 성취의 도구로만 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일하는 일터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선한 도구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된 학생이나 직장인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된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간에 오직 예수님께서 영광이 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된 우리들의 삶의 방향부터 수정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가족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이제 주님을 위한 삶의 자세로 수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된 성도들은 믿지 않는 자들보다 어느 자리에 있던지, 어떤 일이 주어지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일터는 어느 곳입니까? 다른 사람보다 힘들고 어렵고, 매우 자신을 지치게 하는 곳입니까? 그런데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곳에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이 선 자리에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들은 자신의 일에 성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성실하지 못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비방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저는 사람을 평가할 때 될 수 있으면 이런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하려합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 저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를 보려고 합니다. 학생들에 대한 평가 기준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 학생이 공부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사람 평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학생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육현장은 학생들의 평가 기준이 너무도 잘못되고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들에 대한 평가로 잘못되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얼마나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가르치느냐에 따라 평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다하더라도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 선생님은 훌륭한 선생님이라 말 할 수 없습니다. 지식만 전달할 뿐입니다.

사람이 능력이 있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실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능력은 쓸모없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능력은 많이 있었지만 그 능력을 쓸모없게 산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삼손입니다. 그는 많은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나 성실함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능력을 다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사장시켰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에도 정말 좋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지만 성실하지 못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음을 보고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귀한 달란트를 가지고 성실히 행함으로 주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제가 어떤 목사님이 이런 자랑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떤 성도님이 자신의 교회에 등록을 했는데 등록하는 순간부터 새벽부터 모든 예배시간에 목사님을 대신해서 차량 운행을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예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저에게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한번도 빠지지 않고 그 일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너무 기분이 좋다고 자랑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가지고 목회에 협력하는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역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역이며 귀한 사역인지 모릅니다. 언젠가 제가 어느교회 행사에 가 보니까 장로님들이 주차안내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교수님도 교회에 가면 주차안내 봉사를 한다는 말을 들어습니다. 이런 사역들이 목회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안에서 주어진 모든 것 믿는자들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사역의 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작은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주님 편에서는 귀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성실히 수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에 성실히 행하는 자에게 축복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에서 5달란트 받은 자와 2달란트 받은 자가 주님께 칭찬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처럼 적은 일에 충성을 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요령 피우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성실히 행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도 바울은 자신들도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씀으로 주야로 일함으로 양식을 먹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는 자들은 자신의 수고와 애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나 한 사람의 게으름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가끔 운동 경기를 보다가 한 사람이 퇴장을 당해 다른 사람들이 더 수고하는 모습을 봅니다. 한 사람이 퇴장을 당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몫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경기를 하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일터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땀 흘려야 된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는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통해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옆 사람에게 인사:충성된 종이라는 별명을 얻읍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터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즉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일하고 나면 반드시 결과물이 있어야 합니다. 과일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일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과일나무로서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나무에 대해 찍어 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7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이처럼 열매가 없는 나무는 버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터에서 얻은 물질을 통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쓸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얻을 것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서만 쓰지 말고 이웃을 위해 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강도만난 자의 곁을 지나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만이 지나간 것은 아닙니다. 거기는 제사장, 레위인등이 지나갔지만 그들은 그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일감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얼마든지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누어 주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이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고통당하고 있는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주님은 이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이 죽어가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선한 이웃이 한번 되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의 이웃들은 주님을 알지 못한체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들에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무엇을 주겠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보다 값진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선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라고 인사)
이제부터 내게 주어진 현장에서 내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면서 이웃에게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영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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