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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가이덴스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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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성령께서 오시면 그분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뼈를 묻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성령의 인도를 뜻하는데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말았던 것입니다.

호렙산 떨기 나무속에 계신 하나님
오늘날도 우리가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받고 마귀의 사슬에서 놓여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불과 구름 기둥으로 광야의 인생길을 가는 성도 앞에 계십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에 생명이 넘쳐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강건하게 지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회개하고 말씀 중심에 서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섭리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태어난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신앙인은 환난의 태양이 작열하는 이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결코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값없이 받았으면 믿음과 순종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꿈과 환상을 통해, 직감과 마음의 소원을 통해, 그리고 마음의 평안과 확신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자격이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거역하면 성령의 인도하시는 궤도에서 이탈하고 맙니다.
열차가 궤도에서 이탈하면 비극이 발생하는 것처럼 성도가 성령의 인도에서 이탈하면 광야에서 고아처럼 버림받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입니다.
여러분은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은 글자 그대로 사도들의 사역 활동이야기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성공담이고 승전보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도들의 성공과 승리 뒤에는 이들이 극복해야만 했던 난관들이 있었고, 이들이 뛰어넘어야 했던 장벽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런 난관과 장벽을 성령의 인도로 돌파했기 때문에 그런 성공과 승리를 맛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가로막힌 장벽을 뛰어 넘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한 눈으로 전체를 살펴보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도들이 뛰어넘었던 장벽이 세 가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저성벽을 향해 전진하라 주님 우리 대장되신다 주가 명령하네 강한 군사들아 주가 명령하네 강한 군사들아
첫째가 자기 자신입니다.
마 28:18 이하를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어나 모든 민족을 행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나갈 수 없었습니다. 너무 두렵고 말씀대로 실천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강권적으로 밀어내셨습니다.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이기고 복음을 들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을 받고도 나갈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기 자신, 연약하고 무능한 자기 자신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은 물론이고 무엇인가 큰 일을 해 보려고 할 때 제일 먼저 우리를 가로막는 장벽이 있는데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일어설 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정말 네가 할 수 있냐? 지금 네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제대로 알고 나 그러냐? 너는 안돼! 네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너 제 정신이냐?'

지난주간에는 이주형형제가 중국에서 피앙새 약혼자를 만났습니다.
마지막날 간증을 하는데 자기도 두려웠답니다. 그런데 맛선보는데 얘기를 너무 잘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주선하던 사람이 나중에 이주형형제의 매력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주형의 매력에 한번 빠져 볼랍니까?
처음에는 너무 뚱뚱해서 걱정을 하더라고요. 그도 그럴것이 중국에서는 만명이나 한명쯤 100킬로가 넘는 사람이 있답니다.이장벽을 뛰어 넘게 하신것입니다.
성령께서 한계를 뛰어넘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매들 앞에서 말을 잘 못했거든요.
말을 잘하는 남자는 여자를 많이 만나본사람입니다. 재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하고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나 자신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남들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둘째가 편견입니다.
행 10장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관원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에 파견 나온 로마의 장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이 복음을 전했던 대상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는 복음을 전할 생각을 갖지 못했습니다. 일반 유대인들처럼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하나님께서 멸망의 길에 버리신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무서운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강권적으로 베드로로 하여금 고넬료의 집으로 가도록 역사했고, 또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강권하셨습니다. 성령이 베드로를 짓누르던 편견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도 수많은 편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 출신 지역에 대한 편견, 학벌에 대한 편견, 성에 대한 편견... 이런 편견들이 우리로 하여금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우리가 이런 편견들을 뛰어 넘어야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가 환경입니다.
행 16장에 오면 바울이 유럽 대륙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건너가게 되는 배경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아시아에서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꿈에도 저 유럽으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할 생각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환경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200년 전의 복음 전도자들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우선 당시 교통수단이 변변치 못했습니다. 특별한 사람들만 말을 타거나 마차를 이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가난한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리아 안디옥을 떠나서 이미 수천 킬로를 걸어서 전도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또 바다를 건너 유럽이라는 대륙으로 수천 킬로를 건넌다는 것은 도저히 엄두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아시아와 유럽은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습니다. 사람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바울에게는 너무도 낯설고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럽으로 건너갈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복음을 전해야 할 한계는 바로 이 아시아의 끝자락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바울로 하여금 이 환경을 뛰어넘어 꿈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가 펼쳐 가야할 사역의 지평을 넓혀 주셨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환경 때문에 주저앉습니다. 가정 환경 때문에, 학력 때문에, 나이 때문에,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가진 능력 때문에... 꿈을 접고, 포기하고 눌러 앉습니다. 이런 것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제 일본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중국에서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이 김찬희 사모를 미국으로 데려가서 키울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를 만나서 미국에 못갔거든요.
사실 전도사때는 저보다 김찬희 사모가 더 잘나갔거든요. 수천명씩모이는 집회를 인도하는 찬양사역을 하고 있었고 매주 집회를 인도하고 했거든요.
그 목사님이 명함을 주시길래 저도 전화번호를 드려야 하는데 저는 아직 명함을 않만들었거든요.
원래 유명한 사람은 명함이 없는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명함이 있을까 없을까요. 저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그러지 않쟎아요.
설교테임을 하나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본에서 오신 목사님이 전해 받았나봐요.
일본 동경에서 아주 큰 사역을 하신 분이신데 저에게 일본에 오셔서 불을 질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살핀 이런 장벽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흔히 만나게 됩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런 장벽들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의 열매도 얻고,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바른 선택을 하며 살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에는 선택의 헛발질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을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기 못하게 하시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또 7절을 보면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고, 에너지를 허비합니다. 지치고 무기력해 집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려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마디로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개가 그 품종과 혈통에 따라 말을 잘 듣고 안 듣고가 결정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진돗개는 주인 말을 잘 듣고 주인에게 충성을 잘하고, 잡종견 흔히 하는 말로 똥개는 원래부터 주인 말을 잘 들을 수 없는 개인 줄 알았습니다.

이주형 형제의 결혼 때문에 제가 얼마나 성령의 인도를 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주형 형제를 좋다고 계속 전화가 오는 것입니다. 결혼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키도 늘씬하고 착하게 생겼어요. 그런데, 성령님께서 허락지 않는 것입니다.
목요일날 아침에 성령님 도와주십시오. 순적히 만나게 해주십시오.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네가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하게 될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날 아침에 결정이 되고 결정이 된 아가씨가 너무 마음에 들고 내마음이 너무 기쁜 것입니다.
처갓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또 너무 뚱뚱하다고 싫어하는 눈치더라고요. 그러다가 조금있으니까 이주형의 매력에 빠져들어가지고 허락을 받고 씨암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까 개의 순종과 충성은 전적으로 훈련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물론 혈통 좋은 개가 훈련의 기간에 차이가 있고 훈련의 내용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훈련 없이는 아무리 좋은 개라고 해도 순종하거나 충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똥개라고 해도 훈련만 잘 시키면 순종하고 충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개 개 훈련은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는데 우선 조련사와 함께 지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답니다. 늘 곁에서 먹이를 주고 돌봐주고 사랑을 주고 칭찬해 주고... 그 개가 조련사와 관계가 잘 형성될 때 훈련이 비로소 시작이 된답니다.

비유가 적절한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안 받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이 인도해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따라가지 않습니다. 마치 낯선 사람이 개를 끌고 가려고 할 때 개가 버티고 순종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기도생활이 중요합니다. 늘 성령께서 내 마음을 사로잡아주시고, 내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내게 기쁨을 주시고 내 마음에 확신을 주시고... 이렇게 성령의 사람이 되면 우리가 장벽을 만났을 때 성령의 인도를 쉽게 받고 따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평소에 너무도 성령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한 지도 오래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지도 오래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도 오래되고...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판단을 잘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바울은 두 차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만났습니다. 나름대로 오래 준비하고, 오래 계획하고 나선 길인데 뜻 밖에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 맞는 실패요 어려움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성령의 인도로 정확하게 판단했습니다. '아!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이런 정확한 판단이 그로 하여금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8-10을 보면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성령의 인도로 지금의 터키 동북부로 가려던 길을 돌이켜서 정 반대의 길 즉 서남쪽 드로아로 내려왔습니다. 거기서 그가 이런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 때 그는 성령의 인도로 정확하게 판단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상을 본 후에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지금까지 되어진
일들을 종합해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처음 계획을 무산시키셨을까?

왜 1차 전도지를 거점을 비시디아 지방에서 복음 전하려는 것을 막으셨을까? 왜 하나님께서 두 번째 계획을 무산시키셨을까? 왜 무시아에서 비두니아 지방에 가서 복음 전하려는 것을 막으셨을까? 왜 여기 드로아에서 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게 하셨을꺄?
답은 간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저 바다 건너 마게도냐로 보내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 후에 그가 도저히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유럽 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모든 것이 익숙지 않은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10절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바울과 그 일행은 배를 타고 낯설고 물 설은 땅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건너가게 됩니다.

바울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습니다. 이 정확한 판단이 그로 하여금 장벽을 넘어서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갈 때 뜻하지 않은 어려움들이 생깁니다. 생각지 않았던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 때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려고 할 때 우리 앞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선 욕망입니다. 성공해보고자 하는 욕망, 큰 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욕망, 이름을 날려보고자 하는 욕망... 이런 욕망들이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다음으로 고집입니다. 자기가 오래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자기는 이런 일에 판단 착오를 범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또 자존심 때문에 한 번 결정한 것을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집을 꺾을 때는 꺾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어리석은 왕이 나옵니다. 애굽의 왕 바로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듣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를 드셨습니다. 열 차례나 재앙을 내리셔서 그 고집을 꺾으시려 했지만 막무가네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군대도 몰살당했습니다. 자기도 망하게 됐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바로를 강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강퍅한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바로는 두 가지 때문에 강퍅해 졌습니다. 장정 60만이라고 하는 노예를 잃지 않으려는 욕망과 바로라는 위치의 자존심과 고집 때문에 강퍅해 졌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장벽을 만나게 되면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3.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비전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0절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들의 영혼의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이번에 중국에가서 우리교회가 도울처소를 지정해 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가이드했던 자매가 예수믿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매일이 왔는데 목사님이 믿는 하나님 저도 믿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시아버지가 저를 간절히 만나고 싶다고 해서 집으로 갔습니다.
대화를 나누시다가 목사님을 소개하고싶은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하 가정교회 지도자를 만나게 하실까 궁굼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이었습니다. 거기에 갔는데 그분이 이일을 하면서 너무 어려우면 꼭 이렇게 기적을 일으켜주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신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목사가 되겠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예배를 드리고 비젼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물론 환상이었습니다. 정말 인간적으로 마게도냐 사람들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거나 사람들을 보내서 바울에게 그런 요청을 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그런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자녀들은 예언할것이요.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이 임하면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우리가 음성을 듣는 일이 중요합니다. 전도자들에게는 영혼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겉으로는 박해하고, 복음 전할 때 미워하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 영혼은 '제발 나를 도우라' 소리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들이 몰라서 그렇게 반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런 음성을 듣게 해 주신 뒤에 바울은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장차 유럽에 건너가서 저 유럽에 교회를 세우는 비전, 저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는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전은 우리로 하여금 장벽을 뛰어넘게 해 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 비전이 갖가지 장벽을 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 비전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줍니다.

군대에서 근무를 스면서 나 제대하면 교회 백교회를 세워볼란다. 록펠러는 5천교회를 세웠다고 하는데...
그러면 야 너 교회 세우면 그 교회 하나만 주라 !
누구는 세웠습니까? 꿈입니다. 하나님은 그사람을 축복한것이 아니라 그사람의 꿈을 축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전도의 장벽 앞에 서 계실 것입니다. 그 장벽을 넘지 못해서 지금까지 한 영혼도 전도해 본 일이 없이 그 장벽 앞에서 주저앉아 계실 것입니다.
또 많은 분들은 정말 오랫동안 전도 없는 신앙생활을 해 오셨을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도의 장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기회에 전도의 장벽을 뛰어넘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받아 태신자들에게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잘 판단하십시오. 태신자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 잘 판단하십시오. 또한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 사람이 예수 믿어 복된 삶을 사는 그 날을 꿈꾸십시오. 주께서 여러분들에게 전도의 장벽을 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태신자들이 '건너와서 나를 도우라' 부르짖는 그 영혼의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피하고, 귀찮아하고, 싫어해도 그들의 영혼은 신음하며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신음소리를 들으면 우리가 그들을 품고 기도하게 될 것이고 그들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항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며, 성령의 사로잡힘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되고, 성령의 능력을 활용하여 항상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평생토록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여러분에게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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