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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날개의 비젼 (행 0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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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었을때 전세계인들의 커다란 주목을 끌었습니다.
개막식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개막식의 화려한 퍼레이드의 절정의 시간에 고요한 침묵이 임하면서 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면서 조용히 지나가던 장면이야말로 개막식의 꽃이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1984년 미국 엘에이의 올림픽이 개최되었을깨 이었던 일입니다.
서쪽에 흰머리의 독수리가 날아올라 경기장의 오륜기가 쇳대위에 사푼이 내려앉는 장면을 연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밤비라는 독수리를 선택하여 조련사들로 특별훈련으로 시켰습니다.
드디어 연습비행을 하는 날이 날아왔습니다.
잠시동안 멋진 곡선을 내리면서 하강하는 가싶더니 한복판으로 급강하하면서 땅을 찍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연구결과 너무 지나친 영양을 과다하게 공급한나머지 비만이었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날개의 균형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비만인지 아닌지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도 집에서 간단한 검사로 할 수 있답니다.
하나, 무전기를 찾고거울 앞에 서본다 워크맨이 삐삐처럼 보이면 비만입니다.
둘, 뺨을 때려보면 작 소리가 나면 정상이고 철퍼덕 소리가나면 비만입니다.
셋, 몸을 좌우로 움직였는데 목살따로 배살짜로 엉덩이따로 부위별로 따로 놀면 비만입니다.

오늘날 셀교회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교회가 역사의 장을 날으지 못하는 것이 같은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만을 위해 비만해졌고 두날개의 균형을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두날개에 대한 매우중요한 질문 세가지를 던지려고 합니다.

1. 두날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두날개중 한날개는 대구룹의 축제로서의 주일예배입니다.
또하나의 날개는 집이나 직장에서드리는 소그룹 예배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을 보십시오.성전에서 집에서 모였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초대교회에 두날개였습니다.
대 구릅 예배의 모임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합니다. 위대하신 높으신하나님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됩니다.가정이나 작은 단위의 소구릅 모임은 내재성을 경험하게 합니다.
너무나 친구같은 하나님 연인같은 하나님 ! 이것이 하나님의 내제성입니다.

대그룹 모임과 소그룹모임 이 두날개가 필요합니다. 꼬마야 하나님은 어디 계시니?
하나님은 너무 너무 크셔서 우주도 담을 수 없어요. 하나니은 너무 너무 작으셔서 제안에도 계세요.
위대하신 하나님과 내제하시는 하나님. 신앙생활의 두 개의 날개를 경험하게 하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새해에 우리 교회가 갖추어야할 모습을 그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 우리가 나아가야할 푯대인 표어를 무엇이라고 해야하나 고민하며 기도하던중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두날개로 날아 오르는 교회'로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일 낮 예배를 주일 축제 예배로 개명하였습니다.
대그룹 날개는 축제예배의 날개입니다. 축제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초월성과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일이면 서울영광교회 전가족이 모여 축제예배와 찬양 예배를 드립니다. 열정적인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염감있는 설교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에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렇기에 서울영광교회 예배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으며, 가슴 벅찬 감동과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적이 있는 예배를 시간마다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모습은 두 날개를 가진 교회입니다. 한 날개는 대그룹 날개로 전성도가 함께 드리는 축제 예배의 날개이고, 한 날개는 소그룹 날개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초대교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들은 함께 모여 대그룹으로 예배를 드렸을 뿐 아니라 날마다 소그룹으로 모여 떡을 떼며 교제했음을 볼 수 있다(행2:43-47)
오늘날 우리는 건물 중심 교회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교회라고 하면 대그룹으로 모여 드리는 예배만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한 날개에 불과합니다. 소그룹으로 모여 예배 드리고, 그 소그룹 안에서도 교제뿐 아니라 전도와 양육, 돌봄, 재생산까지 일어나야하는 것이 또 한날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러한 소그룹을 전인적인 소그룹이라 표현합니다.
흔히 소그룹이라고 하면 대그룹 교회안에 속한 하나의 조직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소그룹은 또 하나의 교회이며 대그룹에서 일어나는 전도와 양육, 돌봄, 재생산이 동일하게 일어나 주님이 명하신 지상명령인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사역'을 감당하는 곳입니다.
대그룹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며, 소그룹안에서는 하나님의 내재성과 친밀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룬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회복은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그룹 날개인 축제예배를 통해 전성도가 하나되고, 소그룹 날개인 소그룹 모임을 통해 육신의 가족보다 더욱 친밀한 돌봄과 나눔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그룹 날개에서는 축제예배와 더불어 은사대로 섬기며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가르치는 은사, 섬기는 은사, 중보기도의 은사 등, 각각의 달란트가 다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발견하고, 은사대로 섬기게 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함께 하며 서로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셀가족모임에서는 셀리더가 가족을 책임지고, 셀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를 책임집니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언제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체요, 곧 가족입니다.
셀가족 모임에서 정말 가족이 된 사람은 교회의 손님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그룹 날개에서도 주인으로 섬기고, 의무에서가 아닌 기쁨으로 참여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회복은 교회 본질적인 모습의 회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대그룹 날개와 더불어 또 하나의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인 전인적인 소그룹 날개의 회복입니다.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고 날아오를 때 진정한 공동체 회복이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대그룹의 날개는 역동적인 예배를 드림으로 어느정도 힘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또하나의 소그룹 날개에 힘을 주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담임목사인 저는 올한해 소그룹 리더를 키우는데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두날개로 날아오르는 교회는 이뿐 아니라 겸손이라는 날개와 순종이라는 두날개요, 말씀이라는 날개와 기도라는 날개요. 은혜라는 날개와 성령이라는 날개 등 여러 가지 균형잡힌 신앙생활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두날개로 멋지게 날아오르는 서울영광교회를 꿈꾸며 기도합니다.

2. 소그룹 날개는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여러분은 질문하고 싶을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구역예배를 했지않습니다.
맛습니다. 어느정도 구역예배가 감당했습니다. 두가지 이유에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소그릅 모임이 대구룹 모임과 다를때만 영적인 필요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주일예배의 축소판입니다. 또하나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더 이상 영적인 필요를 느낄수 없습니다.
중간에질문합니까?한번더 모이는 모임이 있을뿐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변의 교회가운데 5섯명의 교인이 모이는 교회는 교회입니까 아닙니까?문명 교회입니다. 우리는 존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교회도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목장교회는 목사님이 없쟎아요.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평신도 목회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평신도가 성경을 읽었고 모든 평신도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모든 평신도가 말씀으로 자신의삶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지에서 말씀을 나누며 찬양하며 이웃들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만이 아니라 사도행전 전체의 반복되는 강조점입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을 보십시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던지 집에 있던지 예수는 그리스도라도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주일만 아니라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집에서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전이라는 날개와 집이라는 날개 대구릅과 소그룹이라는 두 개의 날개로 비상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한날개를 잃어 버렸습니까?
A.D 313년 그 유명한 콘슨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서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한 후에 한 날개를 잃어 버렸습니다.핍박이 끝났습니다. 국교로 선포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승리같았지만 타락의시작이었습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때부터 집에서 모이는 모이는 것을 성전에서만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신도의 사명보다는 성직자 중심으로만 사역했습니다.
날마다 모이는 모임대신에 주일에만 모이기시작했습니다.
복음으로 역사속으로 나아가는 공격적인 교회가 아니라 교회로만 오라는 나약한 교회입니다.
성직자들이 당신들이 모든 것을 하십시오. 우리는 당신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겠습니다.
이때부터 평신도들이 무력해진것입니다.

생동하며 역사를 바꿨던 원형의 모습을 보십시오.
2장 42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영적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도들이가침을 선포했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서로 말씀을 가지고 교제했습니다. 떡을 떼며 교제했습니다.
46절에도 나옵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여기서 떡을 떼는 것은 성찬입니다.집에서 성찬식을 했습니다.
거룩한 성례전은 교회에서 뿐만아니라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결과를 가져 왔습니까 ?
47절 구원받은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주일날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복음은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소구릅 날개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3. 두날개의 비상은 무엇을 약속할까요?
세가지를 약속합니다.세가지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1)모든 곳이 사역의 장이 될것입니다.
사역의 장은 예배당안만 아니라 모든 곳이 사역의 장이 될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의 삶의 숨결이 움직이는 모든 장소가 사역의 장소가 될것입니다.

2) 모든 날이 사역의 날이 &46113; 것입니다.
주일날만 주님을 섬기날이 아니라 모든 날이 사역의 날이 될 것입니다.
월요일은 어떻습니까? 화요일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주거지에서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면 모든날이 사역의 날이 될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선데이 크리천이아닙니다. 에브리데이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날이 사역의 날이될 것입니다.

3) 모든 신자가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선교사만 사역자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사역자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장소 모든 곳이 어떤 장소입니까? 사역의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날이 무슨날입니까? 사역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가 누구입니까? 사역자가입니다.

단순히 여러분 구역예배를 드리라는 예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페러다임의 전환입니다.
사고의 틀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역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2의 종교개혁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핵심은 사제의 손에만 있었던 성경을 모든 평신도들의 손으로 넘오왔습니다.
제2의 종교개혁은 목회자 않에만 있던 사역이 평신도의 손으로 옮겨지며 삶의 한복판에서 사역을 감당할 때 제2의 종교개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에베서소 4장 11-12절을 한번 찾아 보십시오.

다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다양한 영적 지도자들이 언급되고있습니다.
그들의 궁국적인책임은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의 책임은 이러한 비전을 받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봉사가 곧 사역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봉사의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비젼임은 마음속 깊이 확신합니다.

1982년에 에디오피아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서 정부가 전복되고 공산 정권이 세워집니다.
모든 교회는 페쇠되었습니다. 선교사는 추방이 됩니다. 모든 교회지도자는 옥에 갇힙니다.
메노라이 처취 영향력있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50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다고 합니다. 메노라이 처취도 페쇠되고 목사님은 옥에 갇혔습니다.
10년이 지나갑니다. 1992년에 다시 공산정권이 무너집니다.
10년만에 메노라이 처취 교인들이 교회로 모입니다.
과연 몇사람이나 모일까 궁금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깜짝 놀랬습니다.
10년동안 5만명으로 증가되었습니다. 한번도 주일예배들 모인적이 없었습니다.
교회문이 닫히자 마자 비밀리에 그들은 집에서 모였습니다. 이웃들에게 소리없이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셀처취의 힘입니다.

만약 우리교회가 주차장이 없다고 6개월간 목장 교회로만 모이겠습니다.
6개월후에모이겠습니다. 라고 했을때 우리교회가 얼마나 남을까요.
두날개로 비상할 때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가질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되어지고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변화되어질 것입니다.
저는 이런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 비젼이 살아날 수 있다면 교회건물을 짖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주일예배만을 드리는 한날개만으로 신앙생활하십니까?
두날개로 역사를 향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비상하고 계십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저는 새로운 교회의 시작을 꿈꾸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두날개로 멋지게 비상하는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선데이 크리스천이아니라 에브리데이 크리스천이 되시기를 결심해 보십시오.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가정에서 직작에서 삶의 한 복판에서 복음을전하는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그런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이것은 한주간의 강조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을 건 강조가 될것입니다.

더 이상 선데이 크리스천이 아니라, 에브리데이 크리스천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내 생애를 드리며 살게 하옵소서
제인생을 주앞에 드립니다. 복음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하며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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