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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믿음으로만 살리라 (갈 0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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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우화 가운데 '새들의 불평'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
나님이 모든 동물의 창조를 끝냈을 때 새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들
은 '짐승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안 주셨는데 왜 우리 새들에게만 짐을 지워
서 이렇게 걷기도 힘들게 하십니까?'라고 투덜거리며 창조주에게 불평을 늘
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용기 있는 독수리가 먼저 어깨에 붙은 그
무거운 것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온몸이 갑자기 가벼워지면서 공중
을 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부착물은 짐이 아니라 하늘을 날 수
있는 은총의 선물인 날개였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큰 짐으로 다가오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짐으로 준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하
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주신 은총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인생의 짐을 가볍게 해 줍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 땅의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가게 됩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는 생활을 하게 합니다.

바울 사도가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병이 생겨 갈라디아 지방에 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바울은 복음전파에 힘써 여러
곳에 교회까지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곳을 떠났는데 바울이 떠나가자
갈라디아 지방에 이상한 신앙을 가진 자들이 들어와 교인들을 미혹하였습니
다. 갈라디아 교회를 미혹케 하는 자들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
는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로서 그들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고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그런
가 하면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영지주의자들로서 예수를 믿으므로 영이 구
원을 받았기 때문에 육적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가르
쳤습니다. 이 두 가지 거짓 사상이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히고 기독교 신앙
을 변질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은 다시금 유
대교의 형식주의로 되돌아가거나 영과 육을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에
빠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에 대한 바울 선생의 교훈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당시에 문제가 되고 있는 율법주의나 영지주의는 이미 역사 속
에서 사라져간 사상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생
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러나 사실은 오늘날에도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유
형의 사상들이 복음의 본질을 위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대가 바뀌
고 사고의 형식은 바뀌어도 성도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유혹은 언제나 동
일하게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본질이 무엇이며 기독
교 신앙이 무엇인지 누구에게나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도록 잘 준비되어
있어야겠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1.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언가 교회봉사도 열심히 하고
헌금도 많이 내야 되는데 아직 여러 가지 형편이 어려워서 지금은 힘들겠지
만 언젠가는 떳떳하게 천국 문을 박차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원대한
꿈에 부풀어 있는 분은 안계신지요? 나중이 아니라 만약 지금 당장 하나님
께서 내 생명을 찾으신다면 내 영혼이 어떻게 될까, 과연 내 영혼이 천국과
지옥 중 어느 쪽에 가 있을까 염려가 된다든지 확실히 잘 모르겠다고 생각
하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만약 그런 분들이 우리 중에 계신다면 오늘의 말
씀을 잘 들으시고 그래도 마음의 확신이 안 서시면 교역자들이나 구역 인도
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
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만 가지고
는 충분한 것이 아니고 육체의 할례를 받고 율법을 잘 지켜야 구원을 받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물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였던 점에
서 일반 유대교인들과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 속에 뿌
리 깊이 박혀 있는 율법주의적 사고, 즉 무언가 행위가 있어야만 구원을 받
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율법을 강조하고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을 공공연히 가르쳤습
니다.

실상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썼
습니다. 학자로서 율법에 정통하였고 삶에 있어서도 율법에 충실하려고 철저
히 실천적인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의 권위에 도전하는 스테반을 처
형하는 데도 사명을 가지고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남은 잔당을 처치
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를 만나고서는 율법을 지키려고 그렇
게 노력한 것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
의 구원은 율법을 잘 지키는 행위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믿음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16절). 그래서
그는 본문에서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
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16절)라고 단언합니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
원!'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날에도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선행을 쌓고 공
로를 쌓아야 구원을 얻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십
자가의 사건을 무효화시키는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선행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라면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는 완벽하게 용서받게 되
었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그
어떤 노력이나 공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교회에 봉사하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
는 삶을 사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값없이 구원하여주
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현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
해 주신 주님의 그 크신 은혜가 감사해서 우리의 삶을 드리고 선한 삶을 살
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감사할 때 우리의 모든 것
을 드려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실이 모든 것을 우선합
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2. 오직 믿음으로 죽어야 합니다.

저는 예수를 믿은 지 벌써 50여 년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적 사건으로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구원의 감격으로 너무
나 기쁘고 감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던 여
름에 어느 부흥회에 참석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을 때 저는 하늘이
열리는 듯한 감격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은 생의 한 전환점이었고 꿈이요 영광이요 축복이었습니다. 그 뒤 신학
을 하고 목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목회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아내와 심한 언쟁을 하면서 감정을 억제하기 못하고 그
만 할말 못할 말을 다 쏟아놓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의 슬퍼하는 모습을 본
뒤 그 다음날 새벽에 기도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수난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비참하게 죽으시면서 저를 쳐다보시는데 그만 저는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저를 위해서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모습이었
습니다. 마치 '너 때문에 또 다시 십자가에 죽는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
니다.

민수기 20장에 모세는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
들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
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민 20:8). 모세는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보다는
혈기 때문에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쳤습니다. 이 사건을 놓고 하나
님께서는 모세를 책망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
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출애굽기 17장에서는 백성들이 물 때문에 야단
이 났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말씀대로 반석을 치자 그곳에서 물이 솟아났었습니다. 그런데 여
기 민수기 20장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
고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명령만 하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는 백성들의 행동이 괘씸하다는 생각에 반석을 내리치면서 마치 자기의 능
력으로 물을 내는 것처럼 혈기를 부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4에서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반석이 깨지며 물이 솟아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찢으시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사건은 인류 역
사 가운데 유일회적 사건이지 두 번 다시 되풀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
다. 한 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전하게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다시 반석을 친 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의 유일회성을 무효화시키
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를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
다. 이것은 큰 죄입니다. 이 죄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
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무효화시키는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
데 저는 목사가 되고도 혈기를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서운하게 했습니다. 주
님은 저를 위해서 다시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보고는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20절)라
고 고백한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또 다시 죽게 해
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나도 망하고
가정도 불행하고 교회도 안됩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
어야 합니다. 죽지 않고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내 자신을 죽일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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