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오직 믿음으로만 (갈 02:16-21)

첨부 1


최근 우리나라에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치란 본래 그런 동네이기 때문에 새삼스 레 이슈화한다는 자체가 우습지만 지난 시절의 어려움이 되풀이될까하여 걱정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이 시기에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합니다. 그래서 차제에 이 모든 어려움들이 어디서 출발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자신도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최근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정치인사 한 분이 너무도 짧은 기간에 다른 말들로 바꾸는 것을 잘 아 실 것입니다. 중국의 한 정치원로는 '국민들을 우민화한다면 국민들도 그 정치인을 우민화 할 것이다' 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가 변명에 급급하는 모습은 국민을 마치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것 같아 보여 안쓰럽기까지 합니 다. 다른 하나는 여러분이 오랫동안 보아왔던 한 정치원로의 말입니다. 그는 수많은 세월동안 위기 때마다 요상한 말들을 골라서 국민들을 현혹시켰습니다. 나름대로 고상한 말들을 골라 썼겠지만 고상한 것이 아니라 요상한 말들로 용케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누려왔는데 이번에 또 요상한 말로 재주를 넘다가 여러 언론들에게 된통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참으로 가슴아픈 일로서 5.18 기념 행사 전날 소위 386정치인들의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일과 관 련해서 그들이 기념행사장 인근에서 한 일 자체를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란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쉬움은 그들이 변명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동원한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정 치인들의 거짓말에 넌더리가 나있습니다. 그러나 신선하리라고 기대했던 그들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 또한 세 월이 흘러가면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모습을 그냥 넘어간다면 우리의 후배들, 우리 의 자녀들이 그런 거짓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에 이 부분을 깊숙하게 짚어 보 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실수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이후에 국민들로부터 기대를 받는 사람들답게 깨끗한 뒷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인은 본래 그런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프랑스의 드 골은 '정치인은 자기 자신도 자기가 하는 말을 결코 믿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주면 놀란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신선하리라고 기대했던 386정치인들이 지금 얻고있는 자리는 그들이 그 자리를 얻을만한 사람 들이라는 검정을 거쳐서가 아니라 단지 국민들의 기대감 하나로 주어졌으며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인하여 반사적인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이러한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조금 더 잘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정치인들만 그러한가를 생각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전해드립니다. 서로 자기 직업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 고 자랑하는 의사와 건축가 그리고 정치인이 우연히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먼저 의사가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 를 만들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의사가 맨 먼저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건축가는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먼저 혼돈세계에서 이 세계를 건설하셨다고 말하자 이 소리를 듣고 있던 정치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바로 그 혼돈을 만든 사람 이 누구였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정치인이라는 말입니다. 오래 전에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과연 그 혼돈을 정치인이 만들었을까? 아니면 정치인보다 먼저 혼돈을 만든 사람들이 있었겠는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종교인들을 생각했고 신앙인들을 생각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종교지도자들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들 중 적지 않 은 사람들이 거짓말에 관한 한 정치인들보다도 짧지 않을 것 같았고 그 깊이에 관해서도 얕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 에 이 부분을 짚어 봅니다.

진리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리인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위선을 가장하는 종교인도 있다는 것입니 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단히 거룩한 것으로 가장하여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은 그러한 것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들의 기둥으로 삼아 퇴색되지 아니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종교지도자들은 오늘날뿐만 아니라 AD. 1C 바울이 있었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하고 난 뒤 다른 곳으로 선교여행을 하고 있을 때 거짓 종교인들이 갈라디아 교회로 들어 가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하여 바울에 대해서 비난하고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바른 복음이 아니라는 말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야할 것은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바울을 흠집내기 위해서 바울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비난했습니다. 1장에서는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자세하게 해명하였고 2장에서는 이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 로만 얻는다는 내용을 예를 들어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연결시켜가면서 말씀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 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16절).. 율법은 관계없이 즉 어떻게 행했는가는 관 계없이 단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아주 명쾌하게 구원의 도리를 말씀하였고 아울러 내 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 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서 사는 것이라(20절)..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 길이라는 그 유명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이에 대해서 갈라디 아 교회의 교인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지도자 디도의 예를 들어 디도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할례 받 지 못하게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3절). 사실 바울은 할례에 대해서 받아도 되고 아니 받아도 되는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구원은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므로 할례를 받든 그렇지 아니하든 관계가 없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였습니다. 할 수도 있고 하지 아니할 수 도 있는 것을 구태여 해야된다 또는 하면 아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와 함께 다 니는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못하게 하였고 그와 함께 한 동역자 디모데는 할례를 받게 함으로서 할례란 구원의 조건이 아 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구원은 할례나 다른 어떤 율법적인 것들 즉 해야 한다 또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이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이 형편없을지라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 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십일조를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 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십일조를 하고 교회에서 봉사를 해야만 구원을 받습니까? 아직 그 믿음 이 되지 않으면 십일조를 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십일조로 드러 내는 것일 뿐 구원과는 관계없습니다. 더 나간다면 구원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주실 은사나 복을 받기 위한 것 이지 구원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단지 2000년 전에 오신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만 확실하게 믿으면 된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칫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거짓말로 사람 들을 현혹시키면 아니 됩니다.

바울은 아울러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사도들과 다른 말을 하는 그에 대해서 의아해 함을 염려하여 자신이 말하는 진리 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 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갈1:1). 즉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도가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 진리를 배웠 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진리에 대해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할 뿐이지 구원은 오로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진리 이외 다른 것은 없다고 강력하게 말하였습니다(갈1:7-9).

아울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 득의(以信得義) 즉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 진리는 예루살렘에서 유명하다는 사도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면서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인 야고보, 베드로 그리고 요한 등 유명한 사 도들도 자신에게 듣고서야 이 진리를 알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음같이 자신은 무할 례자에게 복음 전하기를 맡았는데 이는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자신에게도 역사하사 이 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이고 그 사도들 또한 이 사실에 대해서 모두 인정했다고 아주 명쾌하게 말씀하였습니다(6-10 절).

이제 이 모든 논의와 설명을 통해서 자신은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전혀 개의치 않는 다는 자신의 인생철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대단한 지위와 학력, 재물이 있다는 사람, 혹은 직분자들 심지어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을 혹 오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염려하여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치 아니하시나 니(6절)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조금 잘 났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비굴한 웃음을 짓고 있는 추한 모습을 가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듣는가? 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주 대단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정말로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많이 배운 사 람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높은 사람 또한 아닙니다. 정말로 이 세사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 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길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다른 길일지라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깨어졌던 야곱의 인생을 아실 것입니다. 한 번도 잘못된 길로 간 적이 없었던 그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의 인생 또한 아실 것입니다. 어느 날 요셉은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야곱을 문병하러 가서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하여 달라 고 하였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한 야곱은 오른쪽에는 에브라임을 왼쪽에는 므낫세를 앉게 한 요셉의 두 아들들 의 머리 위에 팔을 어긋맞겨 올려 축복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요셉이 야곱의 손을 들어 어긋맞긴 손을 옮기려하자 야곱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야곱의 인생과 요셉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야곱은 요셉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큰 소리로 당당하게 '나도 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자신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어긋맞겨서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요셉 앞에서 '나도 안다' 라고 말하면서 당당하 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시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격인 베드로와 자신을 사도되게 한 바나바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유대인인 당신이 이방인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에게는 유대인답게 살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게바에게 말하면서 책망하였습니다(14절). 적어도 기독교의 신앙에 있어서는 자신보다도 한참 선배인 이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하 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면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당당하기 원하십니까? 이 땅에 살면서 정 말로 능력 있고 권세 있는 사람으로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든 노력을 하나님을 알기 위한 일에 쏟아 부 으십시오. 초점을 여기에 두십시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게 되면 그리스도 께서 여러분 속에 사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인생과 역사가 어디로 흐르는지 알게될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와 능력을 가진 당당한 그리스도인, 당당한 아버지, 어머니, 당당한 직분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