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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짓된 교훈에 대한 경고 (딤전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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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오늘 주신 말씀에서 디모데에게 거짓된 교훈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 고 떠나면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 에베소 교회에 이단자의 침투가 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성 도들이 미혹 당할 것이라는 점을 이미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이 사실 을 경고한바가 있었습니다. 오늘 생각하게 되는 말씀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예언적 경고의 반복이고 그보다도 이미 이단 침투의 징조가 현실화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도행전 20장 29절 이하에 보며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남아 있는 지도자들에 게 부탁하며 경고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29-32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 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쫓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 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사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 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29-32)

이 말씀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부탁이요 권명이요 경고였습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자기의 뒤를 이어 에베소 교회를 지도하고 말씀으로 먹여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던 디모데에게 꼭 같은 사실을 반복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을 보세요.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 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이 말씀 보면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과거에 바울이 친히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경고했 던 그 경고를 다시 한번 회상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바울로 이제 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 운 마귀의 계략, 다시 말하면 그릇된 교훈에서부터 사랑하는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목회자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항상 성도들의 심령을 바로 지도하고 돌보기 위해서 전념하고 있다는 사실 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 어떤 때는 우리 귀에 좀 거슬리는 말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잘못된 길로 나아 가지 않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있으면 사랑으로 수용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의 표현을 보아도 어떤 때는 좀 심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중심에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랑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잘못된 가르침의 배후에는 어떤 세력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 다. 1절 말씀에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그릇된 가르침의 배후 세력 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아무리 건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가르침의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했을 때는 그들 배후에 악한 영이 도사리고 있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결국 영적인 싸움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6장에서 경고한 것처럼 우 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 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칠 때 그것은 그들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저지르는 단 순한 지적인 실수가 아니라 바로 사단의 역사요 악한 영의 계략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 리의 구원을 좌우할 수 있는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를 왜곡시키는 모든 가르침의 배후에 는 언제나 악한 영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두 가지 표준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인격이요 다른 하나는 그들의 가르침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인격, 다시 말해서 그들의 도적적인 삶의 모습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이라 그 인격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이단에 끌려들어 가게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문제입니다. 인격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이단은 가려내기가 쉽습니다. 분명하게 반사회적이고 반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사 람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쉽게 그들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집단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 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것은 행동이나 인격이 아주 건전한 경우입니다 그런 경에는 우리는 그들 이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쳐도 그것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단은 때때로 천사를 가장하듯이 훌륭한 인격과 행위의 소유자를 이용해서 그들의 입술을 통해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게 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잘못된 가르침이 진리로 위장 돌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런 경우는 아주 미묘하고 간교해서 아주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잘 아는 어느 목사님은 그 부인이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이 되어서 거기에 끌려가 있어 그 목사님이 당하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

러나 잘못된 가르침에 따라 갈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을 어떤 일을 합니까? 몇가지 그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1.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1절 말씀에 후 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건설적인 호기심이 있고 파괴적인 호기심이 있습니다. 건 설적인 호기심은 위대한 원리를 발견하고 훌륭한 물건을 발명해서 사회와 인유를 위해 기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뉴톤은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가져서 연구하고 연구한 결과 만유 인력의 법칙은 발견한 것 아닙니까? 주전자 물이 끓은 것을 보고 뚜껑이 움직이는데 호기 심을 가지고 연구할 결과 중기 기관을 발명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문명의 이기는 건설적인 호기 심에서부터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파괴적인 호기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을 망칠 뿐 아니라 사회에 큰 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와가 왜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 하시고,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까지 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류를 타락시켰습니까?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마귀는 이 호기심을 이용해서 인간을 타락시키는 술법을 사용합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호기 심이 발동했고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만 같아서 결국 따먹 은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결국 몸에 해로운 담배를 왜 피웁니까? 어떻게 배우게 되었어요? 호기심 때문입니다. 마약을 왜 하게 됩니까? 호기심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가 근본은 호기심에서부터 생기게 됩니다. 마귀는 종종 이 호기심을 이용해 서 우리의 귀를 가볍게 만듭니다. 무슨 새로운 소리가 없을까? 좀 신기한 이야기나 없을까? 마 귀는 이러한 우리의 호기심을 이용해서 결정적으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누가 와서 당신은 이런 것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고 접근하면 우리는 귀가 솔깃해 서 쉽게 따라가게 됩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마귀의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기 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 다. 그것은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종교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종교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일본 도쿄 지하철에 있었던 가스 사건이 오움진리교라는 이단 종교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 을
여러분이 아시지 않습니까? 혹 어떤 분은 왜 설교자의 마음이 그렇게 좁으냐고 비난하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설 교자의 관용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문제이고 생명이 걸려있는 아주 중요 한 문제입니다. 진리에 관한 한 바울은 엄격했고 양보가 없고 독선적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6-1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 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 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면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 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 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저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의미있는 말씀 입니다.

목사에게도 가장 큰 유혹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말하려 는 유혹입니다. 옛날 거짓 선지자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죄 지은 백성과 관리들을 향해서 형통 한다, 평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죄 지은 사람에게 망한다고 하면 싫어하니까 평안합니다, 하나님 이 축복하십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옛날만 그랬습니까? 군사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차지한 사람 앞에 가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귀한 자 리 차지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축복기도하고 했으니 옛날 거짓 선지자와 다른 것이 있습니까?

디모데후서 4장 4절에 뭐랬어요?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했습 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사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자기를 책망하는 진 리의 소리보다도 개인적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럴듯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러한 소리에 더 쉽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사단은 이런 인간의 결정적인 약점을 이용해서 우리를 미혹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영생교 교주가 하는 말을 TV화면을 통해서 들어 보셨지요
여러분이 지금 100만원만 내시면 내가 그때 세단 자동차 주고 자가용 비행기도 줄테니까 그러면 아멘 아멘 하면서 발광을 합니다. 이런 잘못된 호기심을 마귀는 이용합니다.

2. 외식합니다. 주신 말씀 2절을 보세요.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한다 고 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의 말은 위선적이고 없다는 말입니다. 일관성이 없는 것이야말로 이단의 제일 가는 특성 중 에 하나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형편 따라 달라지고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책들은 개정되고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이 개정된 일이 있습니까? 오랜 역사 속에서 한번도 수정된 일이 없지마는 시대와 함께 영원히 살아서 변함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변 화시키고 있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입니다.

3. 거짓말합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을 잡아 놓기 위해 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마귀의 특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귀는 거짓 말이 본업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보아도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을 혹시 보게 되는데 이것은 마귀에게 영향을 받고 마귀의 지배하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에베소서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대적하라고 하면서 첫째 무기로 무엇을 말씀했어요?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지식 이 부족할 수 있고, 돈이 없을 수 있습니다. 권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진실하지 못하면 그것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 당시에 어떤 잘못된 가르침이 있었기에 이런 강력한 권면과 경고를 하고 있 습니까? 그것이 바로 노스티시즘이라고 말하는 영지주의 입니다.

영지주의가 무엇인데요? 영지주의는 헬라의 철학과 교류하면서 이원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금욕주의와 쾌락 주의의 극단적인 사상을 낳게 한 것입니다. 자기를 절제하면서 이러 이러한 일은 하지 않는 금 욕주의와 자기 음 내키는 대로 거의 모든 일을 해 가면서 인생을 즐기는 쾌락주의는 상반된 것 같지만 사실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이원론의 주장이 무엇입니까? 물질이나 육체는 악하고 영혼만이 깨 끗하고 선하다는 것이 소위 이원론 사상의 뿌리입니다. 여기에서 금욕주의가 나왔는데 그들은 더러운 육체를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영혼은 깨끗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육체에 고통을 가 하면 가할수록 영혼이 더욱 깨끗해진다는 이 사상은 동양철학에도 많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쾌락주의는 영지주의와 어떤 연결이 있습니까? 영지주의자들은 이 더러운 육체는 아무 리 노력해도 선해지거나 거룩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믿습니다. 육체는 그냥 내버려두어도 영혼은 절대로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에 한해서는 될대로 되 라는 식으로 쾌락을 즐기는 쾌락주의는 서로 모순된 사상 같지만 실제는 이렇게 같은 뿌리에서 부터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금욕주의도 아니고 쾌락주의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잘 못된 사상을 다 경계하기 위해서 디모데전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에서는 특별히 쾌락주의를 경계하는 메시지가 많이 나옵니다. 가령 디모데후서 3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 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여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 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1-5) 했습니다. 이 쾌락에 대한 경고는 그 당시 영지주의가 터뜨린 쾌락주의적 영향에 대한 경고라고 생각됩 니다. 그러나 디모데전서에서는 영지주의의 한 형태인 금욕주의에 대해서 특별히 경계하고 있습니 다. 그러면 그 당시 거짓된 교사들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가르치고 있었던 거짓 교훈의 내 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3절을 보십시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이것은 둘다 하나님의 창조 원칙에 대한 위반입니다. 혼인을 금하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날 사람인 남자를 창조하심으로 창 조의 절정을 이루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로 한 몸을 이룰 수 있 도록 계획하시고 그들의 결혼을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인데 결혼을 반대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 자체가 악하지 않은 것은 이 몸을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의 몸이 귀한 것으로 가르치는 것은 기독교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당시에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은 육체에 관한 모든 것들을 악하다고 말 했습니다. 더구나 어떤 사람들은 주님 오실 날도 멀지 않았는데 거룩하게 살아야지 무엇 때문에 결혼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거룩한 것은 결혼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 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람의 거룩함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을 보세요.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 님이 심판하시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분명히 음행이나 간음을 경계했습 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혼을 부인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혼인을 귀하게 여기라 고 말씀했습 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매우 귀한 것이기 때문에 잘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처럼 결혼의 문제에 관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진리를 선포하는 종교는 아마 없을 것입 니다. 그리고 잘못된 가르침에서는 식물을 폐하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식물이 무슨 음식인지는 자 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어떤 음식은 먹을 수 있고 어떤 음식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가리킨 것 같습니다.

금식은 귀한 것이고 때로는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금식한 예를 많이 기 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식이 삶의 방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 다.
그러므로 먹는 것은 하나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금식이 경우에 따라 필요하지만 그것이 영성의 척도가 될 때는 문제가 됩니다. 가령 금식하는 것이 그 사람이 거룩해지고 구원받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처럼 생각 한다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경향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함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식물을 폐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9절을 보세요. 여러가 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 할 것이 아니니 식물 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아름다워 질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 운데 머물고 주님과 더불어 동행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의 영성과 관련시키고 그 것에 의해서 우리의 거룩함이 좌우되는 것처럼 강조된다고 하면 그리고 그것으로 구원의 정도를 측정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서 바울은 어떤 결 론을 내렸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4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고 했습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마지막 5절에서 결론적으로 거룩함의 길이 무엇인가를 말 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문제는 동기와 목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태도로 무엇을 위해 먹느냐 하 는 동기와 목적에 따라서 그 사람이 세속적인지 영적인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단 한번의 삶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의 뜻을 이루는 일에 우리의 삶이 도구로 사용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우리가 이런 절실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 있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거룩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 앞에 우리 마음 중심으로부터 아멘 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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